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동 ‘부역 몰이’에 ‘진도 사건’ 유족들 참담…근거가 경찰 사찰 기록

고경태 기자 2024. 3. 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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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19년 뒤 경찰이 일방적 기재한 ‘암살대원’ 글자로
12일 전체위서 일부 희생자 ‘진실규명 불능’ 결정 날 듯
1·2기 통틀어 첫 불능 가능성…“만행 더 두고 못 본다”
지난 2월6일 제72차 전체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12일 전체위원회에서 일부 희생자를 부역자로 판단해 ‘진실규명 불능’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시기 재판 없이 즉결처형당했더라도 ‘반인권적 인권유린행위’의 피해자로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의결되면 한국 정부가 즉결 처형을 용인하는 첫 사례가 된다. 역사학계의 강력한 반발 등 후폭풍이 예상된다.

11일 한겨레 취재 결과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2차)’(진도 사건)이 12일 오후 제74차 전체위원회에 상정된다. 상정안에는 ‘조사대상자 38명 중 4명은 부역자이므로 진실규명이 불능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광동 위원장이 표결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가결 가능성이 높다. 진도 사건은 1950년 10월 인천상륙작전 직후 발생한 것으로, 진도군 의신면 주민 등 40여명이 부역 혐의를 받고 재판 없이 군경에 의해 즉결 처형된 사건이다.

‘부역자’는 통상 1950년 인민군 점령기 이들에게 협조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진실화해위는 출범 이후 희생자 성향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았다. 과거사정리법은 피해자가 좌우 어느 쪽이건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 피해자라고 판단되면 조사 대상으로 삼아 이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2년 12월 취임한 김광동 위원장은 과거사정리법 취지와 달리 ‘순수하지 않은 피해자가 있다’고 주장하며 ‘부역자 선별’을 강조해왔다. 지난해 8월 태안 부역 혐의 희생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하면서도 일부 희생자들에게 ‘악질 부역 등에 가담해 사살 또는 처형된 자’에 해당하는 코드명 1-7을 기재했고, 두 달 뒤인 10월에는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21명 중 6명의 진실규명을 보류했다. 올해 1월에는 이미 진실규명을 의결한 함평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해 법적 근거도 없는 재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김광동 위원장이 밀어붙이고 있는 ‘부역자 판정’의 근거는 경찰 사찰 기록들이다. 진도 사건의 경우 1969년 12월 진도경찰서가 ‘사살자 및 동 가족동향 명부’에 일부 희생자를 ‘암살대원’으로 기록했다는 점이 유일한 근거다. ‘암살대원’이라는 단어 외에는 관련 근거가 전무해 신빙성 자체가 의심받는 문서다. 영천 사건 진실규명 보류 결정의 근거였던 영천경찰서의 ‘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 처형자 명부엔 다섯 살 어린이가 ‘암살·방화범’으로 적혀있기도 하다. 김 위원장 등은 다른 지역 사건에서도 이런 경찰 기록을 근거로 희생자 일부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천인 이상훈 상임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악의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태안·영천·진도의 경찰 기록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암살대원’은 가해자 쪽인 경찰이 피해자를 악의적으로 표현한 내용일 수 있다는 뜻이다.

역사학계와 유족들 반응은 격앙돼있다. 역사사회학자인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진실화해위를 법 취지와 정반대로 끌고 가고 있어 참담한 심정”이라며 “학회나 시민사회가 이런 상황에 학술적·운동적으로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수동적 반응에 그치고 있다. 혹독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호상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상임대표 의장은 “김광동 위원장은 면담신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과 희생자 모독인데 이 만행을 더 두고 볼 수 없다. 나가지 않으면 쫓아낼 각오를 하고 있다”고 했다.

※‘부역자’는 통상 1950년 인민군 점령기에 이들에게 협조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진실화해위에서 ‘부역 혐의자’는 즉결처분당한 희생자를, ‘부역자’는 법원 재판을 통해 부역 혐의가 확정된 주민을 가리켜왔다. 부역자 처리지침을 만든다는 건 당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즉결처분당한 ‘부역 혐의자’ 중 누가 ‘부역자’인지 진실화해위가 판정해 진실규명 여부부터 재검토하겠다는 뜻으로 여겨져 반발을 사 왔다.

또한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 전향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관변단체다. 군경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 속에 이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2023년 10월31일 진실화해위 제65차 전체위에서 6명의 희생자가 진실규명 보류된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의 경우 부역혐의 희생이 아닌 사건 중에서 처음으로 희생자를 부역자로 판단하는 사례가 되어가는 중이다.

‘신원기록 심사보고’ ‘사살자 및 동 가족동향 명부’ 등 경찰 기록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의 유가족을 사찰한 자료로 1960년, 1979년, 1981년 등 여러 차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새로 만들거나 통합·정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자료는 1기 진실화해위가 전국 각지의 경찰서를 통해 입수했는데, 당시에는 희생 사실을 확인하는 용도로 쓰였으나 2기에서는 김광동 위원장 주도로 희생자의 부역 여부를 증명한다며 진실규명 불능이나 보류 조처를 내리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이 기록은 짤막한 메모 수준이고, 여러 희생자에게 같은 내용을 반복해 적은 터라 신빙성이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나 자료가 전혀 없는 형편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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