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악취, 국민이 날려버려야 한다[이제교의 시론]
공천은 후보 정하는 선거의 꽃
규칙 독점 시 민주주의에 위협
민주당 ‘이재명 사당화’ 완성
국민의힘도 과거 공천 흑역사
시스템 작동 여부는 두고 볼 일
국민이 ‘악취 부엌’ 판단해야
“우리 당은 시스템 공천합니다. 준비 철저히 해주세요.” 지난 1월 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말했다. 여의도 당사에서 며칠 뒤 열린 비공개 내부 회의. 한 당직자가 반신반의,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정말 시스템 공천하나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한 위원장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니, 해본 적이 없다고? 공천이 그동안 어떻게 이뤄져 왔길래….’
공천은 선거의 꽃이다. 대체로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정당의 내부 결정으로 본다. 핀란드, 독일, 뉴질랜드는 공천 기준을 법으로 정하지만 대다수 나라에서는 정당이 규칙을 자체적으로 정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다. 공천은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원활히 작동시키는 약(藥)으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갉아먹는 독(毒)이 될 수도 있다. 공천 규칙이 소수 정치 엘리트 손에 쥐어지면 위험성은 더 커진다. 선거는 거대한 사기판이 되고 국민은 투표 노예로 전락한다. 유권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묵인한다. 같은 이념 좌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덮어진다.
더불어민주당 공천 과정 곳곳엔 ‘빅브러더’ 입김이 닿을 요소를 품고 있다. 첫 번째 단계인 선출직 공직자 평가는 의정활동 380점, 기여활동 250점, 공약이행활동 100점, 지역활동 270점 등 총점 1000점으로 짜이지만 어떤 현역 의원들이 불이익을 받는 하위 20%에 속하는지 기준이 모호하다. 평가위원회의 12명 평가위원 명단도 비공개다. 다만, 상당수가 친명(친이재명) 인사인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두 번째 단계의 국민참여경선도 마찬가지다. 권리당원 50%·일반 유권자 50%의 자동응답방식 여론조사로 진행되는 국민참여경선은 권리당원의 중복투표를 막을 길이 없다. 세 번째 단계인 공천관리위원회 심사는 여론조사 40%, 정체성 15%, 도덕성 15%, 기여도 10%, 의정활동 10%, 면접 10% 비율로 이뤄진다. 지도부의 방침이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당의 공천 방식 변경은 세력관계의 변화를 내포한다, 박광온·홍영표·윤영찬·설훈 등등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가결파 의원들은 공천에서 거의 예외 없이 탈락했다. 수박으로 낙인 찍힌 친문(친문재인)계와 비명계 의원들은 이중·삼중의 불이익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주인 교체는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의 “정당은 선거라는 부엌에서 나는 냄새가 밖으로 퍼지기를 원치 않으므로 공천을 비밀에 부친다”라는 언급처럼 드러나지 않게 이뤄졌다. 1965년 영국 정치평론가 앤서니 하워드는 공천을 ‘비밀의 화원’이라고 묘사했다. 정치학에서 비밀의 화원은 민주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공천을 묘사하는 적절한 표현으로 불린다(공천과 정당정치, 르우벤 하잔·기드온 라핫, 2019년). 당원과 후보 기준, 공천 주체가 보이는 듯해도 사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얘기다. 공천 주체가 1인 지도자라면 의사결정 배타성이 강해져 겉으로 민주주의가 활짝 핀 것처럼 보여도 속이 시들어 말라 죽게 마련이다. 각종 위원회는 초점을 분산시키는 눈속임이다.
국민의힘도 많은 공천 흑역사를 갖고 있다. 새누리당 시절인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김무성 대표의 ‘옥새 들고 나르샤’ 사건이 대표적이다. 부산 영도다리에서 고뇌하는 김 대표의 모습은 공천 주체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번 공천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정분리 원칙을 지켰는지, ‘윤한갈등’으로 공천 개입을 철회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물론 원칙주의자인 윤 대통령을 과거의 잣대로 바라봤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의 말처럼 국민의힘에서 시스템 공천이 철저하게 작동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시스템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스템을 움직이는 의지다. 이 대표는 8일 “민주당은 시스템에 의한 혁신 공천을 넘은 공천 혁명을 했고, 평가는 여당이 아닌 주권자인 국민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부분은 몰라도 뒷부분은 맞다. 국민은 어느 부엌에서 썩은 악취가 진동하는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공천이 곧 선거고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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