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6兆 손실 홍콩 ELS 조직적 불완전판매 확인… 분쟁조정기준 마련

김유진 기자 2024. 3. 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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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서 영업목표 상향·KPI 설계로 홍콩 ELS 판매 독려
부적합 투자자도 가입할 수 있도록 판매 시스템 설계
영업점에서 상품 대리 가입도 적발
금감원, 배상기준안 마련해 판매사 자율배상 유도
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홍콩 ELS 사태' 관련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금융감독원이 6조원에 가까운 손실이 예상되는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 대한 금융권의 조직적 불완전판매 정황을 확인했다. 홍콩 ELS 판매사인 은행·증권사가 본사 차원에서 고위험상품을 판매하도록 독려하면서 영업점에서 무리하게 홍콩 ELS 가입을 늘린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손실이 확정된 가입자부터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라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판매사의 자율 배상(사적화해)을 유도할 방침이다. 가입자들은 판매사·투자자 책임 정도에 따라 차등 배상을 받게 된다.

금감원은 11일 홍콩 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 발생과 관련해 주요 판매사에 대한 현장검사 및 민원조사를 실시한 결과, 판매정책·소비자보호 관리실태 부실과 판매 시스템 및 개별 판매과정에서의 다양한 불완전판매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검사는 지난 1월 8일부터 3월 8일까지 KB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 등 은행 5곳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신한 등 증권사 6곳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ELS는 개별 주식·지수가 일정 구간 안에 머무르면 일정 수익을 지급하는 파생상품이다.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홍콩 ELS는 2021년 2월 1만2100포인트대까지 오른 뒤 지난달 말 5678포인트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홍콩 ELS 판매 잔액은 18조8000억원(39만6000계좌)으로 올해에만 15조1000억원의 만기가 도래한다. 지난달까지 확정된 손실금액은 1조2000억원이다. H지수가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면, 올해 손실금액은 5조8000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금감원은 판매사가 금융소비자 보호 대신 공격적인 실적 경쟁을 벌이며 무리하게 ELS 판매를 유도한 것으로 파악했다. 판매사들은 H지수의 변동성이 확대돼 손실 위험이 커진 시기에 오히려 영업목표를 상향하고, 영업점에서 ELS 판매를 확대하도록 성과평가지표(KPI)를 설계해 전사적으로 홍콩 ELS 판매를 독려했다.

일부 판매사는 홍콩 ELS 상품의 판매 한도를 상향하도록 리스크 관리 기준까지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A은행에서는 고객별 한도관리 기준을 ELS 회차별로 적용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우회해 투자자들이 위험에 크게 노출된 사례가 나왔다. 이 은행에서는 3억원 이상, 2건 이상의 홍콩 ELS 상품에 중복 가입한 개인 투자자 수가 1620명에 달했다. 또한, 판매사들은 상품 선정 등을 심의하는 비예금상품위원회를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모니터링 등 사후관리도 미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등의 위반을 초래한 판매 시스템 차원의 불완전판매를 적발했다. 판매사들은 위험상품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고객에게 상품판매가 가능하도록 상품판매 기준을 임의조정하거나 투자자 성향 분석 시 필수 확인 항목을 누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손실감내수준 20% 미만’, ’단기투자희망’ 등 고난도 장기위험상품에 부적합한 투자자에게 홍콩 ELS 판매가 가능하도록 판매 시스템을 설계한 경우도 발견됐다. ELS 상품 판매 시 설명해야 하는 손실위험 시나리오, 투자위험등급 유의사항 등을 누락하거나 왜곡한 정황도 확인됐다.

이번 검사에서 영업점 단위 불완전 판매도 드러났다. 안정적 성향의 투자자에게 투자성향을 상향하도록 유도하거나, 청력이 약한 고령투자자에게 상품내용을 ‘이해했다’라고 답하도록 요청하는 사례가 적발됐다. 영업점 방문이 어려운 투자자를 대신해 투자성향진단설문지, 상품가입신청서 등을 대리 작성·서명하는 경우도 다수 발견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판매정책과 판매시스템이 고객 최우선 원칙이 아닌 판매사의 이익을 우선하도록 설계·운영됨에 따라 영업점의 개별 판매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불완전판매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에 따라 판매사와 투자자 간 분쟁이 최대한 조기에 해결될 수 있도록 분쟁조정기준(안)을 마련했다. 배상 비율은 ▲판매사 요인(23~50%) ▲투자자 요인(±45%포인트) ▲기타 조정요인(±10%포인트)으로 구성된다.

그래픽=정서희

개별 배상 비율은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 요인을 종합 고려해서 결정된다. 판매자 요인의 경우, 은행·증권사의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등 판매원칙 위반 여부와 판매정책·소비자보호 관리체계 부실 여하에 따라 배상 비율이 달라진다. 투자자 요인에는 판매사의 고령자 등 금융취약계층 보호 소홀, 투자자의 과거 ELS 투자경험 및 금융상품 이해도 등이 영향을 미친다. 판매사·투자자 요인에 해당하지 않는 부분은 기타 조정요인으로 포함된다.

금감원은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라 대표사례에 대한 분조위를 개최하는 등 분쟁조정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다. 각 판매사는 이 기준에 따라 자율적으로 배상을 시작한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 확인된 위법·부당행위에 대해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엄중 조치할 예정이다. 다만, 판매사의 고객피해 배상, 검사 지적사항 시정 등 사후 수습 노력을 참작할 방침이다. 아울러 금감원은 금융위와 함께 검사 결과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ELS 등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를 종합적으로 진단해 제도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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