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發 글로벌 증시 ‘사상 최고치 경신’ 랠리] 美·日·臺 AI 반도체 동맹, 증시도 동조화… 주주 친화 정책 닮은꼴
“구마모토 TSMC 공장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르네상스(부흥)를 시작하는 지점이 될 것으로 믿는다.”
2월 24일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菊陽町)에서 가동을 시작한 TSMC 공장 개소식에 참석한 모리스 창(張忠謀·93) 대만 TSMC 창업자는 중국어로 “일본과 세계의 반도체 공급망을 더욱 강인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TSMC가 86억달러(약 11조5000억원)를 투자한 구마모토 제1 공장은 일본·대만 반도체 동맹의 상징이다. TSMC가 일본 기업인 소니·덴소 등과 함께 설립한 일본 현지 법인 JASM이 운영하는 이 공장에는 4760억엔(약 4조3000억원)가량 일본 정부의 보조금이 투입된다. JASM은 연말 제1 공장에서 12~28n나노) 반도체 칩 양산을 시작하며 비슷한 시점에 6n 칩을 양산할 제2 공장을 착공할 예정이다.
이날 개소식에서 TSMC는 제2 공장 건설에 139억달러(약 18조5000억원)를 투자한다고도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제2 공장에 최대 7320억엔(약 6조5000억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한다는 발표로 화답했다. 총 225억달러가 투자되는 TSMC의 구마모토 반도체 공장 단지에는 총 1조2000억엔의 일본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는 셈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TSMC의 세계 전략에 일본이 중요 거점으로 명확하게 자리 잡은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이날 개소식에는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회장,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 등 일본 경제계 거물들이 총출동했다.
엔비디아 어닝 서프라이즈, 美·日·臺 증시 활황 ‘나비효과’
TSMC 구마모토 공장은 미국의 엔비디아발(發) 글로벌 증시 활황에 발맞춰 ‘사상 최고치 경신 랠리’를 만끽하고 있는 일본과 대만이 반도체 동맹을 통해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좋은 사례다.
2월 21일(이하 현지시각) 엔비디아의 2023년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인공지능(AI) 반도체 생태계의 주요 플레이어가 포진한 미국, 일본, 대만 증시가 사상 최고치 랠리를 누렸다. 2022년 4분기 대비 매출(206억2000만달러·29조5035억원)은 265%, 영업이익(136억1500만달러·18조1080억원)은 983% 폭증한 엔비디아의 경이로운 실적이 AI 반도체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기 때문이다.
특히 매출 대비 60%에 이르는 영업이익률은 엔비디아의 시장 장악력에 대한 찬사로 이어졌다. 당장 엔비디아 주가는 2월 22일 하루에만 16% 급등했고, 실적 발표 전 1조 6670억달러였던 시가총액은 2월 24일 장중 2조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엔비디아의 ‘어닝 서프라이즈’ 글로벌 주요 증시의 사상 최고치 경신이라는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엔비디아 주가 급등에 힘입어 2월 22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평균은 전날보다 456.87포인트(1.2%) 상승하며 3만9069로 거래를 마감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S&P500지수 역시 105.23포인트(2.1%) 오른 5087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로 거래를 마쳤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지수는 460포인트(3.0%) 상승한 1만6041로 거래를 마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2021년 11월 19일(1만6057)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일본 도쿄 증시의 닛케이평균도 2월 22일 전일 대비 2.2% 상승해 3만9098엔으로 거래를 마쳐 거품 경제 붕괴 직전인 1989년 12월 29일 기록한 종전 최고치(3만8915엔·종가 기준)를 갈아치웠다. ‘잃어버린 30년’을 지나 약 34년 만에 고점의 벽을 넘어섰다. 닛케이평균은 2월 27일까지 상승세를 유지하며 3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만 증시의 가권지수도 엔비디아 열풍으로 뜨겁게 달궈졌다. 2월 23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권지수는 2월 26일에도 전일 대비 58.86포인트(0.31%) 오른 1만8948.05에 장을 마치며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엔비디아와 협업 관계인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의 주가 급등세가 장기간 이어진 것이 증시 지수를 끌어올렸다.
AI 반도체 협업이 증시 동조화로 이어져
엔비디아에서 시작된 미국, 일본, 대만 증시의 사상 최고치 랠리 동조화 현상은 AI 반도체 생태계에서 3국의 밀접한 협력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챗GPT 등 생성 AI(Generative AI) 기술의 핵심인 AI 반도체 칩은 엔비디아가 80% 이상 시장점유율을 유지 중인 AI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쓰인다. 엔비디아가 설계·제작한 AI GPU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반도체 업체인 대만 TSMC가 위탁·생산하고, 이 과정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한 도쿄일렉트론 등 일본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확대 구상에 따라 해외 생산을 모색하고 있는 TSMC가주요 생산 기지로 일본을 선택한 것도 소부장 업체들과 협업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중심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우방국끼리 공급망 구축)의 가장 큰 수혜처는 일본 소부장 업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반도체 장비 기업 스크린홀딩스, 어드반테스트, 디스코, 도쿄일렉트론과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 스바루, 종합상사 미쓰비시상사 등을 ‘사무라이 7’으로 지칭하며 닛케이지수의 사상 최고치 경신 랠리를 이끄는 주역으로 주목하고 있다.
PLUS POINT
일본·대만, 기업 거버넌스 개혁으로 ‘증시 밸류업’…한국은 소외?일본의 닛케이지수와 대만의 가권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뜨겁게 달궈진 배경으로는 양국의 주주 가치 환원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 대만 정부가 주주 친화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것이 투자자의 호응을 이끌어 증시 ‘밸류업(Value up)’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일본과 대만 증시로 외국인 투자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것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주주 친화적 기업 지배구조를 유도하기 위한 일본 정부 정책은 2015년 도입된 ‘기업 거버넌스 코드’가 대표적이다. 기업 경영진에게 자본 비용을 의식하도록 만드는 기업 거버넌스 코드는 일본 기업의 ‘돈 버는 힘’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투자자 수익 개선이 목표인 지배구조 개혁은 계열사 상호 주식 보유 관행에 균열을 일으켰다. 기업이 계열사 주식 보유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공시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독립 사외이사 및 여성 이사 임명, 임원 수 증가 등에 대한 영문 공시 의무화 등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했다. 일본 정부는 2023년 3월부터는 ‘주가순자산비율(PBR) 개선’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주주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영 노력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자사주 매입, 배당 상향, 기업 경영 정보 공시 확대 등을 기업에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대만 가권지수가 최근 사상 최고치 경신 랠리를 달리고 있는 것도 정부의 적극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혁 노력이 꽃 피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감독위원회 내 기업지배구조센터를 두고 있는 대만 금융 당국은 이사회 기능 강화, 전자 투표 의무화, 해외 투자자 정보 제공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배구조 우수 상위 20% 기업으로 구성된 ‘대만기업지배구조 100지수’를 개발해 매년 구성 기업을 공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2월 26일 일본과 대만의 주주 친화 정책을 본뜬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가치 상승)’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기업 스스로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계획을 수립·이행·공시하도록 하고, 정부가 세제 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업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업 가치 우등생’ 으로 구성된 ‘코리아밸류업지수’와 이 지수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계획도 나왔다.
그러나 경제계 등이 기대한 상속·증여세, 금융소득종합과세 등 세제 개편이 발표되지 않아 ‘알맹이가 없다’는 평가가 나왔고, 시장에서는 실망 매물이 나와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0.77% 하락한 2647.08로 장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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