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 공방에 '인종차별' 거론까지... 거칠어지는 여야 네거티브 공방
이재명 "국민의힘, 패륜·음란"
총선 30일 네거티브 공방 가열
4·10 총선을 30일 앞두고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여야가 앞다퉈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비전 경쟁 대신 '패륜' '종북' '음란' 등 자극적인 표현으로 상대를 악마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거대 양당의 지지율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각 당 지지층을 우선 결집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쓴 21대 국회의 여야 대치 상황이 22대 국회에서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게 제기된다.
한동훈 "이재명, 인종차별급 막말" 이재명 "국힘, 패륜 음란 친일"
한 위원장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이 대표를 향한 날 선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이 대표의 '2찍'(윤석열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람을 조롱하는 용어) 발언에 대해 "저희는 이 대표의 막말과 천박한 언행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며 "자기를 안 찍을 것 같은 시민에게 '혹시 고향 그쪽 아니냐'고 묻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인종차별에 준하는 막말"이라고 했다. 그는 이 대표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음주운전 △일제 샴푸 사용 등을 일일이 열거하며 "대단한 건, 이걸 다 이 대표 한 명이 했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포문을 연 쪽은 이 대표였다. 그는 10일 기자회견에서 앞서 논란이 됐던 국민의힘 총선 후보 일부를 거론하며 여당 공천을 '패륜' '음란' '친일' '극우' '돈 봉투' '탄핵 비하' 등으로 공격했다. 그러면서 "이 패륜공천은 대국민 선전포고 그 자체"라며 "4·10 총선은 패륜공천에 대한 심판의 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국민의힘을 '반국민세력'이라고 부르며 이번 선거를 "반국민세력과 국민의 대결"로 규정했다.
네거티브로 반사 효과 기대... 민주당은 조국신당 영향도
상대 당을 향한 거칠고 공격적인 네거티브 전략은 여야가 팽팽한 접전을 펼칠 때 더 기승을 부린다. 상대를 조금이라도 깎아내려 반사 효과를 보기 위해서다. 지난 5~7일 실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7%, 민주당 지지율은 31%였다. 야권 성향인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6%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여야 지지율 차이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특히 무당층이 여전히 19%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약점을 겨냥한 언어 폭격은 상대 당에 반감이 있는 유권자를 자극할 수 있다.
조국혁신당과 선명성 경쟁까지 해야 하는 민주당 상황도 선거판을 더 거칠게 끌고 가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한국갤럽 조사에서 '조국혁신당에 비례대표 투표를 하겠다'는 응답이 15%에 달하는 등 조국혁신당이 민주당 지지층 상당수를 흡수하고 있다. 여권에 반감을 갖고 있는 유권자 상당수가 조국혁신당에 호응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민주당도 더 선명한 표현으로 차별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병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최근 본보 인터뷰에서 조국혁신당 등장에 대해 "민주당이 그간 좀 부족했던 것을 극복하면서 확실한 대안세력으로 면모를 갖추기 위해 더 노력하면서 선명성 경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한 대치' 21대 국회 모습 이어질 것"
문제는 총선 이후다. 여야는 선거 이후에도 22대 국회를 이끌어야 할 경쟁자이자 파트너다. 이미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단독 법안 통과 후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수차례 반복되는 등 극한 대치가 계속돼 왔다. 거칠어진 선거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국민들의 정치 혐오로 이어진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과거에는 당이 다르더라도 의원들끼리 함께 식사하고 술도 마시는 등 스킨십을 할 기회가 많았다"며 "요즘에는 얘기도 잘 안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불과 2년 전 대선이 이런 우려를 증명한다. 당시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히틀러' '소도둑' '원시사회' 등 노골적인 표현으로 상대 후보와 상대 당을 비난했다. 대선이 끝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실제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영수회담 등 협치에 모두 손을 놓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여야가 서로를 경쟁 상대나 파트너가 아닌,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모습이 선거 과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22대 국회가 구성돼도 21대 국회의 연장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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