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 안 붙은 과일, 어디 없나요

오동욱·전지현·김송이 기자 2024. 3. 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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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파프리카 등 과일값 ‘고공행진’
“5000원에 사과 3개, 너무 없어보여”
“7월까진 계속”···상인도 손님도 울상
온라인엔 기발한 ‘금과일 대비책’까지
10일 서울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에서 배 1개가 7000원, 귤 10개가 9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오동욱 기자

“아이고, 너무 없어 보인다.”

노점상에게 검은 봉지를 받아든 70대 손님 A씨가 말했다. “친구 주려고 사과를 5000원어치 샀는데, 봉지가 너무 가벼워서요.” 봉지 속에 든 사과는 3개. A씨가 살지 말지 망설이자 상인이 말을 보탰다. “요새 물건이 너무 안 나와서요. 친구분께 성의 표시만 하세요.”

작년 추석 즈음 치솟기 시작한 과일·채솟값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길어지는 고물가에 시장·마트를 찾은 시민도, 상인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햇과일이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7월까지는 과일이 높은 가격을 유지할 것이라 전망했다. 고물가가 최소 서너달은 지속된다는 얘기다.

10일 서울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저마다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상인 정준호씨(57)는 “지난해 이맘때 20개들이 배 한 상자가 4만~5만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10만원도 넘는다”라며 “5000원 하던 귤 한 바구니(10개)가 지금은 9000원대”라고 했다. 채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애호박 1개가 3000원, 대파 1단이 4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예년에 비해 2~3배가 넘는 수준이다.

파프리카를 주로 파는 노점상 임모씨(67)는 “여기서 장사한 지 31년 됐는데 올해처럼 장사가 안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파프리카가 수북이 쌓인 매대에는 ‘1개 2000원’이라고 적힌 가격표가 꼿혀 있었다. 앞서 적혀 있던 ‘1개 3000원’은 굵은 펜으로 지워졌다. 팔리지 않으니 울며겨자먹기로 가격을 낮춘 것이다. 그럼에도 손님들의 주머니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파프리카에 관심을 보이다가도 높은 가격을 보고 발걸음을 돌리기 일쑤였다.

10일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 매대에 파프리카와 애호박이 올라와 있다. 오동욱 기자

2주마다 시장에 온다는 배문호씨(43)는 “가격이 너무 올라 부담이 된다”라며 “설이 지나면 내리곤 했는데 지금은 쭉 이어지고 있다”라고 했다. 배씨는 손에는 5000원 주고 산 천혜향 6개가 담긴 검정 봉투 하나만 달랑 들려 있었다.

고물가의 타격은 도매시장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여름 10개 들이 한 바구니에 2000원이던 토마토가 지금은 5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싸게 물건을 살 수 있을거란 기대감에 도매시장을 찾아 왔다는 이재영씨(54)는 “배 하나에 6000원이나 해 손이 안 갔다”라고 했다. 40년째 청과물 장사를 해온 장연호씨(73)는 “지난 추석 이후 과일이나 채소 가격이 내려가지 않고 있다”라며 “소매가 잘 돼야 도매도 잘 되는데 지금은 새벽 도매시장에도 사람이 없다”라고 했다.

서울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에서 한 노점상이 10일 매대 아래에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사과를 모아 두고 5개 5000원에 팔고 있다. 오동욱 기자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더 싸게 파는 곳에 몰렸다. 열명 남짓한 손님이 북적인 한 가게에선 다른 집이 ‘3개 5000원대’에 파는 오렌지를 ‘6개 5000원’에 팔고 있었다. 시장 입구에서 사과를 파는 B씨는 흠집이 난 사과를 5개씩 모아 따로 팔았다. 그는 “예전 같으면 생과일 음료를 만드는 데 들어갈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사과”라며 “싸니까 사람들이 이거라도 집어간다”라고 했다.

마트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11일 만난 장모씨(68)는 사과가 든 봉지를 들고 ‘사과 8입내/봉 1만1200원’이라고 적힌 가격표를 보더니 “이 가격에 8개라는 줄 알았는데 만져보니 6개네”라며 내려놨다.

평소 사과와 비트, 당근를 갈아서 만든 속칭 ‘ABC 주스’를 자주 만들어 먹는다는 나모씨(53)는 요즘 사괏값이 너무 올라 주스를 끊었다고 했다. 나씨는 “요즘은 오렌지, 바나나 같은 해외 수입 과일에 오히려 손이 간다”라며 “어제도 마트에서 사과가 1개에 4000원이나 하는 걸 보고 고민하다 그냥 돌아왔다”라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11일 1봉에 1만1200원인 사과가 진열돼 있다. 김송이 기자

온라인에는 ‘금과일 대비책’이라는 웃지 못할 ‘비법’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X(옛 트위터)에 ‘사괏값이 작년 대비 71% 올랐다’라는 뉴스 장면을 올리며 “우리가 살아날 길은 냉동 과일밖에 없다”라고 적었다. 이 글엔 “비타민은 과일이 아니라 비타민 약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과일값은 진짜 (너무하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1인 가구가 과일을 싸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라며 ‘편의점에서 할인하는 바나나를 통신사 할인으로 저렴하게 사는 법’이 공유되기도 했다.


☞ 가격 올랐다고 수입?…사과 농가들 ‘부글’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403081521001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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