실적만 보던 은행·증권사, 고령자 대상 왜곡 설명·대리 가입 횡행
성과평가에 ELS 판매 연계
변동성 커져도 독려 분위기
당국은 투자자 보호 뒷짐만
금융감독원이 11일 내놓은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배상안은 지난 1월8일부터 두 달간 11개 판매사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한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청력이 약한 87세 노인에게 무리하게 ELS를 가입시키거나, 분석기간을 축소해 ELS 손실이 그간 전혀 없던 것처럼 안내한 경우도 있었다.
금감원 현장검사 결과를 보면, 은행과 증권사 ELS 판매정책 자체가 소비자 보호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주가지수 변동성이 커진 2020년, 오히려 영업 목표를 높이거나 판매 한도를 늘려 ELS 같은 위험 상품을 공격적으로 판매했다.
A은행의 경우 자산관리(WM)수수료 중 신탁수수료 목표를 전년 예상 실적 대비 56.9% 상향했다. 통상 은행은 ELS를 주가연계신탁(ELT) 형태로 판매하면서 수수료 이익을 거뒀는데, 그 목표를 높여 ELS가 더 많이 팔리도록 전사적 영업을 했다는 의미다.
성과평가지표(KPI)를 ELS 판매에 유리하도록 설계한 경우도 있었다. B은행은 원금 손실이 발생하지만 않으면 H지수가 하락해도 판매 당시의 ELS 수익률을 영업 성과로 인정해줬다. C은행은 주가지수 변동성이 확대될 때는 판매 한도를 감축한다는 내부 규정이 있는데도, 이를 우회할 예외 규정을 두고 한도를 더 늘렸다.
이러한 전사적인 판매 독려 분위기에서 개별 지점들의 불완전판매가 늘었다. 적합성 원칙을 위반하거나 대리 가입, 서류 변조 등 불완전판매가 속출했다. 한 은행은 청력이 약한 87세 고령 투자자에게 ELS 상품에 대해 왜곡 설명해 가입시켰다. 한 증권사에선 71세 투자자를 대신해 컴퓨터 원격 제어 프로그램으로 대리 가입한 일도 있었다. 이에 따라 ELS에 가입한 고령 투자자 비중도 높아졌다. 전체 ELS 판매 계좌(39만6000개) 중 21.5%(8만4000개)가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 보유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불완전판매가 반복된 데는 금융당국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 2019년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하자 금융위원회는 복잡한 금융상품에 관한 고강도 투자자 보호 방안을 발표했다. 당초 금융당국은 은행이 고위험 사모펀드나 신탁을 판매할 수 없게 하려 했으나, 대표적인 지수 연동형 공모 ELS에 대해선 판매를 허용해달라는 은행들 요청을 수용하며 한발 물러섰다. 해당 지수에는 코스피200·S&P500 등과 함께 홍콩H지수가 포함됐다.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된 것이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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