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뺏긴다고 노래를 멈추랴…‘할 말’ 담아 노래 짓는 중증발달장애인들

김세훈 기자 2024. 3. 1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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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수강생인 이연옥씨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수업시간에 함께 만든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24.3.11. 정지윤 선임기자

“시혜 동정 거부한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함께 하네. 조금 느리더라도 포기는 없네.”

1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노들야학 3층 노들노래공장 문 사이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중증발달장애인들이 마이크를 잡고 ‘노들야학 해방가’를 부르는 소리였다. 종로구 일자리 사업 지원을 받아 매주 월요일 10여명의 중증발달장애인이 이곳에서 노래를 부른다. 매주 한 곡씩 새 노래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 부른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각자 좋아하는 노래 소절과 악기도 제각각이다. 신현상씨는 작곡에 관심을 보였고, 김수진씨는 탬버린 치는 걸 좋아했다. 노래가 끝나도 이연옥씨의 소고 소리는 계속됐다. 같은 노래를 부를 때도 음정·박자가 서로 달랐다. 각자가 몸을 흔들고 손뼉을 치고 소리를 쳤다. 악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노래였다.

“오늘은 어떤 노래를 만들어 볼까요.” 강사의 말에 ‘고양이’ ‘택배’ ‘투표’ 등 다양한 답이 나왔다. 투표 끝에 이날의 노래 주제가 강아지로 결정되자 최재형씨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돌아가며 한 줄씩 보낸 문구가 모이자 가사가 틀을 갖췄다. 참가자들이 흥얼거리는 가사에 강사 만수씨(활동명)가 멜로디를 얹어 악보를 짰다.

평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황임실씨(49)는 2022년 2월부터 매주 꼬박 이곳을 찾았다. 집에서는 노래를 못 부르지만 이곳에선 마음껏 부를 수 있어서다. 황씨는 “노래를 부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선생님이랑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다”고 했다.

이들은 오는 21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리는 인권축제 공연에도 나선다. 신씨는 “연세대에 한 번도 못 가봤다. 인권 축제라 사람들이 많이 올 것”이라며 “우리가 만든 노래를 부른다니 기대가 된다”고 했다.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강사 만수씨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수강생들과 함께 만든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24.3.11. 정지윤 선임기자

노들노래공장은 지난 2월 노래집을 발간했다. 2년간의 성과가 담긴 노래집이다. 서울시가 권리중심 일자리 예산을 삭감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을 위한 복직투쟁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권리중심 일자리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권고에 따라 2020년부터 시행된 서울시 사업으로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 문화예술 활동, 장애인식 개선 등을 진행해 왔다.

서울시는 사업이 집회·시위 참여 등 애초 취지와 달리 운영된다는 이유로 올해 400여명 분의 일자리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대신 키오스크 안내·사서 보조 등 ‘장애 유형 맞춤형 특화 일자리’ 사업을 신설했다. 노들노래공장에 모인 이들도 기존에 서울시 지원을 받았지만 현재는 종로구 일자리 지원을 받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임당 노들야학 교사는 “맞춤형 일자리 사업은 시장경제에 진입이 가능한 수준의 분들에게만 해당될 뿐 중증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노들노래공장에 모여 만든 노래는 50여곡에 달했다. 만수씨는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몇 주가 지나니 모두 작곡가로서 정체성을 찾고 적극 참여했다”라며 “함께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서로 평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가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게 수업의 장점”이라고 했다.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수강생인 김수진씨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작은북을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2024.3.11. 정지윤 선임기자
노들장애인야학 노들노래공장 한 수강생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노래집을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2024.3.11. 정지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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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0192026005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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