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노동자에겐 재충전 시간이 곧 황금알

기자 2024. 3. 1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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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9일 ‘주 4일제 네트워크’ 출범식이 있었다. “일이 삶을 압도한 사회를 벗어나, 일과 삶의 조화가 가능한 사회를 모색”해야 함을 강조한 선언문이 인상적이다. 지난해 정부에서 주 최대 근로시간을 69시간까지(현행 52시간) ‘유연하게’ 확대 운용하려 했던 시도와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 물론, 주 69시간 노동만큼 주 4일제 노동도 터무니없게 들릴지 모른다. 당장, 4일만 일하면 경제는 어떻게 지탱하고, 줄어든 가계수입은 어떻게 하냐며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상 한국은 지나친 노동시간에 위태롭게 기대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는 2022년 기준 OECD 회원국 연간 평균 노동시간(1752시간)보다 약 149시간(1901시간)이나 많이 일한다. 그뿐인가? 지난 5년간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 산업재해도 증가 추세다. 이 같은 수치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 분들도 많을 테다. 관련해서 최근 중요한 보고가 있었다. 지난 3월4일 여의도 국회에서 전국금속노조·전국삼성전자노조는 삼성 전자계열사의 노동자(총 4개 사업장 1801명 참여)에 대한 ‘노동안전보건실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놀랍게도, 노동자 3명 중 2명은 수면장애를 앓고 있었으며, 절반가량이 우울증세를 보였다.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이들의 자살충동 비율이 일반인구 평균과 비교할 때 7.1~12.8배였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 지원 사무직군의 경우 21.6배나 높았다. 그 원인으로 고과평가, 과도한 업무량, 부족한 인력 등이 지적되었다. 이런 구조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효율을 창출해 낼지는 모르지만, 노동자는 그 속에서 육체, 정신, 감정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까지 빼앗길 수 있다.

앞서 발표된 조사 결과에 대해 삼성 측은 ‘특정’ 시점, ‘일부’ 응답자, ‘일방적’ 답변을 과장한 것이라고 대응했다. 그렇지만 삼성 전자계열사의 노동강도가 회사, 직군, 사업장 등의 차이와 무관하게 모두 절반 이상 ‘강하다’고 응답한 것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아파도 쉬지 못하고 출근하는 ‘프리젠티즘’ 비율이 일반 임금노동자 평균(11%, 2020년 기준)의 5~7배가량 높게 나타난 것 또한 주목해야 한다. 조사 보고서의 결론에서도 적정한 인력의 확보로 노동강도를 합리적 수준으로 낮출 것을 제안한다.

아파도 그 사실을 숨긴 채 일하러 나가는 노동자에게 금요일도 주말처럼 쉬는 삶이란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더욱이 고가평가 및 실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의 단축은 오히려 더 큰 불안함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당연하듯 받아들이는 주 5일제 노동 역시 19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매우 낯선 풍경이었다. 주 5일제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98년이었으며, 20인 미만 사업장까지 모두 시행된 것은 2011년이다. 더 위로는 1953년 근로기준법상 주 48시간 노동에서 4시간 단축(44시간)하는 데 36년의 세월(1989년 개정)이 걸렸고, 추가로 4시간 단축하는 데 14년(2003년 개정)이 걸렸다.

적합한 노동시간이란 경제적 판단처럼 보이지만, 역사는 그것이 사회적 합의였음을 말해준다. 즉, 주 4일제 논의는 실무적인 차원을 넘어 노동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과 ‘윤리’에 대한 새로운 전환을 의미한다. 현 정부는 노동자가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기업이 보다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노동력을 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자고 설득한다. 즉, 모두에게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필요한 만큼’ 일하라고 권장한다. 그렇지만 노동력이란 반드시 인간의 몸이 지닌 물리적 한계 안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황금알을 낳는다고 노동자의 몸을 거위배 가르듯 근시안적으로 채찍질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에게 재충전의 시간이 곧 황금알이다.

영국 런던대학 교수 가이 스탠딩은 <공유지의 약탈> 한국어판 서문에 충청남도 보령시에 속한 작은 섬 장고도를 소개한다. 약 200명 주민의 장고도는 1983년부터 어장을 마을공동체가 함께 운영하여 1993년부터 해삼에서 나오는 이윤을 모두에게 동등하게 배당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기본소득제다. 주민들은 함께 씨를 뿌리고, 바다가 키워준 해삼을 함께 채취했다. 그 결과 2019년 기준 각 가구는 기본소득으로 연간 1300만원을 받았다. 이곳에서 개인의 노동시간은 오직 자신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다. 또한 주민들은 ‘필요한 만큼’ 일하라고 강요받지 않는다. 그들은 몸이 허락하는 ‘능력만큼’ 일한다. 장고도의 어장이 자연이 준 공유재라면, 노동자가 기업이 아닌 자신과 가족, 나아가 사회를 위해 시선을 돌릴 충분한 시간 또한 인류가 지켜야 할 공유재일지 모른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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