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기업 믿었는데”…장흥 ‘수소발전소’ 안 짓나, 못 짓나
전국 최대규모서 발전용량·사업부지 ‘5분의 1’ 토막
장흥군 “청정수소 발전의무화제도 확립되면 하반기 착공 가능”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산단 수소발전소 짓는 것인가, 못 짓는 것인가…." 전남 장흥군이 민선 7기에 추진한 대형 민간 투자사업 프로젝트가 논란이다.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수소연료전지 발전소(수소발전소) 건립사업이 완공 시점을 넘도록 차일피일 미뤄지고 사업 규모도 대폭 축소되면서다. 성공한 출향기업인의 고향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은 군민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하지만 당초 떠들썩했던 발표와 달리 사업 착수 소식이 수년째 종적을 감추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잡초만 무성…뿔난 주민들 "농락당한 기분"
성공한 출향기업인의 대규모 투자 발표 당시에 군민들은 반겼다. 2년의 건설기간과 20년의 운영기간 동안 6500여명의 인력이 필요해 지역주민의 일자리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장흥군은 전망했다.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년 동안 주변 지역에는 주민복리를 위해 100억 원 이상이 지원된다.
그러나 3월 8일 현재, 수소연료전지 발전소가 들어설 부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공사 시작 전에 설치하는 펜스도 없다. 터파기 작업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이날 오전에 찾은 해당 부지는 갈대와 잡초들만 무성했고, 공사 장비나 인력은 보이지 않았다. 산단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스스슥' 소리만 울려 퍼지질 뿐 인적마저 끊겨 황량했다. 수일 전 인근 주민이 일궈 놓은 채소밭 고랑이 썰렁하게 보였다.
공사가 계속 늦춰지자 장흥군과 아이티에너지를 향한 군민의 감정은 실망을 넘어 분노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군청 근처에서 만난 주민 이민수씨(가명·53)는 "예정에 맞춰 발전소를 지었으면 벌써 완공되고도 남았을 텐데 업체가 질질 끌고 장흥군은 끌려 다녀 이 지경까지 온 것 같다"며 "금방 착공할 것처럼 떠들더니 수년 째 방치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단 주변 8개 마을 주민들의 상실감도 크다. 한 주민은 "마치 농락당한 기분이다"며 "사업 초기만 해도 주민설명회 개최니 부산으로 견학가자니 떠들썩하더니 지금은 도통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출향기업의 거창한 투자계획 '공수표 우려'
11일 장흥군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019년부터 추진됐던 '장흥수소연료발전사업'이 6년째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장흥 바이오산단에 들어서게 될 수소연료전지 발전시설은 국내 최대 규모인 200MW급 발전소로, ㈜아이티에너지가 1조 2000억 원을 들여 7만 5213㎡ 부지에 100㎿급 발전설비 2기를 순차적으로 건립할 계획이었다. 2020년 착공해 늦어도 2023년 준공할 예정이었으며 발전소가 운영되면 연간 158만9068㎿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아이티에너지는 장흥출신 김동석 회장이 세운 회사다. 김 회장은 최근 동향의 야당 유력정치인에 대한 전셋집 후원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9년 4월 26일 협약 바로 전날 아이티에너지는 바이오산단 C-14 블록 1만6761㎥에 대한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2022년 7월에는 예정부지 C14 블록 잔금 16억 6000만원을 납부하는 동시에 산단 내 잔여 수소연료 부지 C15 블록 분양계약도 했다. 이후 2022년 1월 발전사업 공사계획 인가를 받아 8월 31일 자로 입주계약체결이 마무리된 상태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그 이후가 흐릿하다. 지금은 지난 2019년 4월 시행사인 아이티에너지와 투자협약체결을 맺은 이후 39MW급 수준인 발전사업허가 승인을 받고 부지만 확보한 상태다. 불길한(?) 전조는 이미 수년 전에 나타났다. 투자업체는 2021년 6월 산자부 전기위원회로부터 당초보다 10㎽ 줄어든 1단계 39.9㎽의 발전사업 허가를 승인 받는다. 정부(산자부)의 사업승인절차가 더디게 진행되면서다. 수소발전사업허가를 신청한지 무려 2년여 만이다. 사업 추진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대목이다.
