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피해자 운동 10년, 세월호의 싸움은 우리를 지켰다
‘520번의 금요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세월호를 기억·기록하는 작은 조각”
“이 책은 우리 가족들의 삶 그 자체입니다. 가감 없이 지난 10년 가족들의 삶을 시민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하고자 했던 것은 오늘의 국민이 내일의 희생자나 유가족이 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0년 동안 가족들이 이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저희 곁에 함께 해주셨던 시민들 덕분입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김종기(수진 아빠)씨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의 참사 이후 10년 동안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집 ‘520번의 금요일’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온다프레스) 두 권이 오는 15일 출간된다. 출간에 앞서 11일 서울 중구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4·16세월호참사 유가족 2명, 유가족의 형제자매와 생존자 3명,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참석해 기록집의 제작과정과 의미에 관해 설명했다.
‘520번의 금요일’은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유해정 외 5명)이 2022년 봄부터 2년간 단원고 피해자 가족 62명과 시민 55명을 총 148회 인터뷰하고 참사 관련 기록들을 검토해 종합해낸 책이다. 책에는 참사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섬 동거차도에 유가족들이 천막을 치고 세월호 인양 과정을 감시하는 이야기부터 팽목항 곳곳에서 가족을 보살폈던 진도 주민들, 맹골수도 거친 바닷속에서 피해자들을 끌어올린 민간 잠수사들 이야기까지 두루 담고 있다. 또 유가족들이 ‘학부모 대책본부’를 만들고 ‘가족대책위’를 출범시키면서 ‘애도의 공동체’를 만들고 연대하는 과정은 물론 그 안에서 배보상 문제 등으로 서로 분열되고 갈등하는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담았다.
작가기록단으로 활동한 강곤 작가(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 조사관)은 이번 기록집 작업이 고난도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써서도, 작가기록단의 시선만으로 써서도 안됐기 때문이다. 강 작가는 “가족협의회와 수차례 워크숍을 하면서 목차, 핵심 열쇳말, 초고까지 모두 함께 보고 토론하면서 만들었고, 시민들이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연대기 순이 아니라 10년 동안 주목해야 할 공간, 주체, 사연 등으로 열쇳말을 뽑아 12개의 목차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는 이제 20대 후반 청년의 삶을 살고 있는 세월호 참사 당시의 생존자, 형제자매, 시민의 이야기를 따로 묶은 책이다. 단원고 생존자 9명, 희생자의 형제자매 6명, 20대 시민 연대자 2명, 그리고 단원고 생존자들이 참여한 단체 등을 인터뷰하고 ‘세월호 청(소)년’이 지난 10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록했다. 2014년 당시 2학년3반 생존자였던 김주희씨는 “사고 이후 저희는 힘들 것이라는 전제하에 어떤 결정을 할 때 생존자인 저희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친구 장례식장도 못갔고 학교에도 돌아가지 못했지만 저희 의사는 아니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주희씨는 이 책이 참사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얘기할 수 있는 내용과 지금이라서 말할 수 있는 내용을 잘 담았다고 평가했다.
희생자 박성호씨의 누나 박보나씨는 청년을 향한 기성세대들의 피상적인 시선에 대해서도 날서게 비판했다. 박씨는 “5년전 기자간담회에 참가해서 ‘세월호 세대’에 대한 사회와 어른들의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그 이후 달라졌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박씨는 “엠지(MZ) 세대라는 말을 붙여 피상적으로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불편하고 답답하다. 실효성 없던 피해자 지원정책처럼, 사회에서 청년으로 살아갈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 등 다양한 참사가 발생했는데 시민들이 이 책을 보며 내 안에 남겨진 상처는 무엇이고, 우리 모두 어떤 것을 중시해야 하는지 같이 고민하고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권의 기록집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있는 시민들에게 다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재난 참사 이후 10년을 추적해 기록한 작업이라는 점, 유가족의 삶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담았다는 점, 또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펼쳐온 운동을 제2의, 3의 참사를 막기 위해 ‘한국 재난피해자 운동’이 거울 삼아야 할 사례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도 크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잊지 않겠다”고 말한 시민들의 힘이 응축된 결과이기도 한데, 세월호참사 희생자 남지현 학생의 언니 남서현씨는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남겼다.
“사회적 참사를 둘러싸고 누군가는 정의와 단죄를 얘기하고, 누군가는 치유와 회복을 얘기하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과 기억입니다.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해야만 진상규명도 위로도 제대로 할 수 있지요. 이 작업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작은 조각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편,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는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해 참여형 전시 ‘520번의 금요일 그리고 봄’을 진행한다. 전시는 다음달 19일까지 진행되는데,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까지 이 센터 전시실에서 한다. 이번 특별전시는 기록집 ‘520번의 금요일’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의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전시실에는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골판지에 인쇄해 전시해놓았고, 10명의 시민 낭독자가 읽어주는 책 속 이야기를 헤드셋을 통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전시실 한편에는 필사 공간이 있어서 단원고 학생과 ‘세월호 세대’들의 이야기를 시민들이 직접 써볼 수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권은비 예술감독은 “세월호참사 장례식에서 일손을 돕던 자원봉사자이자 10·29이태원 참사의 목격자, 10년 동안 세월호참사 가족들과 시민들의 합창을 이끌고 있는 지휘자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흔쾌히 낭독에 참여해주었다. 낭독 녹음을 진행하는 동안 울지 않으려 여러 번 연습해왔지만 결국 울음을 터트린 낭독자들도 많았다”며 “참사 후 10년이 흘러도 세월호의 기록들 앞에서 따갑고 뜨거운 것이 우리의 목구멍을 가득 채우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고 전했다. 권 감독은 이번 전시의 소재는 오로지 ‘이야기’라며, 세월호 이야기를 나의 목소리로 다시 소리 내어 보는 일은 타인의 이야기가 나의 몸을 통해 발화되는 감각과 과정임을 관객들과 나누고자 했다고 밝혔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의 전시해설도 함께 진행된다. 오는 21일과 28일, 다음달 4일과 11일 오후 1시~6시까지 진행된다. 전시해설은 사전에 별도의 신청이 필요하며, 신청은 ‘bit.ly/10주기전시해설’에서 하면 된다.
출판을 통해 세월호참사 10주기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다른 시도들도 잇따를 전망이다. ‘4·16세월호참사10주기위원회’ 기획으로 작가 10명이 세월호 기억공간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세월호참사 10년의 사람들’(한겨레출판), ‘4·16재단’이 매월 16일 발행했던 에세이 50편을 모은 ‘월간 16일’(사계절) 등도 이달중 출간 예정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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