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해도 안뜨지만 극한연구 자부심"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4. 3. 1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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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동안 태양이 뜨지 않는 극야(極夜)의 땅에서 대원들을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날까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죠."

한국 남극대륙 연구에서 첨병 역할을 하는 장보고기지에서는 대원 18명이 기후변화와 생태계, 빙하뿐만 아니라 우주 현상도 연구하고 있다.

홍 대장을 포함해 대원 18명이 극지 생활을 견디는 원동력은 한국 극지 연구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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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돌 맞은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홍상범 대장
세종기지 연구대 활동 이어
지난해 월동연구대장 부임
영하 40도 육박하는 환경
직접 채소 기르고 해수 사용
"기지 앞 빙하 녹는 것 보며
기후변화 피부로 느끼죠"

"100일 동안 태양이 뜨지 않는 극야(極夜)의 땅에서 대원들을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날까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죠."

한국이 세운 두 번째 남극기지인 장보고과학기지가 10주년을 맞았다. 앞서 건립된 세종과학기지는 남극대륙에서 약 100㎞ 떨어진 곳에 위치해 본격적인 극지 과학 연구를 수행하기 어려웠다. 한국 남극대륙 연구에서 첨병 역할을 하는 장보고기지에서는 대원 18명이 기후변화와 생태계, 빙하뿐만 아니라 우주 현상도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1번째 장보고기지 월동연구대장으로 부임한 홍상범 대장을 매일경제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산성비와 미세먼지 등 대기 환경 분야를 연구하던 홍 대장은 16년 전 극지 연구 분야에 발을 들였다. 극지의 눈과 빙하의 화학성분을 분석하면 과거 대기 환경의 특징이나 변화를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13년 세종기지 월동연구대로 참여한 데 이어 지난해 장보고기지에 대장으로 부임했다"며 "개인 연구는 물론 대원의 안전과 단합까지 책임져야 하기에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장보고기지의 연구 환경은 세종기지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하다. 홍 대장은 "세종기지는 날씨가 온화하고 다른 국가의 기지와 인접한 곳에 위치해 인적·물적 자원을 공유하기 수월하다"며 "이와 달리 장보고기지는 기후가 좋지 않은 날에는 성인 남성이 서 있기도 힘든 강풍과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추위가 동반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낮이 없는 극야가 약 100일간 이어지는 데다 가장 가까운 상주기지도 350㎞나 떨어져 있어 고립감을 이겨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극에서는 어떤 것도 당연하게 누릴 수 없다. 하루하루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대원들에게는 도전이다. 영화 '마션'에서 화성 탐사 중 고립된 우주비행사가 생존을 위해 직접 감자를 재배했던 것처럼 장보고기지에서도 식물 공장을 운영하며 채소를 기른다. 홍 대장은 "해수를 담수화해 사용하고 오·배수는 처리한 뒤 방류해야 한다"며 "관련 장치에 문제라도 발생하면 세탁과 샤워 등이 전면 금지된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통신 사용량이 한정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자동 업데이트도 금지돼 있다.

홍 대장을 포함해 대원 18명이 극지 생활을 견디는 원동력은 한국 극지 연구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자부심이다. 장보고기지는 세계 최초로 빙붕이 붕괴하는 과정을 규명하고 25년 만에 남극 화산이 가스를 분출하는 활동을 관측해냈다. 남극 바다에서 새로운 맨틀을 발견한 것도 장보고기지가 거둔 성과다. 장보고기지에서는 우주과학 분야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남극대륙에 묻힌 대형 운석을 잇달아 발견해 한국은 세계 4위 운석 보유국이 됐다. 운석은 태양계 초기 물질 진화를 규명하기 위한 시료로 활용된다.

기후변화 연구도 장보고기지의 주요 역할 중 하나다. 홍 대장은 남극에서 체감하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는 "극지역 증폭 현상이라고 해서 지구온난화는 극지역에 더 민감하게 영향을 미친다"며 "재작년에는 기지 앞 빙하가 사라지면서 기지 설립 이후 처음으로 해상 물품 보급을 시작했다. 지난해 남극해 해빙 면적 규모는 인공위성 관측 사상 최솟값을 기록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장보고기지가 위치한 남극 해변은 기후변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어 새로운 기지가 필요하다. 남극내륙에 새롭게 기지를 세우기 위한 작전도 진행되고 있다. 홍 대장은 "지난 7년간 추위에 시달리고 크레바스에 빠지면서 새 기지 후보지와 이동 경로를 성공적으로 개척했다"며 "대원들이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대장으로서 제1목표"라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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