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ELS 자율배상안 놓고 고심… ‘배임’ 우려에 법률 검토 병행
“배상액 산정 후 이사회 의결 거쳐 결정”
‘과징금 감면’ 카드에 선제적 배상 숙고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자율 배상안 수용을 놓고 은행권이 고심하고 있다. 은행들은 자칫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만큼 자율 배상안의 타당성에 대한 법률 검토에 우선 착수했다. 또 총배상 규모를 산정하기 위한 작업에도 돌입했다. 자율 배상에 소요될 비용을 추정한 뒤 이사회 의결을 거쳐 최종적으로 배상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인데, 홍콩H지수 ELS 투자자가 40만명에 이르는 데다 투자자별로 배상 비율이 0~100% 차등 적용돼 배상 규모를 산정하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한 주요 시중은행은 금융 당국이 발표한 자율 배상안을 토대로 총배상 규모를 산정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이 전달한 자율 배상안을 바탕으로 전체 배상 규모를 추정하는 작업을 우선 진행하고 있다”며 “배상 금액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배상위원회를 꾸려 논의를 거친 뒤 이사회 의결을 통해 최종 배상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8일 주요 은행 수석부행장들을 불러 이날 발표된 자율 배상안의 내용을 설명했다. 은행은 즉시 내부 회의를 소집해 관련 내용을 공유하고 총배상 규모를 추정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에 돌입했다. 배상에만 수천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자, 올해 실적에 미칠 여파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별로 배상 기준을 마련하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ELS 판매 잔액은 18조8000억원(39만6000계좌)으로 이 중 은행이 판매한 ELS 규모는 15조4000억원(24만3000계좌)에 달한다. 은행은 수십만명에 이르는 투자자들의 개별 상황을 모두 살펴 배상 비율을 산정해야 하는데, 이 작업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은행 관계자는 “일괄 배상이 아니고 판매사, 투자자의 여러 조건에 따라 배상 비율이 차등 산정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배상 규모를 산정하는 데에만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 금감원이 배상을 권고한 후 한 달 뒤 시중은행이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던 것과 비교해 속도는 더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감원은 2019년 12월 5일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해외금리 연계 DLF로 손실을 본 투자자에 대해 자율 조정 방식으로 배상할 것을 권고했고, 다음 해 1월 15일 주요 은행은 배상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러한 조정 절차를 통해 배상을 받은 투자자 수는 2700여명으로, 배상 규모는 총 2349억원이다. 평균 배상률은 58.4%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조 단위’의 과징금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은행들이 자율 배상에 나설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판매사가) 잘못을 상당 부분 시정하고 이해관계자에게 적절한 원상회복 조치를 한다면 제재나 과징금 감경 요소로 삼는 게 당연하다”며 선제적 자율 배상에 나설 경우 과징금을 감면해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금융 당국은 2021년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의거해 설명의무 위반, 부당 권유 등의 불완전판매가 적발된 금융회사에 ELS 판매 금액의 최대 50%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은행이 금소법 시행 후 판매한 ELS 규모가 17조원가량인데, 이중 불완전판매 사례가 10%만 넘어도 과징금이 조 단위가 될 수 있다.
은행 관계자는 “불완전판매 사례에 대한 징벌적 과징금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부분도 함께 고려해 배상 논의를 진행 중이다”라고 했다. 금감원은 불완전판매가 적발된 금융사에 대한 제재 절차를 신속하게 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재는 ‘제제심의위원회→금융위원회 심의·의결’을 통해 최종 확정된다.
한편 금감원이 발표한 ELS 자율 배상안과 관련해 투자자들 다수는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원금 전액 배상’을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분쟁 조정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 투자자들이 대거 소송전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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