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하려다 ELS 가입한 80대 75% 배상 … 투자경험 50대는 0%
은행내부 통제·부당권유 금지
초고령자 보호 의무 조항 적용
개인별 ELS 누적수익도 참고
황당한 불완전판매 사례 넘쳐
잇단 고위험상품 손실사태에
당국, 은행 판매 금지까지 검토
◆ ELS 배상안 ◆
80대 초반 A씨는 2021년 1월 예·적금 상품에 가입할 목적으로 은행을 찾았다. 은행 직원으로터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을 권유받아 2500만원을 가입했고, 당시 투자 위험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11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르면 A씨는 은행으로부터 손실액의 75%를 배상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설명의무 위반과 부당 권유 금지 위반으로 40%의 기본배상 비율이 결정되고, 은행의 내부 통제 부실(10%포인트 가산)과 초고령자 보호 미준수(15%포인트 가산), 예·적금 가입 목적(10%포인트 가산) 등이 추가로 고려돼 배상 비율이 최종 결정되기 때문이다.
반면 앞서 ELS에 가입한 경험이 있는 50대 B씨는 배상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금감원 기준안에 따라 설명의무 위반을 일괄 적용받아 기본배상 비율이 20%로 결정됐지만 ELS 가입 경험이 62회(10%포인트 차감)에 달하는 데다 그동안 ELS 누적 이익이 이번 손실 규모를 초과(10%포인트 차감)하기 때문이다.
이날 금감원이 발표한 분쟁조정기준안은 상·하한선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금감원은 2019년 파생결합펀드 등 과거 분쟁조정 사례에서 20~80% 범위에서 배상 비율을 제시해 상한선과 하한선을 뒀다.
이번 기준안에 따르면 경우에 따라 손실을 100% 배상받는 투자자가 나올 수도 있고, B씨처럼 배상을 전혀 받을 수 없는 투자자도 생길 수 있다. 다만 금감원은 올해 초부터 진행했던 현장검사 결과를 토대로 투자자 다수의 배상 비율이 20~60%에 분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기준안의 핵심은 투자자별 가산·차감 요인이다. 경우에 따라 최대 45%포인트가 가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자 등 금융취약계층(5~15%포인트)이거나 예·적금 가입 목적으로 금융회사를 방문했던 것이 인정되는 경우(10%포인트), ELS 최초 투자(5%포인트)인 경우라면 배상 비율은 높아진다.
은행이 자료 유지를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모니터링콜 등 사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에도 5~10%포인트 배상 비율이 올라간다.
반면 ELS 투자 경험이 많거나 금융 지식 수준이 높은 투자자의 경우에는 배상 비율이 차감된다. ELS 투자 경험이 20회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횟수에 따라 2~10%포인트 배상 비율이 낮아지고, 지연 상환이나 녹인(Knock-in·원금 손실 발생 구간), 손실을 경험한 투자자들도 5~15%포인트까지 배상 비율이 줄어든다. 매입 규모가 5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규모에 따라 5~10%포인트 차감)나 과거 발생한 누적 이익이 이번 ELS 손실 규모를 초과하는지(10%포인트 차감)도 고려 대상이다.
이날 금감원은 은행의 판매 정책과 소비자 보호 관리 실태에 대한 전반적인 부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투자자 손실 위험을 줄여야 할 시기에 오히려 과도한 영업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 지표를 부적절하게 설계해 전사적 판매를 독려한 정황이 포착됐다.
C은행은 2021년 영업 목표 수립 시에 신탁 수수료 목표치를 전년 대비 56.9%나 끌어올려 전사적 판매를 독려했다. D은행은 상품 판매 시 계약 체결 전반을 녹취해야 하는데도 일부분만 녹취하도록 프로세스를 설정해 실질적 상품 권유와 설명 과정은 기록이 남지 않도록 했다.
은행의 내부 통제 부실에 황당한 불완전판매 사례도 쏟아졌다. E은행은 유선으로 ELS 가입을 권유했으나 투자자가 은행 방문이 어렵다고 하자 판매직원이 투자성향진단 설문지, 상품가입설명서, 가입신청서 등을 모두 작성해 서명하고, 판매 과정 녹취도 타 직원이 고객 역할을 대신하게 해 허위로 진행했다. F은행은 배우자를 대신해 방문한 투자자에게 본인의 가입 의사 확인 없이 유효기간이 지난 가족관계증명서 발급 일자를 변조해 가입시키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를 종합적으로 진단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상품에 대한 은행권 판매 금지 가능성까지 열어둔 상태다. 금융업계에서는 은행들이 최근 확장에 나서고 있는 자산 관리 특화점포 등 판매 채널을 한정해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도록 하는 것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고난도 상품으로부터 소비자를 충분히 보호할 필요성과 함께 편리한 자산 관리 필요성 간의 조화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해외 사례 연구와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산업 발전을 균형 있게 고려한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 채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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