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일괄 배상"…칼빼든 당국 홍콩 ELS 배상안에 금융권 '당혹'

김근욱 기자 2024. 3. 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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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ELS 분쟁조정기준안]은행 기본배상비율 20~40%…가산시 '절반' 가까운 배상
'모호한 기준'에 배상 장기화 우려도…은행권 공식입장은 '아직'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금융당국이 11일 발표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배상안에 대해 금융권은 적잖이 당황한 분위기다. 앞서 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에 따라 '일괄 배상'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은행권 기본배상비율로 20~40%가 책정되는 등 사실상 일괄 배상과 다를 바 없어서다. 판매사와 투자자가 다툴 여지가 큰 '모호한 기준' 탓에 배상이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오전 홍콩 ELS 관련 분쟁조정 기준안을 발표하면서 "기존 선례 대비 정교하고 세밀한 조정기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검사 결과를 반영해 '기본배상비율'을 적용하되 판매사의 내부통제 부실 정도, 투자자의 ELS 가입 경험 등을 고려해 차등을 둔 것이 핵심이다.

◇ 은행권 기본배상비율 20~40%…사실상 '일괄 배상'

투자자별 배상비율은 연령, 투자경험, 불완전판매 정도 등에 따라 '판매사 요인'(기본배상비율+공통가중=23~50%)에 '투자자별 가감 요인'(±45%p)을 더하고 빼는 방식으로 정해진다. 이외에 '기타 조정요인'(±10%p)가 반영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은행의 경우 모든 투자자에 대해 20~30%의 기본배상비율이 제시됐다. 사실상 판매분 전체를 적합성원칙 또는 설명의무 위반 등 불완전판매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부당권유 등 판매원칙 위반이 확인된 개별사례는 기본배상비율이 40%까지 올라간다.

또 불완전 판매를 유발하고 내부통제에 부실했던 책임을 고려해 은행은 10%포인트(p), 증권사는 5%p를 공통적으로 가중하기로 했다.

이에 더해 투자자별로 △예·적금 가입 목적의 고객이 판매사에서 ELS를 추천받은 경우(10%p) △65세이상 고령자, 은퇴자, 주부 등 금융취약계층(5~15%p) △ELS 최초 투자자 (5%p) △판매사의 자료가 부실한 경우(5~10%p) 등 최대 45%p를 더해 배상받을 수 있다.

다만 △ELS 투자 경험이 20회 이상인 경우 (2~25%p) △ELS 가입 금액이 5000만원 이상이거나 과거 수익을 벌어들인 경우 (5~15%p) △금융회사 임직원 등 이해능력이 높은 경우 (5~10%p) 등 최대 45%p를 차감할 수도 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손실 '절반' 가까이 배상?…은행권 "ELS 상품 문제 없는데"

배상기준을 받아 든 은행권은 당황스러운 분위기다. 예상과 달리 배상강도가 강해서다. 한 은행권 종사자는 "과거 라임 펀드와 달리 ELS는 상품 자체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일괄 배상은 안 된다는 금융권의 공통된 목소리가 있었다"면서 "그런데도 대부분의 투자자가 손실액의 40~50%는 보상받을 수 있게 판을 짜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의 경우 기본배상비율 20~40%p에 공통가중 10%p가 산정된 후 한두 가지 가점 요인만 있어도 손실액의 50%는 배상해야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배상을 차감할 수 있는 요인은 애초에 기준이 높게 설정돼 있어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배상안이 은행의 건전성을 위협할 만한 수준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금감원에 따르면 홍콩 ELS 사태와 관련 전 금융권의 예상 손실액은 약 5조8000억원 규모다. 배상비율 50% 산정 시 금융권이 3조원 가까이 배상해야 하며, 금융사 별로 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조단위의 배상 사례도 나올 수 있다.

◇ "모호한 기준, 분쟁 장기화"…은행권 공식 입장은 아직

이번 배상안이 오히려 판매사와 투자자 사이의 분쟁을 장기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가 이 배상안을 보고 본인이 몇 %를 배상받을 수 있을지 계산이 안 된다는 것이 문제"라며 "은행에 다니는 제가 봐도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배상안을 놓고도 판매사와 투자자가 주장하는 배상 비율이 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다수 나왔다. '예·적금 가입 목적'으로 은행에 방문했다면 10%p를 추가 배상해야 하는 등 기준이 다소 모호하기 때문이다. 한 은행권 종사자는 "투자자가 예·적금 가입 목적으로 방문했다고 주장하는 경우 어디까지 인정해 줘야 하는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다만 은행권의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은행 건전성과 직결되는 민감한 문제인 만큼 선뜻 입장을 밝히기 어려워하는 분위기다.

한편 이날 오후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의 기자간담회가 예정돼 있으며, 오는 18일엔 은행연합회 이사회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간담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배상안 관련 은행권의 입장 표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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