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받아야 할 중증환자들, 정부·의료계 갈등에 ‘협상 도구’ 전락”
“대형 병원에서 식도암 4기를 진단받았지만 신규 항암 치료를 거절당했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소견을 듣고 머리가 멍해진 상태인데 정작 치료는 해줄 수 없다는 말까지 들으니 길바닥으로 내쫓긴 심경이 되어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정부와 의료계가 힘겨루기를 하며 중증환자들의 치료받을 기회와 시간을 짓밟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막막함과 황당함에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식도암 4기 환자의 가족 A씨)
식도암·폐암·췌장암·다발골수종·중증아토피 등 6가지의 중증질환 환자단체들이 모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서 ‘전공의 사직과 의대 교수 의료현장 이탈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통해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수술이 연기되거나 항암·입원이 취소된 사례를 공개했다. 연합회는 “가장 보호받아야 할 중증환자들이 양쪽의 갈등상황에서 ‘협상’ 도구로 전락해 볼모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즉시 중단돼야 마땅하다”고 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중증질환자 대표의 대화’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이번 집단 사직한 전공의 명단 공개’를 요구했다.
2022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암 환자 B씨(66)는 1년 4개월의 항암치료 진행 후 종양 크기가 반으로 줄어들어 수술 소견을 받았다. 이달 18일 수술 예정이었으나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수술이 미뤄지면서 수술 전 예정된 방사선 치료도 취소됐고, 이후 종양표지자 상승으로 수술도 받을 수 없게 됐다.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첫 항암이 예정됐던 암 환자 C씨(71)도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원래 일정보다 열흘 가까이 늦게 항암을 시작했다. 암은 C씨의 췌장 내부까지 전이됐다.
지난해 10월 암 진단을 받고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해있던 D씨(70)는 지난달 20일 전공의 사직사태로 퇴원을 종용받았다. 요양병원으로 전원된 D씨는 전원 다음날 새벽 4시에 사망했다. 지난해 암 진단을 받은 E씨(60)는 9차에서 10차로 넘어가는 항암 치료 과정에서 입원 중지 연락을 받았다. E씨는 급하게 외래 진료로 전환했지만, 한 달이 더 지연돼 등 통증이 심해지고 간 수치가 올라갔다.
연합회는 의료계를 향해 “수련병원의 수련의 단체와 교수 단체의 집단 진료 거부 상황은 어떠한 정당성도 없는 범죄행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정부에 대해서는 “집단행동을 조기 진압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어떠한 의지도 보여주지 못했다”며 “오히려 이 상황이 ‘장기화’할 거라고 임의로 예단하고 환자 안전에 저해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등을 시행한다는 계획 발표를 했다. 사실상 의료계와 함께 공조해 국민적 저항이 있는 정책을 시도하는 기회로 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말했다.
연합회와 보건의료노조는 이날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의사들의 진료 거부 중단!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촉구합니다’라는 내용의 온라인 서명운동과 지하철역·기차역·버스터미널 등에서 시민들의 서명을 받는 현장 서명운동도 시작한다. 이들은 100만명을 목표로 한 범국민 서명운동 결과를 바탕으로 기자회견과 항의 방문, 간담회, 서명지 전달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403110600005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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