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수개표’ 보면 “전자개표 폐지” 주장 못할텐데

한겨레 2024. 3. 1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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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엘살바도르 선거를 보러 다녀오면서 몇 번을 놀랬다.

엘살바도르 개표 절차가 '바를 정'(正)자를 쓰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 1월13일에 열렸던 대만 총통 선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대만은 개표 때 초등학교 반장 선거하듯이 바를 정자를 써가며 선거관리위원이 투표용지 한 장씩 결과를 큰소리로 발표하고, 대중에게 보여 준다.

그런데 4월 총선을 앞두고 부정선거를 없애자고 대만처럼 투표한 장소에서 수작업으로 개표하자는 주장이 한국에서 확산하는 것은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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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모의개표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수검표 실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이준한|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달 4일 엘살바도르 선거를 보러 다녀오면서 몇 번을 놀랬다. 엘살바도르 개표 절차가 ‘바를 정’(正)자를 쓰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 1월13일에 열렸던 대만 총통 선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대만은 개표 때 초등학교 반장 선거하듯이 바를 정자를 써가며 선거관리위원이 투표용지 한 장씩 결과를 큰소리로 발표하고, 대중에게 보여 준다.

대만의 한 투표소에서 지난 1월13일 선거관리원들이 투표용지를 수동으로 개표하고 있다. 엑스(옛 트위터) 갈무리

그런데 4월 총선을 앞두고 부정선거를 없애자고 대만처럼 투표한 장소에서 수작업으로 개표하자는 주장이 한국에서 확산하는 것은 충격적이다. 만약 한국에서 수작업으로 개표하면 부정 개표 시비가 사라질까. 전혀 아니다. 대신 또 다른 부정선거 시비의 판도라 상자가 열릴 것이 분명하다.

약 50%의 투표율에 대선과 총선 동시선거였던 엘살바도르에서는 선거 당일 개표율이 30%를 갓 넘겼고 100% 개표하는 데 일주일씩 걸렸다. 한 투표소마다 약 700명의 유권자가 배정됐는데 개표는 평균 700장 정도의 투표용지를 세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직접 개표 작업을 보자니 비일관성과 비효율성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권자 수와 잔여 대선 투표용지 및 잔여 총선 투표용지 수가 서로 달라도 개표를 시작했다. 펜으로 아무렇게나 X표한 투표용지에 무효표의 판정도 들쭉날쭉했다. 어떤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를 대중에게 보여주지 않고 빨리 분류한 채 끝냈다. 한국에서 투표소마다 수작업 개표를 한다면 그곳마다 선거관리위원, 정당 참관인, 개표사무원 등 엄청난 인원이 더 필요하고 이에 대한 추가 비용도 상당할 것이다.

“해킹과 조작이 가능한 전산기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주장도 놀랄 일이다. 지난해 10월 국정원이 “선관위 전산망이 해킹에 취약하며 개표 결과 조작도 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에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엘살바도르에서 개표하는 데 일주일이나 걸린 데엔 전산시스템이 준비한 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요인이 컸다. 전산시스템을 불신할 게 아니라, 전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게 보완하고 해킹을 막도록 보안을 강화하는 것이 정답이란 뜻이다. 만약 해킹 우려 탓에 한국에서 전산망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설마 개표 결과를 전국 개표소마다 종이로 적어서 전달하자거나, 전화 또는 팩스로 집계하자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뱅킹은 어떻게 해킹 걱정 없이 쓰는지 궁금하다. 수작업 개표나 전산기기 금지를 주장할 때는 그 대안과 장단점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비교해야 한다.

한국의 투개표 관리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많은 나라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2013년 한국이 설립을 주도한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는 전 세계 121개 선거관리기관이 참여하며 선거관리 국제 표준화 사업에 권위를 얻고 있다. 세계선거기관협의회 관련 예산이 많아져서 수작업 개표 국가에 참관인을 많이 보낼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전자 투개표 시스템을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은 엘살바도르 같은 나라에 직접 가서, 그곳의 투개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한번 보길 권한다. 일단 직접 보면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초등학교 반장 선거”식으로 개표하자는 말은 바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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