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우주청, 지구의 미래를 위해 우주로 나아가라
한국도 우주청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생긴다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우선 지나치게 늘어난
국가 위성사업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 되면 어떨까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글로벌 리더십이다
새로운 우주청은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시대 소명을 새겨야 한다
대한민국 우주청이
혁신적 우주기술 개발로
전 세계 탄소중립을 위한
지구탐사의 선봉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지난달 일본 쓰쿠바에 있는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Japan Aerospace Exploration Agency)에 기후변화 연구 협력을 위해 다녀왔다. 방문 첫날 JAXA 연구단지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하늘에 펄럭이는 커다란 태극기가 우리 눈을 사로잡았다. 전 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기후변화 유발물질인 온실가스를 함께 연구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곳에 왜 태극기가 휘날리는지 세상 사람들 아무도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의 이 작은 협력이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그곳 과학자들과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아직 한국은 온실가스를 측정할 수 있는 위성이 없기에 다른 국가에서 쏘아 올린 위성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 연구팀은 해마다 일본 JAXA뿐 아니라 미국항공우주국(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유럽우주국(ESA·European Space Agency) 연구팀을 만나 한국 지역의 온실가스 측정값을 확보하기 위한 협조 요청을 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열심히 연구할 것이니 너희 나라 위성으로 한국을 더 많이 측정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료를 구걸하는 것일 수 있지만 기후변화라는 인류 최대의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위성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나와 위성의 인연은 2016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Jet Propulsional Laboratory)의 전 지구 탄소순환 연구팀의 연구원으로 합류하게 되면서부터다. 박사학위를 기후변화 모델링으로 했기 때문에 위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기후모델의 개발 및 개선을 위해서 여러 위성 측정 자료를 많이 활용했기에 나름 위성 자료는 익숙한 편이었다. 하지만 2016년 위성을 직접 디자인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시작하면서 위성을 바라보는 내 생각은 상당히 많이 바뀌게 되었다. JPL에 근무하면서 제일 처음 내가 놀란 점은 NASA가 지구에 정말 진심이라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NASA는 주로 영화관이나 TV에서 공상과학영화를 통해 접했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지구보다는 우주탐사에 더 집중하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다른 분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기대와는 달리 NASA는 정말 지구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 내가 일했던 JPL 경우만 봐도 지구와 우주의 업무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NASA는 지구와 인간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위성이라는 도구를 지구 밖으로 내보내 지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더 넓게 더 멀리 지구 구석구석에서 지구의 대기, 해양, 지면, 육상생태계, 빙하 등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위성 자료 갖고 탄소중립 전략 수립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위성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여기서 디자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NASA는 하나의 새로운 위성을 발사하기까지 정말 큰 그림을 먼저 그린다. 어느 날 갑자기 어느 정부 부처가 우리의 업무를 위해 이런 위성을 갖고 싶다고 해서 발사하는 것이 아니다. 제일 먼저 미국 과학계가 지구 및 우주 분야에 대한 10년 단위 조사(Decadal Survey)를 진행한다. 10년 단위 조사란 그냥 뭔가를 간단히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인류의 미래, 지구의 지속 가능성, 기후변화 등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통해 10년 단위로 주요한 연구 의제를 발굴하는 것이다. 만약 기후변화 문제라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 공학자, 기술자, 행정가들이 참여하여 기후변화의 원인, 영향, 예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객관적인 질문을 먼저 도출하고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연구 과제를 도출한다. 그래서 10년 단위로 필요한 연구 사업이 발굴되고 그것이 국가 위성개발사업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현재 지구분야의 가장 최근 10년 단위 보고서는 2018년에 발표되었고 그 보고서의 주요 내용에 맞춰 여러 기관에서 산발적으로 위성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NASA를 중심으로 일원화되어 위성개발사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위성을 발사하기에 앞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그 자료를 어디에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처절한 고민이다. 정말 처절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내가 일했던 탄소순환 연구팀은 JPL에서 OCO-2(Orbiting Carbon Observatory-2)라는 위성을 개발하게 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팀이다. NASA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기후변화 유발물질인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OCO-2를 발사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단순히 위성을 만들고 운용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 아니라 그 어떤 연구조직보다 강력한 과학팀을 구축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이것이 NASA 스타일이다. 위성이 측정한 결과를 얼마나 잘 활용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실제 내가 그곳에서 일할 때 보스였던 데이비드 시멀은 전 지구 탄소순환 분야 중 세계 넘버3 안에 드는 탄소연구의 거장이며, 그는 JPL이 탄소연구팀을 만들기 위해 모셔온 분이다. 그 결과 현재 NASA JPL의 탄소순환 연구팀은 누구보다 뛰어난 혁신적 연구를 통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온실가스 연구기관 중 가장 많은 연구 논문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 논문을 기반으로 미국의 탄소중립 정책을 수립하는 핵심 정보를 정부에 제공하고 있다. 최첨단 기술로 획득한 정보를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정교하게 국가의 탄소중립 전략을 수립해나가는 것이다.
한국 위성사업 일원화 필요
NASA의 위성 사업에 비추어보면 한국의 위성 사업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 한국에서는 기상, 환경, 산림, 농업, 수자원, 국토, 해양 등 다양한 분야의 위성 사업이 다양한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각 부처의 위성은 이미 하늘에 올라가서 서비스를 하고 있거나, 개발 중이거나, 개발을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점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처럼 다양한 부처에서 위성센터를 운용하는 국가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도 몇년 전에는 한국처럼 많지는 않지만 몇개 부처에서 따로 위성 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거의 NASA로 일원화되어 있다. NASA에서는 특정 정보가 필요한 부처의 수요를 받아 개발, 발사, 운용하고 부처는 거기에서 나온 측정자료를 받아서 필요한 부처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사실 이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정부의 모든 업무 하나 빠짐없이 전문성이 중요하겠지만 위성 사업은 상당히 고도화된 전문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전문성이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전문성이 반드시 있어야 업무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과연 여러 정부 부처가 위성센터를 만들고 부처별로 위성을 개발하고 위성센터를 운용할 때 충분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 모든 조직 하나하나 충분한 숫자의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위성 기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한국도 우주청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생긴다. 과연 한국의 우주청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지나칠 정도로 늘어나는 국가 위성 사업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 되면 어떨까 한다. 기존의 많은 위성센터들과의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하고 미래도 그리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글로벌 리더십이다. 2024년 전 세계 어떤 국가든 정부의 새로운 조직은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가 없다면 광활한 우주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대한민국 우주청이 혁신적 우주기술 개발을 통해 전 세계 탄소중립 및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구탐사의 선봉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산업화 이후 개발의 시대에 미국 NASA가 인류를 위한 지구탐사를 책임져왔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개발이 아닌 탄소중립의 시대에는 대한민국 우주청이 지구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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