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벽은 높고 단단했다···박정환, 스미레에 흑 불계승, 쏘팔코사놀배 본선 2연승
5년 전 그 때와는 다르게 반상을 사이에 두고 적으로 만났다. 자신의 우상을 상대로 갖는 첫 대국. 그리고 우상의 벽은 역시 높았다.
박정환 9단이 자신을 우상으로 여긴다는 나카무라 스미레 3단과 대국에서 승리했다. 박정환은 11일 경기도 성남시 K바둑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5기 쏘팔코사놀 최고기사결정전 본선 2라운드에서 스미레를 상대로 161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1라운드에서 임상규 2단을 꺾은 박정환은 스미레마저 제압하고 2연승을 달렸다.
반면 지난 3일 1라운드에서 이창석 9단을 상대로 한국무대 데뷔전을 가져 패했던 스미레는 이날 박정환을 상대로 중반 이후 판을 흔드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끝내 박정환을 넘어서지 못하고 한국무대 데뷔 첫 승을 다음으로 미뤘다.
박정환은 스미레가 우상으로 여기는 기사다. 두 사람의 인연은 스미레가 막 10살이 됐던 201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정 9단과의 ‘슈퍼매치 영재·정상 대결 스미레 vs 최정’ 대국을 하루 앞두고 한국기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스미레는 우상을 묻는 질문에 “박정환 9단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2개월 후, 한 매체와 진행한 합동 인터뷰 자리에서 마침내 자신의 우상을 만났다. 일본기원의 영재 특별채용을 통한 정식 프로기사 입단을 1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꼬마 아이였던 스미레를 위해 박정환이 무릎을 꿇고 찍은 사진이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도 스미레는 여전히 박정환을 좋아하고, 또 존경한다. 스미레는 지난해 8월 한국기원에 객원기사로 이적하기를 요청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한국기원의 승인을 받아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활동에 나섰다. 지난 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미레에게 ‘한국 바둑기사 중에 본받고 싶은, 존경하는 기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스미레가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박정환이었다. 이 대국을 앞둔 소감으로 “대국을 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쁘다. 세계 톱 기사이기 때문에 대국하는 것이 너무 긴장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한국 랭킹 2위 박정환은 스미레에게 아직은 넘기 힘든 벽이었다. 이날 백을 잡은 스미레는 초반에는 어느 정도 팽팽한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우하귀와 좌하귀의 바꿔치기에서 스미레의 실수가 나오면서 박정환 쪽으로 그래프가 기울었고, 이후 우하귀에서 기회가 다시 기회가 있었으나 그것마저 살리지 못했다. 스미레는 중반 이후 여기저기 찌르며 흔들기에 들어갔고, 박정환도 순간적으로 아쉬운 수가 나왔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고 대응하며 2시간59분 만에 대국을 마무리했다.
성남 |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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