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손, 스시를 만들 수 없다? 금기와 도발 [최정봉 칼럼]

2024. 3. 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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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봉의 일본 관광객이 묻는다]

‘스시 장인: 지로의 꿈’(2011)은 널리 사랑받는 다큐멘터리다. 스시를 향한 99세 오노 지로의 경건함에는 어떤 신비감마저 감돈다. 그와 그의 아들이 운영하는 ‘스키야바시 지로’는 미슐랭 3스타를 얻으며 세계적 명성을 누렸고, 그 명성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방문으로 정점을 향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요시카즈 지로가 몇 해 전 구설에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 스피크이지 (Speakeasy)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은 스시 셰프로 적절치 않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논란의 초점은 그가 지목한 여성의 결격 사유다.

“여성은 월경을 하기 때문이죠. 전문가는 음식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성은 생리 주기 때문에 미각에 불균형이 생깁니다. 그래서 여성은 스시 요리사가 될 수 없지요.” 참으로 기상천외한 결격사유가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일본 스시집에서 여성 셰프를 본 적이 없다. 한국도 그렇지만 대부분 홀 서빙을 담당할 뿐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로 분한 최민식이 그러지 않던가. “여자는 손이 따뜻해서 스시를 만들 수 없다”고. 생선의 선도를 낮추고 샤리의 온도를 올리기 때문이란 유사과학적 ‘썰’은 상식처럼 퍼져 있다.

생리와 손의 온도 이외에도 손이 작아 초밥 크기 조절에 어려움이 있다는 신체 저격, 여성 화장품과 향수가 후각을 교란한다는 문화적 폄하, 생선 내장을 꺼내 손질하는 고된 노동에 여성이 적절치 않다는 ‘배려성’ 퇴짜까지 실로 여러 구실이 동원된다.

신성이라는 재단 앞에는 배제와 금기라는 보초병들이 서성인다. 역으로 말해 배제와 금기야 말로 평범한 공간, 사소한 물체, 일상적 음식조차 특별한 대상으로 격상시키는 지렛대란 것이다. 무수히 많은 일본의 신사(神社)처럼 스시의 신성화도 한 축에는 오노 지로 같은 장인의 혼이, 다른 한 축에는 ‘부적격’ 대상에 대한 금기들이 사천왕상처럼 버티고 있다.


 작은 균열

반전은 의외의 공간에서 시작됐다. 업계 중견들 중 일부가 스시의 새로운 미학을 위해 여성 셰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도쿄의 긴자 오노데라 수석 셰프 사카가미 아키후미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오노데라를 비롯해 몇몇 유명 레스토랑이 2020년부터 여성 수습 셰프 고용에 적극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변화를 평등을 위한 용단이라 미화하지 않았다. 고객층의 다양화와 세계화 추세에 맞춘 영업전략에 가깝다고 인정한다. 여성 셰프가 카운터에서 일하는 장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고객이 여전하지만 이를 참신한 변화로 여기고 반기는 이들도 많다는 셈법이 작동한 것이다.

정작 애로가 발생하는 지점은 자격증과 경륜을 갖춘 여성 셰프를 찾는 일이다. 도쿄 스시 아카데미만 보더라도 여성 비율은 전체의 10%를 미달한다. 지난 2~3년간 여성 견습생 비율이 최대치로 늘었지만 스시는 남성의 영역이라는 통념은 여전히 견고하다.

셰프 지망생 노구치 유키(여성)는 AFP와의 인터뷰(2020년 4월 27일)에서 “일본에서는 가족을 돌보는 것이 전적으로 여성의 책임이라는 믿음이 아직도 강하다. 스시 셰프는 주로 저녁에 일을 해야 해서 일본 여성들의 현실에 부적합한 직업이고, 그래서 애초에 꿈을 갖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유명세를 단 몇몇이 있다. 한국에 이슬기, 황민지, 박소정 셰프가 있다면 일본에는 교토 리츠칼튼 호텔의 이바 지사키, 긴자 스시 타케의 다케우치 후미에, 그리고 20년 경륜을 자랑하는 시즈오카의 지바 유미가 대표적이다. 비전통적, 탈전형적 스타일로 스타 반열에 오른 아키하바라의 치즈이 유키도 빠질 수 없다.

나데시코 스시의 여성 셰프들 (허프포스트)


 

 의도하지 않은 도발

치즈이의 스토리는 흥미롭다. 그녀가 이끄는 나데시코 스시는 셰프 5인 모두가 여성이란 점부터 남다르다. 나데시코는 일본에서 자생하는 분홍빛 꽃인데 이상적 일본 여성의 상징으로 통한다. 순수, 정숙, 우아함과 인내의 덕을 갖춘 여성을 야마토 나데시코(大和撫子)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 있다. 꽤나 고루한 여성상이지만 어쩌겠나, ‘옛것’을 신주단지로 받드는 나라인 것을.

