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모평 출제교사들 ‘문항 공급조직’ 운영…학원에 팔아 수억 챙겨

조혜선 동아닷컴 기자 2024. 3. 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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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사교육 카르텔’ 56명 수사 요청
감사원. 뉴스1
현직 교사가 사교육 업체에 모의고사 ‘킬러 문항’을 만들어주고 대가를 받는 등 교원과 사교육업체 간 문항 거래 유착이 확인됐다고 감사원이 11일 밝혔다.

감사원은 현직 교사와 학원 관계자의 유착 관계,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 의혹에 대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감사를 실시했다. 감사원은 이를 토대로 문항을 판매한 현직 고교 교사와 이를 사들인 학원 관계자 등 56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배임수증재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수사 요청 대상 56명 중 현직 교사는 27명이라고 전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들 간 거래는 수능과 모의평가 출제 참여 경력, EBS 수능연계교재 집필 경력이 있는 교사 등을 중심으로 피라미드식 조직 등의 형태로 전개됐다. 수능 등 출제 경력이 있는 교사가 조직의 정점이 돼 억대 수익을 가져가고, 중간관리 교사가 매년 적게는 수백 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 만 원까지 가져가는 식이다.

현직 교사 등 8명 포섭해 문항공급조직까지 구성

사교육 업체와 문항 거래를 한 현직 교사들은 동료 교원들을 포섭해 문항 공급 조직을 만든 뒤 판매해 대가를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교사는 사교육업체 거래 이력을 숨기고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고교 교사 A 씨는 수능·모의평가 출제 합숙 중 알게 된 검토 및 출제 경력 교사 총 8명을 포섭해 문항공급조직을 구성한 뒤 2019년부터 2023년 5월까지 2000여 개 문항을 제작·공급해 6억6000만 원을 수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현직 교사는 이 문항공급조직에 몸 담고도 모의평가와 수능 출제위원으로 5차례나 참여해 2020년부터 2023년 4월까지 5100만 원의 금품을 수수했다.

배우자와 함께 출판업체를 운영하면서 교사 35명을 모아 문항거래 사업에 나선 고교 교사 B 씨의 사례도 있다. B 씨는 EBS 교재 집필진과 수능 출제경력 교사 등으로부터 문항을 구입해 대형 사교육업체 등에 공급하고 금전적 이익을 수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문항판매 대가로 18억9000만 원의 매출을 올려 이 가운데 12억5000만 원은 거래 교사 35명에게 지급했다.

일타강사 모의고사 지문, 수능에 그대로…진실은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지문이 그해 9월 나온 사설 모의고사 문제집과 이듬해 출간 예정이던 EBS 수능 연계교재 감수본에 포함된 경위도 이번 감사를 통해 밝혀졌다.

해당 문제는 EBS교재 필진인 고교 교사 C 씨가 처음 만들었다. 감사 결과 EBS교재 감수진이었던 대학교수 D 씨는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모든 사실을 EBS 허락없이 유출할 수 없다’는 보안서약서를 위반하고 해당 지문을 수능 문항에 가져다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일타강사 E 씨가 만든 문제집에도 수능 영어 23번 지문이 사용됐다. 이 강사는 2022년 8월 친분이 있는 현직 교사로부터 해당 지문으로 제작한 문항을 공급받아 같은해 9월말 모의고사로 발간했다. 강사 E 씨에게 문항을 제공한 교사와 C 씨는 EBS 교재 집필을 통해 친분이 있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문항을 확정하기 전 사설 모의고사 문항과의 중복 검증을 위해 강사 E 씨의 모의고사를 2020년과 2021년 등 2년 연속 구매해오다가 2022년에만 별다른 이유 없이 구매하지 않아 검증 대상에서 누락됐다. 또 수능이 치러진 뒤 해당 문항에 대한 수험생들의 이의신청이 다수 접수됐는데도 평가원 담당자들이 공정성 논란을 우려해 고의로 해당 안건을 이의심사위원회 심사 대상에서 제외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은 “교원과 사교육업체 간 문항 거래는 수능 경향에 맞춘 양질의 문항을 공급 받으려는 사교육업체와 금전적 이익을 원하는 일부 교원 간에 금품 제공을 매개로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그 외 문항 거래를 통해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확인되는 다수 교원에 대해서도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엄중히 책임을 묻는 등 조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조혜선 동아닷컴 기자 hs87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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