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로이어] ‘마진 콜 없는 반대매매’ 약관 무효 끌어낸 법무법인 린 | “투자자 대응할 시간 줬어야”…금융 투자 약관 최초 무효화 선례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증권시장이 흔들렸던 2020년 2월. 일본 오사카 거래소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225지수도 급락했다. 지수와 연동된 ‘닛케이225 옵션’에 투자한 상품에서도 손실이 났다. 국내 자산운용사 ‘위너스자산운용(이하 위너스)’은 약 500억원 규모의 닛케이255 옵션 투자 상품을 운용하면서 KB증권에 판매를 맡긴 상황이었다.
위너스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고 손실 규모 역시 감내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KB증권은 생각은 달랐다. 손실이 커질 것을 우려해 전량을 반대매매했다. 증권사는 상품에서 평가손실이 발생해 투자 위험이 너무 커질 경우, 거래를 담보할 수 있는 증거금을 추가로 납입하라고 요구하는 마진 콜을 해야 한다.
그런데 KB증권은 마진 콜 없이 반대매매를 했다. 금융투자협회의 약관에 관련 규정이 있어서다. ‘해외 파생상품시장거래 총괄계좌 설정 약관 제14조 제2항’에는 장중 시세의 급격한 변동으로 인해 고객의 평가 위탁 총액이 증거금(투자금)의 20%보다 낮은 경우 고객에게 증거금 추가 예탁을 요구하지 않고 필요한 수량만큼 미결제 약정을 반대매매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위너스는 하룻밤 사이 옵션 계약이 모두 청산되면서 투자 원금 전액은 물론 추가로 발생한 미수금 채무까지 약 8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KB증권은 이미 손실이 확정된투자금 외에 추가로 난 손실금 성격인 미수금을 위너스가 부담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위너스는 KB증권의 반대매매 자체가 위법하므로 오히려 손해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맞받았다.
양측은 금융투자협회 약관에 따른 ‘마진 콜 없는 반대매매가 유효한 것인지’를 두고 법적으로 다퉜다. 1심 재판부는 KB증권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에선 위너스가 승기를 잡았다.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확정되면 KB증권은 이번 판결로 140억원가량 미수금을 회수할 수 없고, 위너스는 투자 금액 중 30%가량을 받게 된다.
자기 책임 원칙이 중요한 금융 투자 관련 약관이 법원에서 무효 판단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판결로 약관에 대한 내부 검토에 착수한 증권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로(변호사시험 제2회) 변호사는 “KB증권의 반대매매가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위반한 위법행위라는 주장까지 모두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 투자 업자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해 투자자들이 서명하는 약관에 법률 검토가 이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심 “반대매매 실행은 KB증권 권한”…위너스, ‘판정패’
금융투자협회의 ‘해외 파생상품시장거래 총괄계좌 설정 약관 제14조 제2항’은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기점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과거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었지만 경제 위기를 겪은 증권사들은 가장 큰 위험인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진 콜 없는 반대매매’에 관한 규정을 마련했다.
1심에서는 이 사건의 반대매매가 요건을 갖췄는지, 약관에 위법성은 없는지 등이 주된 쟁점으로 다뤄졌다. 2023년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는 마진 콜 없는 반대매매가 약관을 충족한다며 KB증권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위너스 등에 미수금 지급 책임이 있고, KB증권은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며 “반대매매를 실행할지 판단하는것은 KB증권의 권한”이라고 판단했다.
1심에서 패소한 위너스는 기존 대리인에 추가로 법무법인 린을 새롭게 선임했다. 린은 임진석(사법연수원 제20기) 대표 변호사를 비롯해 부장판사 출신 권덕진(연수원 제27기) 변호사, 금융 분쟁 전문가인 이동재(연수원 제31기) 변호사와 김일로 변호사, 한국거래소에서 법무팀장 등을 지낸 자본시장 전문가 엄세용 전문위원, 해외 금융기관 출신 윤현상 미국 변호사 등을 투입했다.
린, “마진 콜 없는 반대매매, 증권사 이익 과도하게 보호” 주장
항소심에서 린은 마진 콜 없는 반대매매가 현행 자본시장법에 위반될 뿐 아니라 증권사가 수수료나 증거금, 마진 콜이 아닌 반대매매로 위험을 관리하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윤현상 미국 변호사는 “홍콩 등 해외 주요 금융시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엄세용 전문위원 역시 “자본시장법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면 법률이나 제도의 취지, 투자중개업 역사에도 어긋난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언급했다.
린은 해당 ‘제14조 제2항’이 투자중개업을 영위하는 증권사 이익을 과도하게 보호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투자자의 선택권과 이익을 침해하는 만큼 위법한 제도라는 것. 옵션 거래에서 위험도 평가나 운용 전략은 위너스 같은 투자자의 고유 영역이고, 증권사는 투자자 판단에 따라 매수나 매도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동재(연수원 제31기) 변호사는 “근거 법령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약관을 무효화시킨 대법원 판례를 모두 살펴봤다”고 운을 뗐다. 이 변호사는 “보험에서는 약관이 무효가 된사례가 있는데 증권이나 파생 거래에서는 유사 판례가 없었다”며 “사법부 입장에서도 정부 심사를 통과한 약관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확신을 가지지 않는 이상 부담스러운 일” 이라고 설명했다.
두 증인에게 같은 질문 던지는 ‘특수한’ 증인 신문도
재판부는 별도 기일을 잡고 위너스와 KB증권이 신청한 전문가 증인 두 명을 나란히 앉혀 두고 같은 질문에 동시에 답하는 특수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마진 콜 없는 반대매매를 다룬 약관이 무효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기본적인 용어부터 시작해 닛케이 옵션 특징, 투자중개업 역사나 본질, 해외 현황, 제도의 의미까지 살폈다. 린은 이 과정에서 리먼 브러더스 전 한국 대표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1년에 걸친 심리 끝에 항소심 재판부는 올해 1월 위너스 주장을 받아들였다. 서울고법사18부(부장판사 정준영, 민달기·김용민)는 “KB증권이 마진 콜을 함으로써 (투자자들이)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본시장법은 투자중개업자의 일임매매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를 규율하고 있다”며 “투자자 보호와 건전한 거래 질서 도모라는 자본시장법 관계 법령의 입법 목적을 고려하면 ‘제14조 제2항’은 자본시장법을 위반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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