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박이 논란' 재작년 수능 영어 23번, 사교육-수능출제 유착 개연성
EBS 교재·사설 모의고사 중복…검증 누락·이의신청 묵살
[서울=뉴시스] 변해정 기자 = EBS교재·사설 모의고사와 판박이 논란이 빚어졌던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23번 문항은 현직 교사와 학원 강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간 유착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수능 출제 과정에서 집필 중인 EBS 교재 문항 지문이 수능 문항에 그대로 출제됐던 것이다. 수능 문항과 사설 모의고사 중복 검증은 누락됐고 중복 지문 출제에 관한 이의신청은 평가원 직원들이 공모해 묵살시켰다.
감사원은 수능 영어 23번을 출제한 대학교수 A씨와 평가원 직원 등을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업무방해와 배임수증재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수사 요청했다고 11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22년 10월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출제위원으로 위촉돼 23번 문항을 출제했다.
23번은 지문을 읽고 주제를 찾는 3점짜리 문항으로, 해당 지문은 그 해 3월 베스트셀러에 오른 넛지의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출간한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TMI)'의 79페이지에서 발췌됐다.
그러나 수능 이후 23번은 유명학원 사설 모의고사에 실린 것이란 이의신청이 잇따랐다. 평가원에 접수된 이의신청 총 349건 중 215건(61.6%)에 달했다. 당시 이의신청자들은 유명 강사가 제공한 사설 모의고사를 미리 풀어보고 해설 강의까지 들은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알고 보니 A씨는 평가원의 의뢰로 지난 2022년 8월 EBS 수능연계교재를 감수했는데, 이 교재에 수록돼 있던 고교 교사 B씨의 TMI 지문을 무단으로 수능으로 출제했던 것이었다. 이는 교재 집필 중 알게 된 모든 사실을 EBS 허락없이 유출할 수 없다는 EBS의 '보안서약서'를 위반한 행위다.
평소 교사들에게 문항을 사서 모의고사를 만들어 온 유명학원 강사 F씨는 그 해 8월 고교 교원 C씨로부터 TMI를 지문으로 제작한 문항을 공급 받아 9월 말 모의고사로 발간했다.
C씨는 TMI 지문을 만든 B씨와 EBS 교재 집필을 하면서 친분이 있던 사이였다. B씨는 C씨가 자신의 TMI 지문을 F씨에게 넘겨준 사실을 미리 인지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수능 문항을 확정하기 전 사설 모의고사와의 중복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평가원 영어팀이 F씨가 발간한 모의고사를 2020년과 2021년에 구매했지만 2022년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구매하지 않아 검증 대상에서 누락된 것이다. 당시 평가원은 사교육업체 홈페이지에서 구매 가능한데도 개인 수강생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이어서 인지하지 못했다고 거짓 설명을 해댔다.
수능 이후 접수된 이의신청에 대한 평가원의 처리도 상식 밖이었다.
평가원 담당자 4명은 이의심사 준비 과정에서 수능 출제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해당 안건을 이의심사위원회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공모했던 것이다.
이의심사는 내부직원에 의한 준비위원회를 시작으로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이의심사실무위원회에서 상정 안건을 정하면 이의심사위원회가 심사·확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들은 또 수능 23번과 모의고사가 중복이 아니라는 논리를 개발하려고 외부전문가의 자문까지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수능 출제 시 사용하는 '기출문항 판정기준' 중 지문이 같아도 문제 유형이 다르면 기출로 보지 않는다는 항목을 강조해 평가원에 유리하게 해석토록 유도했다.
그러나 영어는 지문 해석이 가능하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어 문항의 질문과는 상관 없이 비교적 쉽게 문제를 풀 수 있으므로 지문 일치 시 중복으로 본다. 게다가 평가원은 수능 출제위원을 대상으로 사전워크숍을 실시하면서 '사설학원에서 기출제한 지문을 수능에 출제하면 안 된다'는 점도 안내한다.
이런 식으로 수능 23번 문항과 모의고사 문항이 중복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받아 이를 이의심사실무위원회에 보고했고, 그 결과 그 해 11월24일 이의심사실무위원회에는 23번 문항 관련 이의신청이 상정되지 않고 종결 처리됐다.
특히 평가원 영어팀 G씨는 이의심사실무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 EBS의 연락을 받고 A씨가 EBS의 출간 전 교재 지문을 무단 이용한 사실을 알았으나 이를 감췄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감사원은 감사 과정에서 A씨와 평가원 직원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소명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언급할 수 없다"면서도 "구체적인 유착 관계가 확인되진 않았으나 개연성은 파악됐다. 23번 문항이 출제된 모든 과정이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고 이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그래서 수사를 요청한 것이고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리라 본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jp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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