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 출국’에 급했나…‘피의자’ 이종섭, 신임장 원본도 없이 호주행 논란

박은경 기자 2024. 3. 1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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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임명 공관장 소수일 땐 수여식 일정 잡기 어려워”
“신임장 원본 없어도 대부분 활동 가능” 설명
교민 단체 임명 철회 시위 등 외교 활동 우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및 의원들 등 당직자들이 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대사 출국을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 대사는 확인되지 않은 출입구를 통해 출국장에 들어갔다. 사진공동취재단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로 수사받던 중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10일 출국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신임장 원본없이 사본을 들고 부임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교부는 11일 “대부분의 일반적 외교활동은 신임장 사본 제출 이후에는 모두 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피의자 신분인 이 전 장관을 다급하게 출국시키느라 발생한 일이란 의구심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관련 논란에 대해 “새로 임명된 공관장이 소수일 때는 신임장 수여식 없이 부임한 뒤 신임장은 외교행랑을 통해 별도로 보내고, 나중에 다수의 신임 대사가 국내에 모이는 자리에서 신임장 수여식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임명 공관장이 소수일 때는 별도로 수여식 일정을 잡기 어려워 신임장 원본 없이 출국하는 경우도 많다는 주장이다. 이 대사는 지난 4일 주나이지리아대사(김판규 전 해군참모차장) 1명과 함께 임명됐다.

또 신임장 원본이 없어도 이 대사가 신임장 사본을 호주 외교부에 제출하면 대사로서 대부분의 활동이 가능해진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원본을 제출해야 주재국의 입법, 사법, 행정 수장 등 3부 요인을 만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일반적 외교활동은 신임장 사본 제출 이후에는 모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 대사의 신임장 원본을 조만간 외교행낭으로 호주 현지에 보낼 예정이다.

이 대사는 다음달 열릴 예정인 재외공관장 회의를 계기로 일시귀국해 다른 대사들과 함께 신임장 수여식을 할 가능성이 있다. 신임장 사본만 들고 부임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의자 신분으로 대사에 임명돼 부임한 과정을 살펴보면 ‘도피부임’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7월 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숨진 해병대 채상병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수사 외압 의혹이 대통령실과 연관됐는지 여부를 가를 수 있는 핵심 인물이다.

장관보다 한참 낮은 차관보급이 가는 호주대사로 지난 4일 임명됐다. 이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의해 지난 1월부터 출국금지 조치를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8일 법무부가 출국금지 해제 결정을 내렸고, 이틀 만인 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호주 브리즈번으로 출국했다.

임명부터 출국까지 모든 절차는 6일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공수처가 4시간짜리 약식조사로 명분을 만들자 법무부가 곧장 출국금지 해제를 결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사 출국으로 인한 수사 차질 우려에 “이 대사가 공수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 언제든지 공수처에서 소환하거나 수사가 필요해서 와야겠다고 하면 언제든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간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이 대사의 출국 직전까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외교부는 “호주가 인도·태평양 전략상 중요한 안보 파트너라는 점을 고려해 국방장관 출신의 중량감 인물을 호주 대사로 임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당에서 ‘개구멍 출국’ 비난이 이어지고, 외교부·법무부 장관에 대한 탄핵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이 대사가 제대로 외교 사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진다.

호주 교민들도 반발하고 있다. 교민 단체인 시드니촛불행동 회원들은 지난 9일(현지시간)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오는 13일 주호주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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