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까지 해야 됩니까” 윤 대통령님! [김민아 칼럼]
사람이 죽었다. 타인을 구하려다 죽었다. 구명조끼도 없이 수색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렸다. 군인이었다. 청년이었다. 아들이었다. 온 나라가 슬퍼했다. 분노했다.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수사를 제대로 하자고 주장한 장교(박정훈 대령)는 항명 혐의로 징계받고 법정에 섰다. 수사 외압 의혹을 받고 출국금지된 전 국방부 장관(이종섭)은 기후 좋고 경치 좋은 선진국으로 떠났다. 주재국 대사가 되어.
넷플릭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스토리다. 불행하게도 현실이다. 엊그제 호주로 출국한 이 전 장관은 향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믿을 사람은 없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에 귀국하지 않을 것이다. 2027년 5월 정권이 바뀔 경우, 여권 무효화 처분을 받고 국제 미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사건은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병대 채모 상병(당시 일병)은 폭우가 쏟아진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중 순직했다. 당시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취지의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이 전 장관은 결재했으나 이튿날 태도가 바뀌었다. 언론 브리핑 취소와 사건의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박 대령은 추후 이 같은 지시가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국방부 검찰단에 진술했다.
박 대령은 수사 자료를 경찰에 넘겼으나, 국방부는 회수하고 박 대령을 보직해임했다. 이후 국방부는 임성근 1사단장 등의 범죄 혐의를 빼고 사건을 다시 이첩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민변·참여연대 등은 이 전 장관 등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공수처는 올해 1월 국방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이 무렵 이 전 장관도 출국금지됐다.
대통령실에선 이 전 장관 출금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공수처 수사 상황은 물을 수도 없고 답해주지도 않는다”(대통령실 관계자).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출금 요청 주체가 검찰이든 공수처이든 공항·항구에서 출국을 막는 건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다. 주요 출금자가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실에 보고된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 게다가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업무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서 맡고 있다.
백 보 양보해 출금 사실을 몰랐다 치자. 공수처가 강제수사에 착수했는데도 주요 피의자를 우방국 대사로 임명하려 한 발상 자체가 초현실적이다. 박 대령 법률대리인(김정민 변호사) 말이 촌철살인이다. “국가대표 선수도 중대 범죄에 연루되면 선발하지 않는다”(MBC 인터뷰). 실제 남자축구 대표팀 핵심 공격수이던 황의조 선수는 불법촬영 혐의로 선발에서 제외되고 있다. 하물며 주재국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대리하는 ‘특명전권대사’라니.
출금 사실이 공개된 이후 상황은 더 석연치 않다. 이 전 장관이 출금을 해제해달라며 이의신청을 내자, 공수처는 ‘4시간 조사’로 해제 명분을 만들어주고, 법무부는 이의신청을 받아들였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현행 출국금지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2017)를 보면, 2007~2016년 출금 이의신청 기각률은 91.46%에 이른다. 열 명이 이의신청을 내면, 한 명이 받아들여질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수사 외압 의혹과 별개로, 대사 임명·출국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이 전 장관 출국을 두고 “도주가 아니라 공적 업무를 수행하러 가는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법률상 대표자인 법무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도주’를 언급한 상황 자체가 외교 참사요, 국격 추락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격노’ 등 수사 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해명이 사실이라면, 이 전 장관을 즉시 본국으로 불러들여 공수처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면 된다. 호주는 인권·법치를 중시하는 민주국가다. 사병 사망과 관련해 수사받는 전직 국방부 장관에게 신임장을 제정받기 꺼림칙할 터다. 차라리 인사 실책을 인정하고 대사를 교체하는 편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겠나.
윤 대통령이 공정·상식·법치를 외치며 대선에서 당선된 지 꼭 2년이 지났다. 윤 대통령에게 대단한 걸 기대하지 않는다. 검찰총장을 지낸 법률가 아닌가. 최소한 ‘범죄자를 빼돌린 대통령’은 되지 말아야 한다. 전두환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을 해외로 내보내지는 않았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에 본부를 둔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최근 공개한 보고서 ‘민주주의 리포트 2024’에서 한국을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 중인 42개국에 포함시켰다. 연구소가 민주주의 수준에 따라 분류한 4개 그룹 중 최상위 그룹(32개국) 내에서 독재화 국가로 분류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바(bar)를 더 이상 낮춰선 안 된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 인천공항 탑승구 앞에서 MBC 취재진과 마주친 이 전 장관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시민이 묻고 싶은 말이다. “대통령님,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됩니까?”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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