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270억 들여 '고려궐안전쟁'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됐나('고려거란전쟁')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3. 1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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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종영, KBS 대하사극에 남은 적지 않은 숙제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이 종영했다. 마지막은 모든 시청자들이 기다리고 기대했던 강감찬(최수종) 장군의 귀주대첩으로 마무리 됐다. 하지만 기다림도 길었고 기대도 컸던 만큼 실망감도 컸다. 겨우 30분 남짓의 귀주대첩 전쟁신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졌지만 너무 짧은데다 디테일도 부족했다.

검차진으로 진격하던 고려군이 거란군의 만만찮은 저항에 밀려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할 때, 강감찬이 직접 검차를 밀며 고려군을 독려함으로써 판세를 뒤집는 이야기는 드라마틱해 보이긴 하지만 하나의 은유적 표현처럼 여겨질 뿐이다. 어떤 디테일이 있어 겁에 질려 도망치던 고려군이 마음을 다잡게 됐는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강감찬 역할의 최수종 연기 하나로 설득하려 한다고 할까.

거란의 수만 대군이 몰려 오는 장면을 벌판에 피어난 작은 풀 위로 말발굽이 지나가는 장면으로 처리한다거나, 전쟁의 끝을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한다거나 하는 영상 연출 역시 시청자들이 납득할만한 것은 아니다. 검차진이 어떤 진법을 써서 거란군의 변화무쌍한 공격을 막아냈는지도 그 영상 연출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강감찬 장군이 전쟁을 진두지취하며 외치는 목소리만이 설명적으로 그려졌을 뿐이다. 전쟁의 디테일은 오히려 드라마 초반에 나왔던 양규(지승현) 장군이 이끌던 흥화진 전투가 훨씬 더 살아있었다.

무려 32부작이다. 그런데 첫 회에 잠깐 등장했던 귀주대첩의 스펙터클이 거의 전부인 것 같은 마무리다. 그 짧은 스펙터클이 일종의 맛보기에 불과하길 바랬던 시청자들은 31부에 와서야 비로소 다시 보여준 그 귀주대첩 장면들에 이어 32회에 20분 남짓 이어진 전쟁 신으로 마무리되는 건 보면서 그 맛보기가 사실 전부였다는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제작비 270억은 최근 치솟은 드라마 제작비를 염두에 두고 보면 결코 많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것도 아니다. 최근 출연료가 전반적으로 높아진데다, 많은 연기자들이 출연할 수밖에 없는 대하사극에서는 출연료 부담이 그만큼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조건들 속에서 '전쟁'을 아예 제목부터 내걸며 그 양상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꺼내놓은 <고려 거란 전쟁>의 선택은 현실적인 것이었을까.

귀주대첩 스펙터클을 빼놓고는 제작비 부족이 느껴지는 수십 명도 안되는 군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전쟁 장면들이 내내 이어졌고, 전쟁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회차들을 억지로 채워넣은 것처럼 보이는 무리하고 상투적인 억지 스토리들이 대신 채워졌다. '고려궐안전쟁'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스토리는 상상력의 빈곤함이 느껴졌고, 그런 상투적 전개는 '역사 왜곡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다.

현종(김동준)을 금쪽이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원작자로부터도 제기되었고, 원정왕후(이시아)가 원성(하승리)을 견제 질투하는 궁중암투의 이야기에 박진(이재용)이라는 가상인물이 내란까지 부추기는 실제 역사왜곡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가 전개됐다. 후반부로 와서는 역시 박진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김훈(류성현), 최질(주석태)의 반란 이야기가 지루하게 펼쳐짐으로써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고려궐안전쟁'이라는 비아냥에 '고려박진전쟁'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서사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지한 디테일도 또 새로운 시각도 채워주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흩어져 버림으로써 드라마의 엔딩은 '국뽕'으로 채워졌다. 거란군을 물리친 강감찬의 머리에 금으로 특별히 만든 장신구를 현종이 직접 꼽아주고, 입성하는 강감찬에 환호하는 백성들과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외국 사신들의 물결들이 이어졌다. 전쟁의 참상과 지켜내기 위한 전쟁,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의 승리가 아닌 숨은 영웅들의 승리 같은 서사는 애초 그런 가상의 인물조차 세워놓지 않은 드라마로서는 그려질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전쟁 신에 몇몇 이름없는 군사들의 처절한 전투 장면 몇 개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려 거란 전쟁>은 종영했다. 물론 초반 양규 장군이 이끌던 갖가지 전투들이 호평을 받았지만, 그 후로 지루하게 채워진 무의미한데다 무책임하기까지한 서사들로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질책을 받았다. 앞으로도 대하사극을 계속 이어가겠다 선언한 KBS로서는 이 작품의 문제들이 깊은 숙제로 남게 됐다.

먼저 스펙터클은 과연 KBS 대하사극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의 대중들의 높아진 눈높이는 스펙터클을 보여주려면 제대로된 퀄리티를 요구한다. 그만한 제작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정된 KBS의 제작비 사정을 두고 보면 이러한 스펙터클 대하사극은 무리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고려 거란 전쟁>은 그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라는 공영방송에서 우리네 역사를 다루는 사극이 필요하다는 건 대부분 공감하는 일일게다. 그렇다면 스펙터클보다는 보다 스토리에 집중하는 사극들을 선택하고 차라리 보다 적정한 예산으로 제작해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마치 대단한 걸 보여줄 것처럼 포부를 드러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는 걸 절감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시청자들을 기만하게 되는 그런 사태가 또다시 벌어지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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