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m 굴뚝농성장에 달려가 조처한 건 월권”…야유와 실소 터진 인권위 전원위

고경태 기자 2024. 3. 1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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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조사관이 긴급을 필요로 하는 위험한 농성장에서 농성자에게 식수와 음식, 방한용품을 제공해주도록 조처한 것은 적절한 행동일까, 아니면 월권일까.

11일 오후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전원위원회는 한국알콜 울산공장 55m 높이 연소탑 고공농성 현장을 조사총괄과 조사관이 방문해 농성자에게 식수 및 방한용품을 제공하도록 한 일을 놓고 1시간 넘게 고성과 비방이 섞인 논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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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적인 논쟁에 방청객들 “유치하고 저질스럽다”
11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전원위원회 개회를 앞두고 위원들이 자리에 앉아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인권위 조사관이 긴급을 필요로 하는 위험한 농성장에서 농성자에게 식수와 음식, 방한용품을 제공해주도록 조처한 것은 적절한 행동일까, 아니면 월권일까.

11일 오후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전원위원회는 한국알콜 울산공장 55m 높이 연소탑 고공농성 현장을 조사총괄과 조사관이 방문해 농성자에게 식수 및 방한용품을 제공하도록 한 일을 놓고 1시간 넘게 고성과 비방이 섞인 논쟁을 벌였다.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과 한석훈 위원은 “조사관의 월권이자 불법”이라고 비판했다. 긴급구제 진정이 들어올 경우 사전에 소위원장이나 상임위원회에 보고한 뒤 승인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한석훈 위원은 “전원위에 이 안건을 정식으로 상정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당 진정은 민주노총 화물연대 울산본부 한국알콜지회가 지난 2월21일 인권위에 낸 ‘경찰의 고공농성 노동자에 대한 식수 및 방한 물품 등 반입 제한’에 대한 긴급구제 신청이다. 경찰이 식수 및 방한 물품을 막는 게 아니냐며 낸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인권위 조사관은 22~23일 현장으로 가 고공농성자 2명이 55m 상공의 굴뚝에서 제대로 식사와 식수를 제공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음식과 방한용품 물품을 제공하도록 조처했다고 한다.

이충상 상임위원은 “이는 사인과 사인 간의 분쟁이다. 경찰이 인권침해를 하지도 않았는데 왜 (인권위 조사관이) 개입하느냐”는 말을 반복했다. 송두환 위원장은 “농성장에서 인권침해 상황에 대한 호소가 있어 살펴본 걸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된다”고 했고, 남규선 상임위원은 “물과 음식, 방한용품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경찰의 보호 임무가 있다”고 했다.

한국알콜 농성장에 파견된 조사관이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한 행동에 대해 인권위 쪽에서는 “긴급구제 요청 진정이 접수되었기에 현장조사를 위해 방문하여 적절한 조치를 한 것이고, 본 진정사건은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 조사구제규칙상의 ‘조사중 해결’이라기보다는 현장조사 과정에서 진정취지를 피진정인이 받아들인 경우라는 것이다. 이날 전원위를 지켜본 사무처의 한 간부는 한겨레에 “경찰은 농성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위험한 현장에서 경찰관이 별도의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은 부작위에 해당한다. 조사관이 경찰 및 사용자 측을 압박한 것도 아니고 잘 소통해서 물과 음식, 방한용품을 올려보내도록 최상의 예방 조처를 했는데 왜 비난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이날 여느 때와 똑같이 전원위 개회와 함께 모두발언을 신청해 지난 7일 상임위원회에서 했던 발언을 재탕하면서 2시간 넘게 시간을 끌었다. 조사관의 한국알콜 울산공장 방문 건과 함께 침해1소위 녹취록과 관련한 송 위원장의 허위사실 적시에 대한 사과, 송 위원장의 관서업무 추진비 진상조사 등이었다. 송두환 위원장은 지난 7일 상임위에서 이에 대한 자세한 답변을 한 바 있다.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몇몇 위원들의 어이없는 발언이 나오자 방청석에서는 야유와 폭소가 터졌다. 이날 김용원 위원은 본인의 말에 대해 “폭언“, “언어폭력” 등 비판이 나오자 오히려 “송 위원장이 말버릇이 없다”고 공격했는데, 이충상 위원은 이를 두둔하며 “위원장님은 김용원 위원이 말할 때는 조용히 있다가 제가 말할 때만 ‘응, 응’이라고 말하는데 그동안 굉장히 기분나빠도 꾹 참아왔다”고 지적해 실소를 자아냈다.

지난 상임위 때 방청석 쪽에서 직원 항의가 나오자 방청석을 노려보며 “누구냐”고 따졌던 김용원 상임위원은 이날도 방청석의 야유에 벌떡 일어나 방청객을 노려보기도 했다. 이날은 ‘유엔의 여성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에 대한 인권위 독립보고서 의결의 건’이 상정되기로 돼 있어 여성단체와 인권단체 방청객 20여명이 와 있었다. 방청석에서 회의를 지켜본 여성단체의 한 인사는 “인권의 에이비시도 모르는 자들이 상임위원으로 앉아 위원장과 사무총장 흠집 내고 끌어내리려 혈안이 되어 있다. 유치하고 저질스러운 말장난을 듣기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원민경 위원은 군 인권보호관을 겸임하고 있는 김용원 상임위원의 윤 일병 가족 수사 의뢰 건과 관련해 “유가족에 대한 수사 의뢰는 단순히 반인권적인 처사라는 점을 넘어서서 동료 인권위원으로서 그대로 좌시하기 어려운 너무나 중대한 사안”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원민경 위원은 김용원 위원과 같은 군 인권보호위원회 소속이다. 군인권센터는 최근 김용원 상임위원이 윤 일병 가족을 수사의뢰한 건에 대해 유엔 특별보고관에게 긴급청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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