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사교육업체 수능 문항 거래에 출제위원 참여까지…비리 만연

변해정 기자 2024. 3. 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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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교사·학원 관계자 등 56명 경찰에 수사 요청
피라미드식 조직적 전개…배우자와 출판사까지 운영
거래이력 숨기고 수능 출제위원 참여…학교시험 출제

[서울=뉴시스] 변해정 기자 =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 경력이 있는 교사들이 조직적으로 사교육업체에 수능·내신 예상문제를 팔고 고액의 금품을 받아 챙기는 일이 비일비재 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사교육업체와의 거래 이력을 숨기고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하거나 사교육업체에 판 문제를 학교 시험에 출제했다. 배우자와 짜고 출판업체를 차린 경우도 있었다.

감사원은 11일 이같은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관련 교사와 학원 관계자 등 56명을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업무방해와 배임수증재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56명 중 27명이 현직 교사다. 대학교수 1명,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직원 4명, 전직 입학사정관 1명, 사교육업체 관련자 23명이다.

또 문항 거래를 통해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확인되는 다수 교사에 대해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엄중히 책임을 물린다는 방침이다.

이번 감사는 교사와 사교육업체 간 유착 관계,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에 대한 우려가 지속 제기된 데 따라 지난해 9~12월 약 4개월간 이뤄졌다.

◇서약서 어기고 자격심사자료 거짓 제출…세금 탈루도

교사와 사교육업체 간 수능·내신 문항 거래는 만연해 있고 그 수법은 조직적이고 다양했다.

수능 검토위원 경력이 있는 교사 I씨는 수능·모의평가 출제 합숙 중 알게 된 검토 및 출제위원 참여경력의 교원 8명을 포섭해 소위 '문항공급조직'을 꾸린 뒤 2019년부터 2023년 5월까지 사교육 업체에 2000여 개 문항을 제작·공급했다.

I씨 조직이 받아 챙긴 부당 수익은 6억6000만원에 달한다. I씨는 이 중 3억9000만 원은 참여 교사들에게 나눠줬고 나머지 2억7000만원은 자신의 문항 제작비와 알선비 명목으로 챙겼다. 세금을 빼돌리기 위해 자신의 배우자 등의 명의 계좌로 2억1000만 원을 수수한 사실도 발각됐다.

사교육업체 거래 이력을 숨기고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케이스도 수두룩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관리규정' 등에 따르면 과거 3년간 모의고사 문항 판매를 포함해 수험서 집필 실적이 있는 경우 출제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평가원 수능 업무 관례상 파견교사를 출제위원으로 위촉하므로 면접 시 사교육업체 관련 여부도 확인하게 돼 있다.

교사 J씨는 2020년부터 I씨의 문항공급조직에 참여해 문항을 제작·공급하던 중 2022년 1월 평가원으로부터 파견 근무를 요청 받았다.

그러나 면접 당시 '최근 3년간 상업용 수험서 집필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도 거짓 답변을 해 그 해 3월부터 파견교사로 근무했으며, 평가원 근무 중에도 I씨와 함께 문항 거래를 계속하면서 출제위원 위촉 시마다 사교육업체 거래 사실이 없는 것처럼 '출제위원 후보자 자격심사자료'를 작성해 2022년부터 2023년 9월까지 수능·모의평가 출제위원으로 5차례나 참여했다.

J씨는 거래 사실을 숨기려고 부인 명의로 금품을 받아 챙긴 뒤 참여 교사들과 나눠 가졌다.

고교 교사 K씨는 2016년 유명 학원강사의 의뢰로 수능 경향을 반영한 고난도 문항을 제작·공급하기 시작한 후 2019년에 또 다른 교사 L씨와 M씨를 포섭해 2000여 문항을 제작·공급하고 3억2000만 원을 수수했다. 이들은 평가원에서 수능 또는 수능 모의평가 출제위원 참여를 위촉하자 학원강사와 문항 거래가 없는 것으로 자격심사자료를 꾸며냈다.

그 결과 K씨는 2021학년도 6월 모의평가, L씨는 2023학년도 6월 모의평가, M씨는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에 각각 출제위원으로 참여했다.

고교 교사 P씨는 2018년부터 2023년 9월까지 온라인 사교육업체에 내신 예상 문항 7000여 개를 제작·공급한 후 그 대가로 8300만 원을 수수했다. 2019~2021년에는 이 업체에 공급한 8개 문항을 소속 학교의 중간·기말시험에 출제하기까지 했다.

