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작전 같은 의대 증원, ‘관언합동 선거운동’ 멈춰라 [왜냐면]

한겨레 2024. 3. 1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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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철갑 | 조선대학교병원 교수

“이거 언제까지 가겠습니까?” 병원 밖에서 만나는 지인들의 인사 첫마디다. 지금 쟁점인 의대 2000명 증원 문제에 대해 의대 교수인 내게 묻는 말이다. 그러나 뭐라 대답할 수 없다. 전공의와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가 워낙 완강하기에 지방대학 교수로서는 더 답답하다.

3년여 전 2020년 9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의대 정원을 10년간 한시적으로 연간 400명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이런 계획에 반대하며 단체행동에 나선 전공의를 지지하는 듯한 입장을 발표하자는 교수평의회 제안에 대해, 나는 “환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 사회적 책무를 경시하고, 의사가 속물인 이익만 추구하는 집단으로 보여 국민에게서 더 멀어질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지금도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행히 그때 민주당과 대한의사협회는 국민건강과 보건의료제도 발전을 위해 지역의료 불균형, 필수의료 붕괴, 의학교육과 전공의 수련체계의 미비에 대응하는 논의를 국회 중심으로 하자고 합의하며 일단락됐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갑자기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해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의료제도 개혁은 범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음에도, 군사작전 하듯이 한다. 이에 상급종합병원 전공의들의 직무 거부가 시작됐다.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에 ‘파업 유도설’도 나온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대통령이 사회적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계속 강경 대응하는 것이다.모든 언론도 의료개혁의 필요성과 함께 시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국민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의료계만 비판하며, 정부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모양새로 갈등을 확대시킨다. 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의 여론 지지율이 급상승했다고 한다. 2년여 동안 수많은 실정을 뒤덮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관언합동 선거운동이 있을까 싶다. 대단히 성공적인 프레임 전환이다.

개원의와 봉직의, 중소병원과 상급종합병원, 교수와 전공의 등 의사 내부의 이해관계는 다양하다. 이들 의사 집단과 의료 수요자인 국민 모두가 잘못된 의료정책에 대해 끊임없이 개선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그동안 누적돼온 의료체계 문제와 개선 방향에 대해 단 한 번도 중장기 계획을 수립한 적이 없다. 현행법에 보건의료발전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게 돼 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의문이다. 이게 그리 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인가? 1945년 해방 이후 지금까지 80여 년 동안 의료수요에 대응해 중장기적 계획에 따른 정책보다는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땜질식 처방이었다. 국민의 의료 소비 행태도 변하고, 경제·사회적 구조 변동에 따라 젊은 의사들의 직업관도 바뀌어 지금과 같은 필수의료 붕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인데, 이걸 단순히 의대 정원 확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지금같이 한다면 더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 확실하다.

가령, 현재 수도권에는 건축이 승인됐지만 아직 건설되지 않은 병상 수가 6000개다. 의대 정원을 지방대학에 배정해서 열심히 가르쳐 졸업생을 늘리면 무엇하나? 이들 대부분은 수도권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큰데. 커다란 이해관계가 달린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대안 없이, 무작정 일시에 2000명 증원이라는 것은 단언하건대 의과대학만 아니라이공계 대학 전체와 초·중·고 교육 및 사교육 시장까지 연쇄적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현행 의료체계 문제의 이해당사자는 정부와 의사만이 아니다. 국민이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다. 그럼에도 정부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필수의료 문제의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건강보험료 인상 등 국민이 감수해야 할 일들은 철저히 감추고, 의대 증원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정말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승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국민건강과 보건의료제도의 발전을 위한다면,이런 땜질식 처방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필수의료 붕괴와 지역의료 불균형 해결을 점진적, 안정적, 구조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법제화해 설령 정권이 바뀌더라도 의료개혁 정책이 일관성을 갖고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그렇게 하려면 4월 이후 다음 국회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서 추진해야 한다. 물론 각 정당도 지금 당장 종합적인 의료개혁에 대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전공의는 환자가 기다리는 병원으로 더 늦지 않게 빨리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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