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최초 희생자는 '전북대생 이세종'…44년 만에 확인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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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활동을 종료한 5·18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 발표에 따라 80년 5월 당시 최초 희생자가 '전북대생 이세종'으로 공식 확인됐다.
11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5·18민주화운동 사망 사건' 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최초 희생자는 이세종 씨(당시 20세)다.
2021년 조사위의 조사 기간이 연장되면서 법이 제정돼 지역적 조사 범위가 '광주 일원'으로 확장됐고, 5·18민주화운동 최초 희생자는 이세종 씨가 공식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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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전국적 사건이었음을 보여주는 근거" 의의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최근 활동을 종료한 5·18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 발표에 따라 80년 5월 당시 최초 희생자가 '전북대생 이세종'으로 공식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 최초 희생자는 그동안 청각 장애인 제화공인 김경철 씨로 알려져 있었다.
11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5·18민주화운동 사망 사건' 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최초 희생자는 이세종 씨(당시 20세)다.
전북대학교 농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 씨는 5월 18일 오전 1시 40~50분경 사망했다.
17일 전북대 제1학생회관에서 ‘비상계엄 철폐 및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중 18일 0시부터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계엄군이 교내로 진입하자 학생회관 옥상으로 달아났다.
그 뒤 18일 오전 6시쯤 학생회관 옆에서 온몸이 피투성이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이 씨의 사인을 '단순 추락사'로 봤다.
5·18 항쟁이 끝난 뒤 계엄사령부는 5월 31일 주요 일간지를 통해서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 사망자 현황을 처음 발표했다.
다만 이 명단에는 사망자가 대부분 광주로만 한정돼 있고, 그마저도 오류가 많다. 사망자 명단이 당시 검시 대상자만을 대상으로 해 이 씨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최초 희생자로 알려진 인물은 김경철 씨다.
청각 장애인 제화공이었던 김 씨는 당시 23세로 5월 19일 오전 11시쯤 광주 금남로 제일은행 인근에서 계엄군에게 폭행당한 뒤 당일 사망했다.
당시 그는 동료와 함께 시위 현장을 구경 나갔다가 진압하던 제11공수여단 소속 계엄군에게 붙잡혀 진압봉과 군홧발로 뒷머리를 포함해 온몸을 구타당했다.
연행 피해자들과 함께 군용트럭에 실려 광주경찰청 유치장으로 이송됐으며, 뇌출혈 상태로 방치됐다가 결국 사망했다.
최초 희생자로 알려진 김 씨가 장애를 겪고 있었던 데다가 시내 한복판에서 폭행당한 뒤 사망했다는 사연도 알려졌다.
이후 이세종 씨의 시체를 검안했던 이동근 전북대병원 교수가 "두개골 골절과 간장 파열은 추락이라는 한 가지 원인에 의해 동시에 발생할 수 없다"며 계엄군의 집단폭행 사실을 밝혀내면서 5·18희생자로 인정받게 됐다.
2019년 12월 27일 출범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 범위는 '광주'로 한정돼 있었다.
이 씨의 사망 장소는 '전북 전주'이기 때문에 이 때도 이세종 씨에 대한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2021년 조사위의 조사 기간이 연장되면서 법이 제정돼 지역적 조사 범위가 '광주 일원'으로 확장됐고, 5·18민주화운동 최초 희생자는 이세종 씨가 공식 확인됐다.
기존에 알려졌던 김 씨는 광주 지역 첫 희생자로 남게 됐다.
5·18 조사위는 이세종 씨를 최초 희생자로 규명한 것이 큰 의미를 담고 있다고 판단했다.
허연식 조사2과장은 "5·18민주화운동이 광주에서만의 사건이 아니라 광주와 전남·북, 나아가 전국의 사건이었음을 보여주는 예시"라면서 "당시 전국에서 예비검속이라던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연계돼 숱한 인권침해 사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5·18이 단지 광주에서만의 상황이 아닌, 당시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전국 일원에서 행각을 벌였다는 주장을 판단·증빙할 수 있는 근거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항쟁 기간인 1980년 5월 18~27일 광주와 인근 지역의 5·18 관련 사망한 민간인은 166명이다.
이밖에 사망이 확실하지만 신원 확인을 못 한 행방불명자가 78명, 부상이 직·간접적인 원인이 돼 결국 사망한 케이스가 113명이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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