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 ‘문제 장사 조직’ 만들어 수억 챙겨…카르텔 56명 수사 요청
돈받고 판 문제, 내신 시험 출제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모의평가 출제에 참여한 고등학교 교사들이 수능과 유사한 유형의 문항을 만들어 사교육 업체들에 거액의 뒷돈을 받고 넘겨 온 사실이 감사원 감사로 확인됐다. 사교육 업체에 팔아넘긴 문항을 자기 학교 내신 시험 문제로 출제한 교사들도 다수 적발됐다.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 실태 점검’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감사원은 11일 이런 내용의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고교 교사 27명과 사교육 업체 관계자 23명, 전직 대학 입학사정관 1명 등 56명에 대해 청탁금지법 위반과 업무방해, 배임증재,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문항 공급 조직’ 만들어 조직적으로 문항 장사
감사원에 따르면, 문항 장사를 한 교사 다수는 ‘문항 공급 조직’의 형태를 갖춰서 조직적으로 사교육 업체와 거래했다. 수능 문항과 유사한 문항을 만들어 파는 다수의 교사가 있고, 그 위에서 일부 교사가 ‘중간 관리’ 역할을 맡아 사교육 업체와의 거래를 알선하고 수수료를 챙겼으며, 정점에는 교사들로부터 문항을 공급받아 ‘족집게’ 행세를 하는 대형 입시 학원과 유명 강사들이 있었다. 감사원은 이를 “피라미드식 조직화”라고 표현했다.
수능과 모의평가 문항 검토위원으로 다년간 참여한 교사 A씨가 만든 문항 공급 조직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수능과 모의평가 문항 출제를 위해 평가원에 합숙했을 때 알게 된 다른 출제위원·검토위원 교사 8명을 끌어들여 2019년 조직을 구성했고, 이들과 함께 수능과 유사한 문항 2000여개를 만들어 사교육 업체와 유명 학원 강사들에게 총 6억6000만원을 받고 팔았다. 3억9000만원은 8명에게 나눠줬고, 나머지 2억7000만원은 알선비와 자기 몫 문항 제작비 명목으로 챙겼다. 이 가운데 2억1000만원은 자기의 부정 수입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배우자 등 다른 사람의 계좌로 받았다.
동료 교사 35명을 가담시켜 대규모 조직을 기업형으로 운영한 교사도 적발됐다. EBS 교재 등을 집필한 경력이 있는 B씨는 2018년부터 개인적으로 사교육 업체에 문항을 팔다가, 2019년 6월에는 아내와 함께 문항 판매 사업을 위한 출판업체를 세웠다. 이후 EBS 교재를 집필하며 알게 된 교사와 자기 소속 학교 교사 등 35명을 끌어들여 문항 제작진을 구성하고, 2022년까지 사교육 업체와 유명 학원 강사들에게 문항을 팔아 18억9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B씨 부부는 이 중에서 12억5000만원을 35명에게 나눠줬고, 4억1000만원은 직접 챙겼다.
◇수능·모의평가 출제위원들이 사교육 업체에 문항 공급
A씨의 문항 공급 조직에 2020년 가담한 교사 C씨는 2022년부터 평가원에 파견돼 근무하면서 지난해까지 수능과 모의평가 출제에 5차례 참여했다. 수능 관리 규정상 최근 3년 새 모의고사 문항을 만들어 판 사람은 출제위원이 될 수 없지만, C씨는 그런 이력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거짓으로 답하고 출제위원이 됐다. 이 기간에도 C씨는 계속 문항을 만들어 팔아 5100만원의 부수입을 올렸다.
교사 D씨는 이른바 ‘킬러 문항’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사교육 업체에 파는 사업을 했다. 그는 2016년부터 유명 학원 강사의 의뢰를 받아 킬러 문항을 제작해 공급했고, 2019년에는 다른 교사 2명을 더 끌어들였다. 이들은 지난해 6월까지 8년간 킬러 문항 2000여개를 만들어 팔아 3억2000만원을 챙겼다. 이 기간에 이들 3명도 평가원에 의해 출제위원으로 위촉됐고, 모두 ‘최근에 모의고사 문항을 만들어 판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3명은 각각 2021학년도 6월, 2023학년도 6월,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에서 실제로 문제를 냈다.