치즈이는 페미니스트도 평등주의자도 아니다.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하던 차에 우연히 구인광고를 접하면서 2010년 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나데시코 소유주 니시키오리 가즈야(남성)도 딱히 진보적 가치관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상술의 일환으로 여성 요리사를 찾았을 뿐이었다.

여성 셰프를 구한 이유는 나데시코 음식점이 남성 오타쿠들의 천국인 아키하바라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키하바라에는 자극적 노출과 순종적 의상의 여종업원들이 남성 고객들을 ‘접대’하는 메이드 카페(maid café)가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메이드 카페의 ‘귀여운 소녀’ 콘셉트를 스시 가게에 접목하겠다는 것이 오너의 발상이었다.

오너의 관심이 온통 여성 셰프의 페로몬 효과에 쏠려 있다 보니 치즈이가 카운터에 서기까지 정식으로 받은 수련기간은 고작 2주에 지나지 않았다. 생선 손질부터 조미료 사용법까지 통상 10년이 걸린다는 훈련을 치즈이는 2주 속성 코스로 마쳤던 것이다. 나머지는 그녀 스스로 습득해야 했다.

허술한 기초는 오히려 그녀를 자유롭게 했다. 관습과 전통, 룰과 고정관념 외부에 서 있던 그녀는 자신만의 스시를 창조할 수 있었다. 먼저 셰프들이 입는 흰옷부터 청산했다. 대신 요란한 색체의 유카타를 택했다. 유카타는 집 안에서는 물론이고 온천이나 축제 (마쓰리) 등에 캐주얼하게 입는 여름용 기모노다.

가부키 배우들이 유행시킨 유카타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치즈이는 “스시 조리공정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생선 살을 저미는 것부터 손님에게 음식을 전달하는 과정까지 모두 행위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그리고 반문한다. “철판구이나 칵테일 바에서 행해지는 퍼포먼스가 스시 음식점이라고 안 될 이유 있나요?”

요리사 모자도 집어 던졌다. 대신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액세서리를 꽂는다. 그녀는 메이크업도 한다. 무대에 서는 배우가 역할에 맞는 분장을 하듯 말이다. 아트를 전공한 그녀답게 각 스시들의 색채 조합과 플레이팅에 각별히 공을 들인다. 밋밋한 도마 대신 감각적인 그릇을 골라 정성껏 장식을 올린다.

치즈이 유키의 스시 플레이팅 (WTHR)



 

 전통과 금기

난관도 적지 않았다. 초기에는 신선한 생선을 구하는 것부터 벅찼다. 남성들만의 영지인 쓰키지 어시장이 젊은 여성 치즈이에게 살가울 리 없었다. SNS 친구를 통해 여성 소유의 어선과 연결되지 않았다면 안정적인 생선 공급도 힘들었을 것이라 회고한다.

가장 힘 빠지는 순간은 지긋한 연령의 남성 손님들이 음식에 대해 혹평을 늘어놓을 때,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은 남성 스시 셰프들이 몰려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트집 잡을 때였다고 말한다. 어떤 셰프는 입에 넣었던 스시를 도로 뱉기도 했다 한다.

기성세대나 일부 남성들과 반대로 외국인들과 여성 고객들은 치즈이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나데시코에 요리학교를 운영하며 여성 스시 셰프 양성에 나선 것도 이들의 지지와 성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 말한다.

이에 대한 반응은 자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뜨겁다. 지난 10여 년간 영국의 BBC, 프랑스의 AFP, 미국의 허프포스트, 호주의 SBS등 세계 주요 언론과의 인터뷰가 이어져왔다. 그만큼 스시가 세계화되어 있음을 증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일본의 성차별 관행에 대한 우려 역시 팽배해 있음을 대변한다.

일본은 여성에게 금지된 것이 많은 나라다. 국기(國技)로 불리는 스모, 그 경기가 벌어지는 링 도효(土表)도 금녀구역이다. 여성이 후지산에 못 오르는 금기가 느슨해진 것도 20세기 들어서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100대 명산 중 하나인 나라현의 오미네산은 아직도 금녀구역이다. 아래 사진에 보이듯 산 정상 오미네 산사는 아예 출입금지 푯말이 서 있다.

다행히 정반대 흐름도 존재한다. 지난 2월 말 아타미에서 열린 ‘하다카 마쓰리’가 대표적 사례다. 반나체 차림의 남성들만을 위한 이 축제에 올해 처음으로 여성들의 대거 참여가 시작됐다. 1250년 만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다.

모든 전통이 다 신성할 수 없다. 그러니 맹목적 보존과 계승은 위험하다. 누군가는 배제시키고 다른 누군가만 옹호하는 전통이라면 의심하고 폐기해야 마땅하다. 오노 지로 장인의 혼이 담긴 스시 한 점보다 치즈이가 만든 요란한 스시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라현의 오미네 산사의 여성출입금지 표지판 (재팬투데이)



최정봉 사회평론가, 전 NY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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