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교사들 ‘문제팔이’ 진짜였다…학원과 조직적 거래로 수억 챙겨
수능과 수능 모의평가 출제 및 검토 경력 있는 교사들이 조직적으로 사교육업체와 억대의 문항 거래를 해온 사실이 감사원 감사로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실시한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 실태 점검’ 감사 결과 혐의가 확인된 교사 27와 학원 관계자 등 56명을 청탁금지법 위반과 업무방해,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요청했다고 11일 밝혔다.
감사 결과 문항 거래를 한 교사 다수는 ‘문항 공급 조직’을 꾸려 조직적으로 사교육 업체와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과 수능 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여러 번 참여한 고교 교사 A씨는 출제 합숙 중에 알게 된 교사 8명을 포섭해서 문항 공급 조직을 구성했다. A씨는 포섭한 교사들과 2019년부터 2023년 5월까지 수능 경향을 반영한 모의고사 문항 2000여 개를 만들어 사교육 업체와 유명 학원강사들에게 공급하고 6억6000만 원을 받았다. 이 중 3억9000만 원은 조직에 참여한 교원들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2억7000만원은 자신이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A씨 조직에 가담한 교사 B씨는 2022년 평가원에 파견근무 요청을 받으면서 최근 3년간 상업용 수험서 집필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이력이 없다고 거짓으로 답하고 출제위원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평가원 근무 중에도 계속 문항을 만들어 팔아 5100만 원의 부수입을 올렸다.
교사가 EBS 수능 연계 교재 파일을 교재 출간 전 빼돌려 비슷한 문항을 만들어 학원 강사에게 공급하고 돈을 받는가 하면, 사교육 업체에 공급한 문항을 학교 중간·기말시험에 출제한 사례도 있었다.
2023학년도 수능 당시 논란이 됐던 ‘영어 23번’ 문제의 전모도 밝혀졌다. 해당 논란은 대형 입시학원의 유명 강사가 만든 사설 모의고사 교재에 나온 지문이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에 그대로 출제되면서 불거졌다.
감사원이 파악한 경위를 보면, 2023년 1월 출간될 예정인 EBS 수능 연계 교재에 한 고교 교사가 2022년 3월 ‘Too Much Information’(TMI)라는 지문으로 출제한 문항이 수록돼 있었다. 대학교수 A씨는 2022년 8월 해당 EBS 교재 감수에 참여하며 TMI 지문을 알게 됐고, 이어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출제위원으로 활동하며 해당 지문을 무단으로 사용해 수능 23번 문항으로 출제했다.
평소 교원에게 문항을 사서 모의고사를 만들던 유명 강사 B씨는 TMI 지문의 원 출제자와 친분이 있는 다른 교사 C씨를 통해 TMI 지문으로 만든 문항을 받아 9월 말 모의고사로 발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부정행위들로 인해 ‘1타 강사 모의고사 판박이’ 논란을 야기한 수능 영어 23번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사건 축소에만 급급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평가원 영어팀은 수능 문항 확정 전 사설 모의고사와 중복 검증을 부실하게 해 TMI 지문 문항이 수능에 중복 출제되는 것을 걸러내지 못했다. 이후 중복 출제에 대한 이의신청이 215건 들어왔는데도, 평가원 담당자들이 공모해 이의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 논란을 축소하려 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밖에 현직 입학사정관이 사교육 업체에 취업해 자기소개서 작성 강의 등을 하고 금품을 받은 사례들도 확인됐다. 감사원은 “입학사정관 퇴직 후 3년간 학원 등 취업이 제한되는 고등교육법 조항을 위반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며 “법상 위반 시 제재 규정은 없어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교육부에 제도 개선 등을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감사원은 이들 외에도 문항 거래를 통해 금품을 받았다고 확인되는 다수 교원에 대해 감사위원회 의결 이후 엄중한 책임 문책 등 조치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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