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 나온 '일타강사 지문'…현직교사가 돈 받고 판 문항이었다
수능에 EBS교재·사설모의고사 지문 사용하기도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사교육 카르텔'이라고 불리는 공교육 종사자와 사교육업체 간 유착 개연성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해 9~12월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실태 점검' 감사를 실시했다.
감사원은 최근 세 차례에 걸쳐 교원과 학원 관계자 등 56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배임수증재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수사 요청했다고 11일 밝혔다.
감사 결과,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항에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로 유명한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이하 TMI)에서 발췌한 지문이 실린 것이 문제가 됐다.
대학교수 A 씨는 평가원 의뢰로 2022년 8월 EBS 수능연계교재를 감수했는데, 여기에는 고교 교원 B 씨가 2022년 3월 'TMI'를 지문으로 출제한 문항이 수록됐다. 그런데 A 씨는 2022년 10월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출제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TMI'를 무단 사용해 23번 문항을 출제했다.
유명 사설학원 1타강사인 E 씨가 2022년 8월 EBS 교재집필 경력이 있는 고교 교원 C씨로부터 B와 동일하게 TMI를 지문으로 제작한 문항을 공급받아 9월 말 모의고사로 발간한 것도 적발됐다.
E 씨는 교원에게 문항을 사서 모의고사를 만들면서 C 씨와 2022학년도 수능검토위원이었던 D 씨로부터 출간 전 EBS 교재 파일을 입수하고 수능 문항 출제의도를 확인하는 등 평가원 동향을 파악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영어팀은 수능 문항 확정 전 사설모의고사 문항과의 중복검증을 위해 E씨의 모의고사를 평소 구매해오던 것과 달리 2022년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구매하지 않아 검증이 누락된 사실도 적발됐다.
수능 이후 23번 문항에 대한 이의신청이 다수 접수됐지만, 수능 출제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평가원 담당자들이 이의심사위원회 심사 대상 안건에서 아예 제외하기로 공모한 사실도 확인됐다.
또한 교원과 사교육업체 간 수능·내신문항 거래는 수능, 수능 모의평가 출제 참여, EBS 수능연계교재 집필경력 교원 등을 중심으로 피라미드식 조직화(사교육업체→중간관리 교원→다수 교원) 등 조직적인 형태로 전개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정당한 권원 없는 고액의 금품수수 제공과 함께 탈세, 알선비 수수, 사교육 거래 이력을 숨기고 수능 출제위원 참여, 학교 시험에 사교육업체 공급 문항 출제 등 위법·부당행위가 발생했다.
일례로 고교 교원 I는 수능과 수능 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참여하면서 2019년부터 사교육업체와 유명 학원강사 2인에게 수능 경향을 반영한 모의고사 문항을 제작·공급하고자 관련 경력의 교원 총 8명을 포섭해 문항공급조직을 구성하고 2019∼2023년 5월까지 2000여 개 문항을 제작·공급해 6억 6000만 원을 수수했다.
평가원이 과거 3년간 수험서 집필 실적이 있는 경우 출제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자격을 제한했음에도 이를 어기고 근무한 사례도 적발됐다.
아울러 교원 N이 2018년 1월부터 사교육업체 등에 수능 대비 모의고사 문항을 공급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사실도 적발됐다. N은 2019년 6월 배우자가 교원들에게 수능 문항을 공급받아 사교육업체에 판매하는 사업을 위한 출판업체를 설립하자, 공모해 35명의 현직 교원으로 문항 제작진을 구성하고 이들에게 수능 경향을 반영한 문항을 구매해 사교육업체 및 유명 학원강사 등에 공급하기도 했다.
이 출판업체는 2019~2022년 문항판매 대가로 18억 9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들은 허위의 영업비용 계상을 통한 탈세, 허위 감사자료 제출을 통한 감사방해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고교 교원 O 씨가 2015년부터 EBS 수능연계 영어교재 집필진으로 참여 중 유명 학원강사가 EBS 교재를 변형한 수능 대비 문항공급을 청탁하자, 관련 파일을 빼돌려 문항을 변형 제작하는 등 방식으로 2015~2021년 무단으로 8000여 개 변형 문항을 만들어 강사에게 공급하고 5억 8000만 원의 금품을 수수한 사실도 적발됐다.
현직 입학사정관이 사교육업체에 취업해 학생에게 관련 대학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 자기소개서 작성 강의 등을 제공한 대가로 3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사례도 드러났다.
감사원 관계자는 "수능 경향에 맞춘 양질의 문항을 공급받으려는 사교육업체와 금전적 이익을 원하는 일부 교원 간에 금품 제공을 매개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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