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밸류업 자문단’에 대한 우려 [더 나은 경제, SDGs]

김수연 2024. 3. 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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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 자문단 출범식 및 킥오프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 한국거래소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2일 현직 대통령 최초로 한국거래소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 자본시장 규제 혁파를 언급하며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강조했다. 불과 2주 후인 17일 거래소를 다시 찾은 윤 대통령은 “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해 국민과 기업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을 강조했다.

이뿐 아니라 지난달 4일 KBS와 진행한 신년 대담에서도 “외국 자본가들도 국내 투자를 할 수 있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여나가야 한다”며 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 해결에 큰 의지를 보였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30일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 개선 간담회를 개최해 일본식 성공 모델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예고했다.

몇번의 유관기관 회의를 거쳐 지난달 26일 거래소에서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이 발표됐고, 정부는 당시 1차 세미나에 이어 오는 5월 2차 세미나를 통해 시장 의견을 수렴한 뒤 6월까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지원 방안으로는 ‘오는 7월부터 코스피·코스닥 상장기업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스스로 수립하고, 1년에 한 차례 거래소를 통해 자율 공시해야 한다’는 게 중심이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는 ‘기업 이익의 주주환원을 유도하기 위한 세정 지원 방안’,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가 벤치마크 지수로 활용할 수 있는, 기업가치 우수 기업 중심의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등을 약속했다.

또 상장사들이 이사회 중심으로 각 기업 특성에 맞게 중·장기적 관점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자율적으로 수립·공시·이행할 수 있도록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을 6월까지 마련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러한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구체화하기 위해 자문단이 지난 7일 출범했다. 그런데 정부의 1차 세미나부터 밸류업 자문단 출범, 거래소 내 밸류업 전담 부서 설립에 이르기까지 당초 의도와 뭔가 다른 움직임이 보인다.

먼저 기업의 자발적 가치 제고를 이끌기 위한 핵심 내용이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에서 빠졌다. ‘자사주 소각 시 법인세 혜택’, ‘배당소득세율 및 상속세율 인하’ 등 기업이 실질적으로 관심 있어 하는 실질적인 세제 혜택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사전심사 우대 △법인세 공제·감면 컨설팅 우대 △부가·법인세 경정청구 우대 등 혜택이 모호한 대책만 나열됐다.

개인 투자자와 소액 주주의 가치 제고를 위한 내용이 거의 언급되지 않은 점도 눈에 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에 방점을 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증시의 근간을 차지하는 개인 투자자 관련 언급이 거의 없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윤 대통령은 주식 투자가 국민의 자산 형성에 가지는 의미를 강조했었다.

이러한 문제는 밸류업 자문단 구성에서도 드러났다. 유명 인플루언서 한 명이 ‘특별 초청’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했을 뿐 개인 투자자의 의견을 적극 내놓을 인물은 자문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 내용도 부실했다는 평이다. 투자와 자금 유입이 필요한 기업 입장에서는 해당 지수를 벤치마크로 하는 기관 투자자들의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는데, 정작 정부는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이익비율(PER), 자기자본이익률(ROE), 배당성향, 배당수익률, 현금 흐름 등 거의 모든 주요 투자 지표를 참고하겠다는 입장이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의 차별성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만들어진 상장지수펀드(ETF)에 속해 수혜를 입을 종목 제시로 바빠질 증권사들만 이익을 볼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다.

벌써부터 한 증권사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된 ‘저PBR & 저평가주’ 관련 프리셋(Pre-set·투자 테마 등에 따라 사전 구성된 예시 포트폴리오)을 앞세워 랠리에 나섰다.

기업 밸류업 자문단이 애초 기대에 맞게 구성됐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 당초 윤 대통령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 혁파’를 가장 강조했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전 세계가 기업들에 과도한 규제로 적용될 우려가 있다면서 ESG(환경·사회적 책무·지배구조 개선) 추진의 속도 조절에 나서는 이때 이번 자문단엔 한국ESG기준원 관계자가 들어가 있다. 연·기금 대표로 나선 국민연금공단에서도 그동안 각종 토론회에서 ‘ESG 기준 확장’을 주장했던 담당자가 자문단 위원으로 참여한다. 형평성을 고려하면 개미 투자자 대표들도 대거 포함됐어야 하는데, 참으로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제도 개혁에 대한 의미가 혹시 잘못 해석된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모처럼 1440만명의 개인 투자자들이 기대를 가지고 있는 이때 자칫 ‘규제 자문단’이 운영될까 봐 조금 걱정이 앞선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 협력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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