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폴리시, 최고 정책전문가가 말한다] 中企 기술혁신, 비빔밥 같은 지원을
절상생지(節上生枝)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직역하면 '가지 마디에 또 가지가 돋는다'는 뜻인데, 일이 복잡해서 그 진상을 알기 어려움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세상만사 간단한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중소기업에서의 기술혁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표현 중 하나가 '절상생지'라고 생각된다. 정부가 그 동안 많은 지원정책들을 추진해 왔지만 그 복잡함 때문에 아직도 수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기술혁신은 그 단어의 조합만 봐도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중소기업만 하더라도 그 범위가 넓고 사정이 제 각각이라서 공통된 특징을 뽑아내기 쉽지 않다. 이제 갓 창업한 스타트업부터 몇 십년 째 건실하게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장수기업도 중소기업이며, 이제 연구개발을 시작하는 기업부터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딥테크 기업도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광범위하고 모호한 정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혁신도 마찬가지다. 실험실의 연구·개발(R&D)에서 시작되는 기술혁신은 불확실성에 투자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을지, 또 막상 실현된다 하더라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복잡다단함 때문에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을 지원하는 정책이 간단해서는 안 된다. 현상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간단한 정책처방은 미봉책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대부분의 중소기업 기술혁신 정책은 프로젝트 방식의 연구개발 자금(출연금) 지원 같은 일차원적 접근에 머물러 있다.
중소기업의 사정이 다양하고 코로나19, 디지털 전환, 미-중 반도체 공급망 갈등 등 외부환경이 빠르게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연금 같은 오래된 정책처방을 고수하는 것이 국가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일부 기업들의 전략적 행동으로 국가 연구개발 프로젝트 투자가 왜곡되면 정부지원금에만 의존해 연명하는 소위 좀비기업은 늘어나지만 실력 있는 기술기업이 제대로 된 혁신을 이뤄내지 못하는 '투자의 딜레마'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연구개발이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보다 효율적인 투자가 되기 위해서는 옥석을 골라 기술혁신 역량이 있는 잠재력 높은 중소기업에게 투자해야 하며, 다양한 지원정책을 복합적으로 조합하는 변화를 꾀해야 한다. 최근 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정책혼합(policy mix)이 좋은 예이다. 정책혼합은 다양한 정책지원을 비빔밥처럼 복합적으로 제공하는 새로운 정책지원 방식이다. 개별적이고 파편화된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정책을 묶음식으로 지원함으로써 수혜기업의 전략적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고 정책효과의 지속가능성을 최대화한다는 이점이 있다.
기술보증기금 등 일부 중소기업 지원기관들이 실험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융자형 R&D가 대표적인 예이다. 융자형 R&D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기술혁신 역량이 뛰어난 기업들을 추려내고, 시제품 개발 등 연구개발 후단부에서 자금이 부족한 기업들에게 상용화에 필요한 연구개발비를 융자형태로 지원하는 방식인데, 단순한 융자로 끝나지 않는다. 제도를 설계하기에 따라 다양한 분기점을 둘 수 있는데, 연구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융자금을 출연금으로 전환하거나 금융이자를 지원하는 식으로 변주함으로써 잘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융자형태의 지원이 유지되는 경우 기업이 지출한 연구개발비에 대해 세액공제를 지원하는 등의 부가적인 지원도 가능하다. 물론, 정부 재원을 다른 목적으로 악용하거나 연구개발을 불성실하게 수행할 경우 출연금으로 전환하지 않고 융자금에 대해 높은 금리를 적용함으로써 정부의 재정투자가 비효율적으로 배분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할 수도 있다.
기업의 혁신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만큼, 정부의 지원정책도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야 한다. 정책혼합 같은 비빔밥 같은 지원을 통해 정부 재정지원의 효율성을 높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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