◇출간 전 EBS 교재 빼돌려 문항 장사
EBS 교재가 수능 출제와 연계된다는 것을 악용해, 출판 전의 EBS 교재를 빼돌려 문항 장사에 활용한 교사도 있었다. 교사 E씨는 2015년부터 EBS의 수능 연계 영어 교재 집필진이 됐고, 곧바로 EBS가 교재를 발간하기 전에 최종 검토를 위해 집필진에게 제공하는 파일을 빼돌려 이와 유사한 문항을 만들었다. 다른 교사가 집필·출제한 부분까지 무단으로 가져다가 문항을 만든 것이다. 교재 파일을 직접 구할 수 없을 때는 다른 집필진에게 ‘연구용으로 쓰겠다’ ‘수업에 활용하겠다’ 등 거짓말을 해서 파일을 받았다. E씨는 이런 식으로 2021년까지 7년간 문항을 8000여개 만들어 유명 학원 강사에게 공급하고 5억8000만원을 받았다.
◇사교육 업체에 판 문항을 내신 시험에 출제
문항 장사 교사들은 사교육 업체에 판 문항 일부를 자기 학교 중간·기말고사 시험 문제로 내기도 했다. 사교육 업체를 통해 문항을 사들여 공부한 몇몇 학생들만 유리해지는 구조다. EBS 교재를 빼돌려 출제한 F씨는 2019년에 판매한 문항 중 13개를 자기 학교 중간·기말고사에 그대로 또는 일부를 변형해 출제했다. 다른 교사 3명도 각각 사교육 업체에 문항을 팔아 1억8000만원, 1억2000만원, 8300만원을 챙기고, 문항의 일부를 중간·기말시험에 출제했다가 적발됐다.
국가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 등에 따르면, 국·공립학교 교사건 사립학교 교사건 문항을 만들어 사교육 업체에 파는 등의 영리 업무를 하는 것은 위법이다. 교사의 영리 행위는 공익 목적 등에 한해, 학교장으로부터 겸직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문제집 출판 등만 할 수 있다.
◇일부 교사만 우선 조사… 전체 ‘문항 장사꾼’은 300명 이상
감사원이 이번에 경찰에 넘긴 교사들은 문항 장사를 한 교사들의 일부에 불과하다. 지난해 교육부가 교사들로부터 영리 행위를 한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자진 신고를 받았는데, 322명이 문항 판매 등을 했다고 신고했다. 감사원은 이 가운데 최근 5년간 5000만원 이상을 받았다고 한 교사들만을 우선 조사했다. 감사원은 신고액이 5000만원 미만인 교사들과 자진 신고를 하지 않은 교사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일부는 심각한 위법 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또 이번에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지 않은 교사들에 대해서도 영리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입시 컨설팅 업체에 이중 취업한 입학사정관도 적발
한편 사교육 업체에 이중 취업해 수험생의 자기소개서 작성을 도와준 입학사정관도 이번 감사에서 적발됐다. 여러 대학 입학사정관을 역임한 G씨는 2020년 7월 한 대학 입학사정관으로 채용됐다. 그 한 달 뒤 G씨는 입시 컨설팅 전문 업체에도 취업해 11월까지 수험생들의 자기소개서 작성을 지도하고 300만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앞서 다른 대학 입학사정관으로 일하며 알게 된 내부 정보를 이용해, 이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의 자기소개서 작성을 돕기도 했다.
감사원은 G씨를 경찰에 수사 요청하는 한편, 입학사정관 퇴직 후 3년간은 학원 등에 취업할 수 없다는 고등교육법을 어긴 전·현직 입학사정관이 다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들에 대한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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