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문제 거래 교사·학원 피라미드조직 활개…감사원 56명 수사요청
감사원, 교원·1타 강사·평가원 3각 유착의혹 개연성 확인
수능 영어 출제이후 평가원 대응에도 여러 문제 확인
문항거래로 돈 벌고 중간·기말고사에 문제 출제하기도
교감이 문항제작팀 조직운영…현 입학사정관 불법 '투잡'
감사원은 지난 2022년 유명 1타 강사의 모의고사에 나온 영어지문이 그 해 수능 시험에 출제되는 과정에 학원 강사와 교원, 출제 교수, 평가원 등의 대규모 유착 비리가 작용했을 개연성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평가원은 수능 문제 확정 전에 해당 1타 강사의 모의고사를 매년 구매해 중복 여부를 검증했지만 그 해만은 구매를 하지 않았고, 또 수능 후 같은 지문이 출제됐다는 이의 제기를 받고도 해당 사안을 아예 심사위원회에 상정하지 않도록 유도해 종결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교육업체와 수능출제 경험 교사 등이 참여해 시험 문제를 제공·거래하는 피라미드식 조직도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현재 진행 중인 '교원 등의 사교육 시장 참여 관련 복무실태 점검' 감사와 관련해 신속한 수사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 교원 27명과 학원 관계자 등 모두 56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배임수증재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11일 밝혔다.
1타 강사 영어지문이 수능 영어로 출제 확인
발단은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제이었다. 영어 지문은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저서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에서 발췌한 것. 그런데 이 지문은 유명 일타강사가 고교 교원 A씨로부터 제공받아 그해 9월말 모의고사로 이미 출제한 것이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수능문제를 출제한 사람은 대학교수 B씨이다. B교수는 22년 8월 평가원의 의뢰로 EBS 수능연계교재를 감수했는데, 여기에는 또 다른 고교 교원 C씨가 출제한 해당 지문이 있었고, 이후 B교수가 문제 유출을 금지하는 EBS 규정을 어기고 수능에 출제한 것이다.
결국 교원 A씨와 C씨를 시작으로 1타 강사의 모의고사와 수능 영어 문제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교원 A씨와 C씨는 EBS 교재집필을 통해 친분이 있는 관계라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감사원은 "평가원 영어팀도 수능 문항의 확정 전에 사설 모의고사와의 중복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20년과 21년 해당 강사의 수능 모의고사를 구매했으나 22년에만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구매를 하지 않아 해당 모의고사가 검증대상에서 누락됐다"고 설명했다.
평가원의 거짓말…이의제기 안건상정 아예 제외 공모
평가원은 해당 지문이 수능에 출제된 뒤에 더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다. 감사원은 "평가원 담당자들이 이의심사 준비과정에서 수능출제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해당 안건을 아예 이의심사위원회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공모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지문이 같아도 문제 유형이 다르면 기출로 보지" 않으며, "사교육업체 홈페이지에서 구매 가능한 모의고사인데도 개인 수강생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이어서 평가원에서 인지하지 못했다"고 거짓 설명을 해 아예 '본 심사위원회에 상정되지 않고 종결처리 시켰다는 것이다.
EBS도 수능 이후 출제 교수가 출간 전 교재 지문을 무단으로 이용한 사실을 알렸으나, 평가원 측은 해당 안건을 본 심사에 상정하지 않는 '제외사안'으로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원과 사교업체 문항거래 커넥션…피라미드식 조직화
감사원은 이처럼 교원과 사교육업체들이 시험 문제를 거래하는 일이 "수능 경향에 맞춘 양질의 문항을 공급받으려는 사교육업체와 금전적 이익을 원하는 일부 교원 간에 금품 제공을 매개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수능이나 수능 모의평가, EBS 교재 집필 경험이 있는 교원들을 중심으로 사교육업체→중간관리 요원→다수 교원으로 연결되는 피리미드 조직이 전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교 교원 D씨의 경우 "수능·모의평가 출제 합숙 중에 알게 된 교원 8명과 문항공급조직을 구성하고 지난 2019년부터 23년까지 2천 여 개 문항을 만들어 공급하고 6억 6천만 원을 받아, 이 중 3억 9천만 원은 참여 교원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2억 7천만 원은 알선비 명목으로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과거 3년간 수험서 집필에 참여한 교원은 수능출제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음에도 교원 E씨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22년 1월 평가원에 파견교사로 근무했다. 이 교원은 평가원 근무 중에도 문항 거래를 계속했으며 22년부터 23년 9월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모의 평가 및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EBS 영어 수능연계교재 파일을 미리 빼돌려 변형 문항을 만든 뒤 학원 강사에 공급하고 금품을 수수한 교원도 적발됐다. 고교 교원 F씨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 15년부터 21년까지 EBS 동의 없이 무단으로 8천여 개의 변형문항을 만들어 이 중 천여 개의 문항은 교재 출간 전에 학원 강사에 공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교육업체에 문항을 제작·공급해 수 천 만 원대의 금품을 수수하면서 공급한 문항을 학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출제한 교원도 다수 확인됐다.
특히 교원 G씨는 지난 19년 교감으로 승진해 학교 교원들의 복무실태를 지도 감독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동문 선후배들과 문항제작팀을 조직해 23년까지 5년 동안 9천 5백만 원을 수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입학사정관이 사교육업체에 취업해 자기소개서 작성 강의 등으로 금품을 수수하기도 했다. 한 대학의 현직 입학사정관 H씨는 지난 20년 8월 입시컨설팅 전문 업체에 취업해 대학의 내부정보를 이용해 자기소개서 작성 등의 강의로 3백만 원의 대가를 받았다.
감사원은 이날 수사를 요청한 56명 외에도 "문항 거래를 통해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확인되는 다수 교원에 대해서도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엄중히 책임을 묻는 등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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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학일 기자 kh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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