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앞둔 고려아연…두 가문의 ‘동상이몽’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정부가 기업 주주가지 제고를 위한 벨류업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오는 3월19일 열리는 고려아연의 주총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주주간 적정 배당을 놓고 치열한 난타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 싸움의 결과가 기업은 물론 많은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지붕 두가족 장병희(장씨)·최기호(최씨) 두 가문의 동업으로 시작된 영풍그룹은 현재 장 씨 가문은 영풍 석포제련소와 전자 계열사를, 최 씨 가문은 고려아연과 기타 비철금속 계열사를 독립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날 배당 등 회사 측의 의견을 놓고 표대결이 벌어진다면 이는 75년만의 첫 난타전이 된다. 지금이야 ‘적과의 불편한 동침’으로 치부되지만 과거엔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아왔다. 1949년 두 창업주가 영풍기업사를 세웠다. 이어 석포제련소를 운영하는 장 씨 가문, 온산제련소(고려아연)의 최 씨 가문으로 자연스레 동업이 이뤄졌다. 상대 일가의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는 건전한 동맹이었던 것.
여기엔 서로의 가문 사업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철저한 ‘독립경영 철학’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 그룹 내에서 고려아연의 실적만 굳건하자 두 가문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와 상처가 나기 시작한다. 영풍(영풍)은 장 씨 가문의 상장사다. 영풍의 영업이익은 2020년 467억원 흑자에서 2021년 268억원 적자로 곤두박질친다. 2022년 689억원의 이익을 냈지만 이익 등락폭이 컸다.
반면 고려아연의 이익은 2020년 8974억원에서 2021년 1조961억원으로 늘어났다. 영광스런 ‘1조클럽’에 가입한 2021년은 최 씨 3세인 최윤범 회장 체제. 최 회장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한다’며 신재생에너지, 2차전지 소재, 리사이클링(자원순환) 사업 등 3대 트로이카 신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다. 신사업은 대규모 투자를 뜻하고, 이는 순이익 감소로 배당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장 씨 측이 발끈하게 된다.
내달 열리는 고려아연 주총이 두 가문의 전쟁터가 되겠지만 이미 3년전 부터 두 가문 사이엔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했다. 서로의 회사 지분을 공유하던 공동 경영 체제에서 이처럼 사이가 나빠진 것은 알짜 회사(고려아연) 지분 매집으로 이어지게 된다. 2021년 당시에도 고려아연 지분은 실제 경영하는 최 씨 측 보다 장씨 측이 더 많았다. 고려아연의 신사업 추진에 대해 두 집안의 의견이 대립되면서 양 측은 곧 다가올 전쟁을 위해 ‘동맹군’(우호세력)과 지분 매집에 힘을 쏟게 된다.
장 씨 일가는 영풍(25.15%), 장형진 고문 등 특수관계인(6.95%), 에이치씨 등 영풍그룹 계열사를 포함해 32% 수준이다. 두 가문의 지분율 차이가 거의 없어 제3 세력이 주총 대결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보인다. 제3세력으로는 8.5%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과 17.8%를 갖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다. 이런 구도에서 장 씨 가문은 최 씨 측의 배당 정책을 문제 삼았고, 이것이 3월19일 표 대결로 판가름 날 것이다.
이날 주총에 상정된 최 씨 측의 배당결의안은 2023년도 결산 배당으로 주당 5000원을 주겠다는 것. 앞서 주당 1만원을 중간배당으로 결정했으니 연간 기준 1만5000원이다. 이는 2021년과 2022년 연간 배당금 2만원 보다 줄어든 수치다. 이에 장 씨 일가는 “주당 2만원을 보장하라”며 최 씨 가문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장 씨 가문(영풍)은 입장문을 통해 고려아연이 충분한 배당여력이 있다며 압박 중이다.
고려아연은 2023년 주당 1만5000원의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을 통해 주주환원율이 76%라고 밝혔다. 이는 2022년(50.9%) 보다 크게 높아진 지표다. 주주환원 총액도 2023년 4027억원으로, 2022년(3973억원) 보다 오히려 상승했다. 영풍 측이 제안한 주당 2만원에 기존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주주환원율 추정치는 96%에 달한다. 순익 거의 대부분을 배당 등 주주에게 돌려주라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고려아연은 “본인(영풍)이나 똑바로 하라”고 일침을 날렸다. 고려아연은 영풍의 주주환원을 조사해보니 5년 평균 10%에 그친다고 강조했다. 연평균 배당금 역시 172억원에 불과해 고려아연과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것. 이를 인용해 일부 영풍 주주들은 주식 게시판 등에 “영풍의 요구는 적반하장”이라며 성토하고 있다. 영풍이 주주에게 돌려주는 돈이 상대적으로 작다보니 여론이 나쁜 것이다.
고려아연 측과 영풍이 완전히 돌아선 계기는 최근 ‘명함 사태’도 한몫했다. 주총을 앞두고 일반 주주들을 서로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와중에 영풍이 명함을 제작했는데 엉뚱하게도 ‘고려아연’ 글씨를 크게 박고, 정작 영풍은 상대적으로 작게 새긴 것.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는게 고려아연의 설명이다. 일부 주주들은 고려아연에 자신의 주총 투표 권리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영풍으로 넘어간 셈이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 주총이니까 고려아연 회사 이름이 크게 들어간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작 영풍 주주들은 각종 주식게시판에 영풍 행태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쏟아내고 있다. 여기엔 최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으로 저평가 주식이 날아갈 때 영풍은 철저히 소외를 받은 것도 적지않게 작용하고 있다. 이런 비판 글의 핵심은 영풍 측이 자신의 주주 보다는 고려아연 지분율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 장 고문은 계열사 씨케이, 에이치씨, 시네틱스, 영풍전자 등을 통해 2023년 한해에만 1950억원의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했다. 작년 고려아연으로 부터 받은 배당금은 1500억원에 달한다. 결국 장 씨 가문은 최 씨 가문이 경영하는 고려아연으로 부터 배당금을 받아 이를 다시 고려아연 지분을 사는데 써서 다시 향후에 배당으로 돈을 불리는 형국이다. ‘땅짚고 헤엄치기’는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 셈이다.
이는 영풍의 실적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21년 영풍의 영업이익은 적자였지만 순익은 1701억원에 달했다. 2022년에는 영업이익 689억원, 순익 4156억원이라는 기형적 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그 회사의 실력을 뜻하지만 순이익은 영업이익에 자회사 배당 등 일시적 수익이 잡힌다. 이러한 과도한 순익이 잡혀도 영풍은 그동안 소액주주에게 10%만 돌려주고 나머지는 고려아연 지분을 사는데 집중한 것이다.
문제는 주총 대결이 이런 사정까지 감안해주는 ‘인기 투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핵심은 고려아연 배당을 유지하느냐, 마느냐다. 캐스팅보트(8.5%)를 쥔 국민연금에게 모든 게 달렸다. 단기 배당만 놓고 보면 국민연금도 고려아연이 배당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때 기업 가치가 훼손될 정도로 대주주에게 유리한 배당은 결국 투자 부진과 미래 실적 하락을 낳는다.
배당과 투자 모두 순익에서 나온다. 순익을 어디에 쓸 지는 지금까지 경영해온 최 씨 가문이 해왔고 국민연금 역시 이를 지지해 지분율을 늘렸을 것이다. 고려아연의 성장성이 좋고 투자해도 괜찮다는 판단에서다. 과도한 주주환원은 일반 주주에게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주총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3월19일의 결정은 국민연금이 지분을 갖고 있는 다른 상장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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