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짜르 푸틴`과 사라지는 사람들
러시아 대선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명실공히 푸틴의 '짜르 대관식'이다. 정치적 적수는 아무도 없다. 올해 나이 71세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번이 벌써 대선 5선째다. 2030년까지 정권 장악은 계속된다. 새 임기까지 마치면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의 29년 집권기간을 갈아치운다. 18세기 34년을 통치했던 예카테리나 2세 이후 러시아 최장수 통치자가 되는 셈이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꿈은 또다시 짓밟혔다.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냈던 이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영영 사라졌다. 몇몇 야권 인사들도 이번 대선 출마에 도전했지만 후보 등록조차 못했다. 푸틴을 위한, 푸틴에 의한 완벽한 종신 즉위식이 일찌감치 예고됐다. 대선은 단지 요식행위일 뿐이다.
'짜르 푸틴'의 시대, 러시아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정치인을 비롯해 사업가, 관료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종적을 감췄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의문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22년부터 현재까지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은 러시아 사업가는 무려 51명에 달한다.
푸틴의 전방위 압박에 가장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이는 나발니다. '푸틴의 정적' 나발니는 30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 최북단에 위치한 교도소에서 47세 나이로 의문사했다. 석연치 않은 죽음이 있고 난 후 8일 만에야 그의 시신은 유족들에게 인계됐다. 대선을 앞두고 나발니에 대한 대규모 추모 열풍이 일자 깜짝 놀란 당국은 공포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추모객을 잡아들였고 나발니 친동생까지 수배 명단에 올렸다.
우크라이나로 망명했던 러시아 조종사도 지난달 의문의 죽음을 당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조종사는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뒤 스페인에 이주해 신분을 숨기고 살았다. 그러나 한 빌딩 지하 주차장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러시아 스파이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여 행한 암살 작전이라는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기업가들도 의문스러운 죽음 행렬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러시아 국영 석유 대기업 로스네프트 CEO의 아들 이반 세친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달 초 모스크바의 고급 아파트에서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의식을 잃은 뒤 숨졌다. 그의 아버지는 푸틴과 친분이 두터운 사업가로 알려졌었는데도 이같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이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비극적인 죽음은 말할 것도 없다. 푸틴과 오랜 친분 관계를 유지해온 그는 러시아군 수뇌부와 갈등으로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뒤 의문의 전용기 추락으로 숨졌다. 또한 미국과 러시아의 이중국적자인 33세 여성도 반역죄로 체포된 일이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친크렘린 블로거들까지 러시아 당국의 탄압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의 대규모 인명피해를 언급한 블로거 안드레이 모로조프가 돌연 숨지기도 했다. 러시아가 최대 전과로 내세운 아우디이우카 전투에서 병력 1만6000명과 장갑차 300대를 잃었다고 주장한 게 화근이었다.
독재자 푸틴의 지속력이 놀랍다. 20년 넘은 철권 통치는 더욱 강고해지는 분위기다. 선택적 암살과 테러, 망명은 잦아들 줄 모른다.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하기 위한 도구는 정교해지고 있다. 이정도면 '도살자'라는 악명도 부족하다.
푸틴은 집권 기간 내 숱한 전쟁을 일으켜 권력을 강화해왔다. 러시아인에게 자유란 허울 뿐이다. 전쟁과 푸틴에 대한 비판은 허용되지 않는다. 자유는 철저히 질식사 했다. 우크라 전쟁이 시작됐을 때 러시아 심장부인 모스크바 광장에 이런 반전 구호가 걸렸다고 한다. "1945년 파시즘에 승리한 나라. 2022년 파시즘이 승리한 나라." 올해는 '짜르 푸틴'의 파시즘이 완성되는 해로 기록될 것 같다. kt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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