고교 교사 Q씨도 2019∼2022년 사교육업체에 수능 대비 모의고사 문항 1200여 개 및 학원 강의 부교재를 제작·공급하면서 1억8000만 원을 받아 챙겼으며 이 중 1억원에 대한 소득세액 증가를 피하려고 모친 명의 계좌로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2022년 소속 학교의 시험 문항을 출제하면서 2019~2020년 사이 이 업체에 공급한 13개 문항을 그대로 또는 일부 변경해 중간·기말시험에 출제했다.

고교 교사 R씨 역시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사교육업체 여러 곳에 수능 대비 모의고사 문항 490여 개를 넘겨준 뒤 1억2000만 원을 받아 챙겼고, 2020~2022년 이 업체들에 공급한 14개 문항을 일부 변형해 소속 학교의 중간·기말시험 문제로 냈다.

고교 교사 O씨의 경우 EBS 영어 수능연계교재 파일을 교재 출간 전에 빼돌린 뒤 변형 문항을 제작해 학원 강사에 공급하고 5억8000만 원의 금품을 수수한 사례다.

O씨는 EBS 교재 지문은 그대로 활용하고 문제 유형만 최신 수능 경향에 맞춰 변형하도록 청탁받고선 EBS 교재 개발과정에서 지득한 모든 사실을 EBS 허락 없이 사용하거나 외부에 공개·공표·유출하지 않겠다는 'EBS 보안서약서'를 어기고 집필진에게 제공하는 파일을 빼돌렸다.

이런 수법으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EBS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만든 변형 문항만 8000여 개에 이른다. 특히 학생들이 빨리 구입하기 원하는 수능연계교재의 경우 EBS 교재 출간 전에 5000여 개의 변형 문항을 만들어 이 중 1000여 개는 교재가 출간되기 5~26일 전에 강사에게 공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거래 과정 중 2019년 강사에 공급한 문항 중 13개 문항은 같은 해 소속 학교의 중간 및 기말고사에 그대로 또는 일부 변형 출제했다.

◇배우자와 짜고 출판업체 차리고 입학사정관이 사교육업체에 취업

고교 교사 N씨는 2018년 1월부터 사교육업체에 수능 모의고사 문항을 공급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받아 챙겨오다 2019년 6월부터는 부인과 공모해 출판업체를 차렸다.

이 업체는 EBS 교재 집필을 하면서 알게 된 교사와 자신의 소속 학교 동료 등 35명의 현직 교사들로 문항 제작진을 구성하고, 이들에게 수능 경향을 반영한 문항을 사들여 사교육업체와 유명 학원강사 등에 팔았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문항 판매 대가로 올린 매출만 18억9000만원에 이른다. 이 중 12억5000만원은 문항 제작진으로 활동한 교사 35명에게 배분했다.

이 과정에서 N씨는 일부 교사에게 문항을 구매하지 않았는데도 문항 제작비 명목으로 금품을 제공한 후 이를 돌려받는 수법으로 허위의 영업비용을 계상해 세금을 빼돌렸다.

감사원이 문항 제작진으로 활동한 교사들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N씨는 자신이 직접 문항을 만들어 교사들에게 넘긴 뒤 이를 감사원에 제출하도록 시키는 등 허위 감사자료 제출로 감사 방해를 주도하기까지 했다.

고교 교감이던 S씨는 동문 선·후배들과 함께 문항제작팀을 만들어 사교육업체에 파는 방법으로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9200만원을 수수했다.

고교 교원 T씨 등은 2016년 말 유명 학원강사가 설립한 출판사에서 근무 중인 대학 동문으로부터 고난도 수학 모의고사 문항 등의 제작을 청탁 받고서는 다른 교사를 직접 섭외해가며 4000여 개 문항을 팔아 넘겼다. 이들이 챙긴 부당 수익만 8억7000만원에 달했다.

V씨는 입학사정관으로 근무하던 2020년 8~11월 약 4개월간 입시컨설팅 전문업체에 취업해 모 대학의 내부정보를 이용해 자기소개서 작성을 지도하는 대가로 3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입학사정관은 대학 수시전형 시 학교생활기록과 능력 등 전형자료를 활용해 합격자를 선발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사교육업체와의 유착을 막기 위해 현행법은 퇴직 후 3년간 학원 설립 또는 취업 및 입시상담 전문업체 설립·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감사원은 V씨 외에도 다수의 입학사정관 취업 제한 위반 사례를 확인해 현재 내부 검토 중이며, 추후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교육부에 제도 개선을 요청할 예정이다.

감사원은 "교사와 사교육 업체 간 문항 거래는 수능 경향에 맞춘 양질의 문항을 공급 받으려는 사교육 업체와 금전적 이익을 원하는 일부 교사 간에 금품 제공을 매개로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jp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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