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고객 찾아…실리콘밸리·한국서 두살림 하는 스타트업

이덕주 특파원(mrdjlee@mk.co.kr) 2024. 3. 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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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의 중심지 실리콘밸리
한국과 상대적으로 가까워
두곳서 조직운영 기업 많아
링글·블록체인랩스 등
실리콘밸리에 법인 세워
몰로코 등 한국계 스타트업
국내에 개발팀 등 별도로 둬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위워크 샌머테이오지점의 모습. 이곳은 한국계 스타트업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위워크

미국 실리콘밸리 헤이워드파크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위워크 샌머테이오 지점. 이곳에서 일하다보면 언제든지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로 진출한 한국 스타트업이나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한국계 스타트업이 유난히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계 스타트업 가운데 성공한 곳으로 알려진 '몰로코'도 샌머테이오에서 멀지 않은 레드우드시티에 있다.

위워크 샌머테이오 지점은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실리콘밸리 어느 지역에서든 접근이 편하다. 최근 샌머테이오에 정착한 한국인도 많기 때문에 한국과 실리콘밸리 양쪽에서 팀을 운영하려는 스타트업에 최적의 장소다. '한 기업 두 조직'으로 불리는 새로운 유형의 스타트업이다.

위워크 샌머테이오에 위치한 링글은 원어민 튜터를 영어 수요자에게 연결해주는 스타트업으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이승훈 링글 대표는 "처음에는 원어민 튜터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 진출했다"면서 "설립 후 미국에도 아시아계를 중심으로 우리 고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점차 미국 법인의 역할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한국 직원들에게 실리콘밸리에 방문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조직 사기를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링글처럼 한국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이 새로운 고객 확보와 투자자 유치를 위해 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김태수 네오사피엔스 대표는 "한국에서 성공한 인공지능(AI) 성우 모델을 사용할 고객을 찾기 위해 미국에 왔다"며 "이 분야에서 경쟁이 치열해져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뛰어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처럼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CEO가 많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 'COOV'로 유명한 블록체인랩스도 미국에 5명, 한국에 40명 정도의 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CEO가 서울과 실리콘밸리를 주기적으로 오간다.

미국 팀을 꾸릴 때 실리콘밸리에서 오래전부터 일했던 한국계 직원들이 큰 도움이 된다. 강민정 블록체인랩스 최고비즈니스책임자(CBO)는 미국 애플, 테슬라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는 "한국도 미국 이민 2세, 3세가 실리콘밸리에 잘 정착해 있는데 이들은 한국어 능력과 함께 미국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중요한 인재"라고 설명했다.

이런 실리콘밸리·한국 융합 모델은 한국 스타트업이 미국에 진출하는 단순한 모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에서 한국계 창업자가 만든 회사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사례도 많다. 실리콘밸리에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몰로코나 센드버드 같은 스타트업은 한국에 개발팀과 영업조직을 별도로 두고 있다. 한국에서 우수한 개발자를 채용하고, 한국의 대기업 같은 우량 고객을 만나기 위해서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한국계 바이오테크 기업인 진에딧도 2년 전 한국에 지사를 설립했다. 한국에 연구인력 6명을 두고 신약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박효민 진에딧 수석부사장은 "비용 측면이나 연구능력 차원에서 한국 연구진과 함께 일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며 "중요한 회의는 한국 팀이 참여할 수 있는 오후 3시 이후에 항상 열고 한 팀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계 창업자들이 설립한 트웰브랩스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AI를 연구하는 인재들을 영입하려면 샌프란시스코가 좋기 때문이다. 트웰브랩스의 영상 검색 기술을 사용하는 고객이 미국에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트웰브랩스는 한국에서 창업했지만 인덱스벤처스 같은 유명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뿐만 아니라 엔비디아, 인텔 등 빅테크 기업 투자도 받았다. 한국투자파트너스 등 한국 벤처캐피털 투자도 받았다.

이재성 트웰브랩스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고객과 투자자는 기술이 뛰어나면 회사 위치나 팀원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는 미국에서도 생활비와 인건비가 가장 높은 곳이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에 별도 팀을 꾸리는 것은 이곳이 미국에서도 창업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많은 개발자와 투자자가 있고 소프트웨어 기업의 고객이 되는 테크 기업도 실리콘밸리에 모여 있다.

미국에서 한국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유나이티드항공 직항이 인천과 샌프란시스코 사이를 매일 운행한다. 비행시간은 11시간 정도로 미국 동부에 비해 3시간가량 짧다. 시차도 한국시간 오전 9시가 미국 서부시간 오후 4시(서머타임 해제 기준)로 한국시간으로 오전에 함께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처럼 실리콘밸리와 본국이 연결돼 한 몸처럼 경영하는 것은 이스라엘계 스타트업이 오래전부터 운영해온 방식이다. 이스라엘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은 예전부터 형성돼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와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일찌감치 미국에 진출한다. 그렇게 미국에서 고객을 찾고 투자자를 유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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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이덕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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