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교사들 수억 받고 문항 팔았다..."학원 정점으로 피라미드식 조직 거래"
조직적 거래에 배우자 출판사까지 동원
이력 숨기고 수능 출제위원 참여하기도
지난해 '킬러문항' 논란 등으로 불거진 사교육 카르텔의 실체가 감사원 감사를 통해 상당 부분 확인됐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모의평가 출제에 참여한 고등학교 교사들이 '문항 공급 조직'을 꾸려 사교육 업체와 거래하는 '유착 관계'가 드러난 것이다. 감사원은 이를 "대형 입시 학원을 정점으로, '피라미드식 조직화' 형태로 전개된 문항 거래"라고 꼬집었다.
대형 학원 정점으로 피라미드식 운영...문제 팔아 수억 챙겨
감사원은 11일 '교원 등의 사교육 시장 참여 관련 복무실태' 감사에 대한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현직 고교 교사 27명, 학원 강사 등 사교육 업체 관계자 22명,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대학교수 한 명과 평가원 직원 4명, 전직 입학사정관 1명 등 총 56명을 경찰에 수사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는 사안에 따라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배임수증재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를 통해 교원과 사교육 업체 간 문항 거래가 조직적으로, 상당 기간 고착화됐다고 판단했다. 다수의 교사가 수능 문항과 유사한 문제를 만들어 팔았고, 중간 관리 역할을 맡은 일부 교사는 사교육 업체와 이들 간 거래를 성사시킨 뒤 수수료를 받아 챙겼고, 대형 입시 학원과 '일타강사'로 알려진 유명 강사들은 이들로부터 문제를 구입해 '족집게 능력'을 과시했다. 현행법상 현직 교사들은 공익 목적, 학교장 허가 등 일부 조건하에서만 문항 판매 등의 영리 업무가 가능하다.
고교 교사 A씨는 수능·모의평가 출제 합숙 중 알게 된 검토 및 출제위원 참여 경력이 있는 교사 8명을 포섭해 2019년 문항 공급 조직을 구성했다. 이들과 함께 수능과 유사한 문항을 2,000개가량을 만들어 다수의 학원과 강사에게 6억6,000만 원을 받고 팔았다. 참여 교사들에게 3억9,000만 원을 나눠주고 남은 돈 2억7,000만 원은 자신의 알선비와 문항 제작 비용으로 챙겼다. 판매금 일부는 탈세를 위해 배우자 등 명의 계좌로 받았다. 또 다른 교사는 동료 교사 두 명과 함께 유명 강사의 의뢰로 수능 경향을 반영한 소위 '킬러문항'을 2,000개가량 공급, 3억2,0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배우자와 출판사 차리고 문항 판매...이력 숨기고 수능 출제 참여한 교사도
A씨와 함께했던 교사 B씨는 2022년 평가원에 파견돼 지난해까지 수능과 모의평가 출제에 다섯 차례나 참여했다. 규정상 3년 내 사설 모의고사 문항을 만들어 판 사람은 출제위원이 될 수 없지만, B씨는 거짓을 말하고 출제위원이 됐다.
배우자와 공모해 아예 출판업체를 운영하며 동료 교원에게 구입한 문항을 대형 학원에 공급한 교사도 있었다. 교사 C씨는 2019년 출판업체를 설립한 부인과 공모해 EBS 교재 집필 등으로 알게 된 현직 교사 35명과 함께 '문항 제작진'을 구성하고, 2022년까지 18억9,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EBS 교재가 수능출제와 연계된다는 것을 악용해, 출판 전 EBS 교재를 빼돌려 장사에 활용한 교사도 있었다. 2015년부터 EBS 수능연계 영어교재 집필에 참여하던 교사 D씨가 유명 강사의 문항공급 청탁을 받고, 파일을 빼돌려 무단으로 8,000여 개의 변형 문항을 만들어 준 뒤 5억8,000만 원을 챙긴 것이다. D교사는 거래한 문항을 자신의 학교 중간 및 기말고사에 출제하기도 했다. 문항을 판매한 사교육 업체에서 공부한 학생들만 유리하도록 한 것이다.
수능 영어 23번 문항 중복 출제에도 평가원은 모르쇠
논란이 됐던 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항의 출제 과정이 규명됐다. 해당 문항은 문제 지문이 일타강사 교재와 일치해 '짬짜미 출제' 의혹이 일었다. 국내 미출간 원서의 특정 단락이 일타강사 교재와 수능, 비슷한 시기 제작된 EBS 수능 교재 초안에 나란히 실린 것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해당 문제를 수능에 출제한 대학교수 A씨는 전년도 EBS 수능연계교재를 감수하면서 알게 된 지문을 무단으로 사용했다. EBS 보안서약서 위반이다. A씨가 감수한 EBS 교재는 23년 1월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지문은 대형 입시학원인 메가스터디의 유명 강사 B씨가 22년 9월 모의고사로 발간한 문제집에도 실려있었다. B씨는 평소 EBS 교재 집필 경력이 있는 고교 교원 C씨에게 문항을 공급받았다.
수능을 주관하는 평가원은 이를 사전에 검증하지 못했고, 사후에는 은폐했다. 평가원은 수능 문항 확정 전 모의고사 문항과 중복 검증을 위해 B강사의 모의고사를 계속 구매해왔으나, 유독 22년에만 석연찮은 이유로 누락했다. 또 평가원 담당자들은 이 문항에 대해 전체 이의신청 건수의 62%에 달하는 215건이 집중됐음에도 '공정성 논란 우려'를 이유로 해당 안건을 이의심사위원회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버렸다.
숨겨진 사교육 카르텔, 더 있을 수 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교사들과 평가원, 대학교수 간 유착관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진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감사가 교육부에 문항 거래 등을 자진 신고한 교원 중 비위 정도에 따른 200여 명을 대상으로만 이뤄졌다고 했다. 감사원은 "수사 요청 외 문항 거래를 한 다수 교원에 대해 향후 엄중히 책임을 묻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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