이뿐만 아니다. 그 사이 사업규모도 1/5로 축소됐다. 업체는 2023년 6~7월 두 차례에 걸쳐 C15 블록 입주계약 및 분양계약 해지를 요청했다. 이 또한 '분산형, 소규모 연료전지를 장려한다'는 산자부 방침이 결정됐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한 달 뒤 장흥군은 해지 입주변경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당초 7만 5213㎡에 달한 발전소 부지는 1만 761㎡로 축소됐다. 사실상 2단계 사업이 폐지된 셈이다. 덩달아 기존 발전용량 200㎽는 39.9㎽로 쪼그라들었다. 여기까진 사업 지연과 축소가 정부 탓이다. 정부의 수소 에너지 정책변화 등이 정상적 사업 추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것이 장흥군과 업체의 변명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업체의 사업 추진 능력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팽배하다. 우선 재무 건전성 측면에서 위험성 우려가 높다는 게 업계 일부의 견해다. 200MW 사업규모인 장흥수소연료발전사업은 총 사업비 1조2000억원 가운데 한국서부발전 측이 3000억원을 투자하고 나머지 9000억원은 시행회사인 아이티에너지 측이 펀딩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해 사업자금을 조성하기로 협약돼 있기 때문이다. 김성 현 군수는 지난 2022년 지방선거 후보 시절, 실제 투자도 없는 투자 양해각서(MOU)이고 해당업체는 자금조달도 못한다면서 수소연료전지 발전사업을 민선 7기 문제점 사업 중 하나로 꼽아 논란을 일으켰다.
핵심 협력사 서부발전 빠져…재원 확보 회의적 시각도
여기에 재원 확보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 '사업비 조달이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는 시행회사 측의 장담과는 달리 신생업체의 대단위 펀딩에 참여할 투자사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에 퍼져있는 우려다. 무엇보다 수소 발전의무화제도(CHPS)에선 수소연료전지가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발급 대상이 아니므로 핵심 협력사인 서부발전이 투자에서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큰손이 손절하면서 사업 축소 내지 백지화에 대한 검토가 불가피하고, "올해 안 착공이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수소발전사업을 추진할 회사가 투자협약체결 보름 전에 설립된 신생 업체라는 점도 약점이다. 이는 정부(산자부)의 사업승인절차에서 난항을 겪은 이유 중의 하나로 꼽힌다. 당초 발표와 달리 정부(산자부)의 발전사업 허가 승인 과정에서 발전용량이 200㎽에서 98.6㎽(1단계 49.8㎽/2단계 49.8㎽)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장흥군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제도 변경 때문에 수소발전소 착공이 늦어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2021년 수소법 개정으로 수소가 기존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RPS)에서 별도의 구매 대상으로 확정됐으나 지난해 말 현재 청정수소 발전의무화제도(CHPS) 제도 미 확립으로 불가피하게 공사 착수가 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아이티에너지 측이 여전히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건립에 강한 의지를 보인다"며 "올해 정부의 청정수소 발전의무화제도가 확립되면 업체에서 6~12개월 안에 40㎽ 규모의 발전소를 착공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성관계 대가 못 받자 동거남 잔혹 살해한 그 남자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 시사저널
- “굉음내며 쾅” 79세 운전자 돌진에 9중 추돌…폐지줍던 70대 사망 - 시사저널
- 올해 세수 ‘15조원’ 덜 걷힌다…고소득자·대기업 감면 영향 - 시사저널
- “엄마, 돈 좀 보내줘” 전화 한 통에 1인당 평균 1700만원 뜯겼다 - 시사저널
- 재주는 민주당이 넘고 돈은 尹이?...’의사파업’의 지독한 아이러니 - 시사저널
- “100위권도 위태롭다”…스러지는 건설사, 다시 점화되는 ‘4월 위기설’ - 시사저널
- 수원 배수로서 발견된 나체 女시신…신원·사인 ‘오리무중’ - 시사저널
- ‘좌표 찍고 비난’ 도로보수 민원 시달린 30대 공무원 사망 - 시사저널
- 사소한 일에도 짜증 ‘왈칵’…체력 고갈됐다는 몸의 신호 3 - 시사저널
- ‘왜 이렇게 코를 골아?’…살 찌고 있다는 의외의 신호 3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