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출’ 공보의들 “이틀 교육 받고 현장 투입…법적 책임은?”

정윤경 기자 2024. 3. 1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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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병원에 공보의 138명 투입…일반의가 66%
“대다수 현장 경험 없어…구체적 업무도 지시 못 받아”
지역 의료 공백 우려도…정부 “내주 200명 추가 투입”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정부가 군의관 및 공중보건의(공보의) 차출을 시작했다. 이를 두고 당사자인 공보의들의 반발이 새어 나오고 있다. 공보의 대다수가 이제 갓 의대를 졸업해 숙련도가 낮은데다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법적 책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3주째 접어든 11일 공보의가 투입된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 이탈이 장기화하자 이날부터 군의관과 공보의를 투입해 비상진료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아무런 준비 없이 끌려 나가는 것 같다"

11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복지부는 이날부터 4주간 전국 병원 20곳에 군의관 20명, 공보의 138명 등 총 158명을 투입했다. 이들은 서울의 주요 대형병원인 '빅5' 병원을 비롯해 지방 국립대병원 등 지역 거점 병원으로 파견됐다. 투입된 공보의는 이날부터 이틀 동안 병원에서 실무 교육을 받고 오는 13일부터 전공의 업무 일부를 대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관은 군부대 안에서 보건·방역·진료 업무를 담당하는 의사를, '공보의'로 줄여 부르는 공중보건의는 병역 의무 대신 3년 동안 의사가 없는 외딴 섬 등에 들어가 진료활동을 하는 의사를 말한다.

정부가 이들을 대학병원에 파견하는 이유는 전공의 사직 장기화로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는 현장의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다. 지난 8일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한 복지부는 "진료지원 간호사와 공중보건의사 및 군의관 투입 및 추가 인력 채용 지원 등을 통해 현장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경감해 비상진료체계의 지속성을 제고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장 경험이 부족한 공보의들이 응급환자나 중증환자 진료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날 투입된 공보의 138명 가운데 일반의는 92명이다. 파견 공보의 가운데 66%에 달하는 수가 일반의인 셈이다.

일반의는 의대를 졸업한 후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의사다. 대개 전공의 과정 중 레지던트(3~4년)를 밟지 않고 인턴(1년)까지 이수한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의료 낙후 지역의 보건소 등지에서 감기나 통증 등 일반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당사자인 공보의들 역시 우려를 표하는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소속 직역 의사회인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대공협)의 이성환 회장은 이날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의사 국가고시 합격 후 공보의로 근무하면서 현장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반의가 상당수"라며 "아무런 준비 없이 끌려 나가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회장은 전남 영암군 보건소의 1년차 공보의이기도 하다.

공보의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구체적인 업무 영역을 비롯해 사고 시 면책 범위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이 회장은 "파견 병원에서 어떤 업무를 맡게 되는지, 법적인 보호는 어디까지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안내 없이 차출됐다"며 "관련 내용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문의했으나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11일 충남 논산시의 한 면 단위 보건지소 앞에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해당 보건지소에서 일하던 공중보건의 1명이 도내 종합병원으로 파견되며 이 보건지소는 현재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연합뉴스

"파견 거부 못해…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

공보의들 사이에선 열악한 처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주 80시간 근무를 통지한 병원이 있거나 실무 교육을 하루 만에 끝내겠다는 병원도 있다"며 "병실 한 곳을 내주며 공보의 4명이 지내라고 하는 병원도 있는 등 공보의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 처해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고 해도 파견을 거부할 수 없다. 공보의는 계약직 국가공무원 신분이라 정부의 파견 명령에 따라야 한다. 이 회장은 "공보의는 임기제 공무원임과 동시에 병역법을 일정 부분 적용받고 있어 파견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다"며 "파견을 총괄하는 정부에서 공보의 보호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하는데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장 쉽고 저렴한 방법으로 공보의를 동원한 게 아닌가"라며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식"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의대를 졸업하고 바로 복무해 인턴도 마치지 않은 일반의들이 해당 과에 특화된 3∼4년차 전공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의료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며 "격오지 주민과 군인의 건강보다 어차피 메워지지도 않을 수련병원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중요한가"라고 비판했다.

이 회장 역시 "지역 주민들은 지방에서 의료 인력을 빼내서 수도권에 투입한다는 데 불만을 갖고 있다"며 "대공협 차원에서 어느 지역에 얼마나 의료 인력이 부족한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장의 우려에도 복지부는 이르면 내주 공보의 약 200명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정통령 중대본 중앙비상진료대책상황실장(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이날 "공보의 2차 투입은 가급적 다음 주 중에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기관 수요조사를 마친 뒤 배치해야 해서 시기는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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