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파장] 공공의료 살리겠다면서…공보의 차출로 지역은 '비상'
진료 차질에 지역 보건소 난감
일주일 2~3회만 진료 불가피
[더팩트ㅣ사건팀] #. 경남 거제시 보건소에는 공중보건의(공보의) 18명이 근무 중이다. 보건소는 읍·면에 보건지소 10곳을 두고 있다. 18명이 1~2명씩 10개 지소를 나눠 근무하는 형태다. 하지만 정부의 비상진료체계 강화 방침으로 1명이 파견을 가게 되면서 1곳 지소는 텅 비게 됐다. 한 동네에 그대로 의료공백이 생긴 것이다. 거제시 관계자는 "파견 나간 1명이 1곳 지소를 담당했던 선생님이라 어떻게 공백을 메울지 내부 논의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의과대학 증원 추진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11일부터 공보의를 파견했지만 논란이 일고 있다. 공보의들은 주로 지방의 의료 취약지역에서 근무한다. 정부는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이번 사태로 지역의료 공백이 불가피하게 되면서 주민들 불편이 예상된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날부터 4주간 전국 20개 병원에 군의관 20명과 공보의 138명을 파견한다. 의사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비상진료체계를 강화하는 차원이다.
지역별로 전남 23명, 충남 19명, 경북 18명, 강원 14명, 전북 10명 등 차이는 있지만 지역별로 10명 안팎의 공보의가 파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주로 수련병원으로 파견됐으며, 특히 138명 중 절반 이상은 이른바 '빅5' 등 서울 대형병원으로 배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들의 차출로 지역의료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공보의는 의사‧한의사‧치과의사 등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의사가 없는 의료 취약지역에서 군 복무 대신 지역 공중보건업무를 대신한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대공협)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국에 총 1432명의 의과 공보의가 있다. 이들은 주로 의료 취약지역 보건의료원이나 보건소, 보건지소 등에서 근무한다. 그마저도 지난 2013년 2411명에 비해 979명 감소하면서 취약지역 공보의는 현저히 부족한 상태다.
이성환 대공협 회장은 "보건소 침상이 30개 넘으면 병원 요건을 갖췄다고 해서 보건의료원이라고 부른다"며 "그런 보건의료원이 있는 곳은 대부분 의료 취약지인 곳이 많은데 공보의들은 그런 곳에 많이 종사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공보의가 빠진 지역은 비상이 걸렸다. 통상 보건지소 1곳당 1명의 공보의가 근무하는데, 이번 비상진료 파견으로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일부 보건지소는 문을 닫고 일주일에 2~3일만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총 7명의 의과 공보의가 근무 중인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의 경우 이번에 3명의 파견이 정해지면서 4명만 남게 됐다. 다행히 정부와 논의 끝에 2명만 파견을 가기로 변경됐지만 남은 5명이 보건지소 9곳을 담당하기엔 역부족이다.
경북 예천군도 2명의 공보의가 서울성모병원으로 파견 가게 되면서 8명이 10곳의 보건지소를 돌아가며 근무해야 한다. 예천군 관계자는 "공백이 생긴 보건지소의 경우 일주일에 주 2회 진료 보고 3일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번 주부터 주민들에게 날짜와 시간을 홍보하고 급할 경우 인근 보건지소에 가도록 안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공보의들은 감기 등 경증부터 심장마비, 뇌졸중 등 중증도 높은 환자까지 모든 진료를 도맡아 한다. 예방접종이나 결핵판독, 지자체의 모바일 헬스케어까지 담당하는 등 진료뿐만 아니라 사실상 지역의료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공보의 파견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급히 공보의 근무일정을 조정하고 있지만 정상진료가 불가능하게 되면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산청군 관계자는 "3명이 각각 보건지소 3곳을 맡아 요일별로 근무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며 "결국 1곳은 이틀 정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5일을 정상적으로 진료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토로했다.
경북 영덕군 관계자도 "아무래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아직 확실치 정해지진 않았는데 일주일에 두 번 요일 정해서 진료될 수 있도록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천 옹진군 관계자 역시 "아무래도 의료 공백이 생길 것 같다"며 "다음 주부터는 병원선도 돌아가면서 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대공협 회장은 "지역의료 공백은 말할 것도 없다"며 "공보의는 이미 한계에 와 있다. 1명이 여러 보건지소를 보는데 앞으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면 도서지역 등은 정말 의사 구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브리핑에서 우려를 제기했다. 의협 비대위는 "격오지 주민과 군인들의 생명과 건강보다 어차피 메워지지도 않을 수련병원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더 중요하냐"며 "모든 국민의 생명을 소중하다고 밝힌 것은 정부임에도 왜 정부가 나서서 격오지 주민과 군인의 생명을 경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이날 대형병원 중심으로 공보의를 배치해 의료공백을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수도권이 아닌 시도의 보건소 등에서 공보의들이 파견을 나오면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일단 기존 의료진으로 순환 배치를 한다든지, 2단계 계획이 있다. 200명 정도 공보의를 추가 배치할 때 이같은 부분을 우선적으로 배치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kyb@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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