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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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삼스레 신촌의 몰락을 다루는 기사가 많이 보인다. 조선일보는 2월 4일자에 ‘“대학생들이 오지 않아요” 신촌 상권은 왜 붕괴했나’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KBS도 2월 14일에 ‘‘1호점’도 못 버텼다 대학가 ‘젊음의 거리’는 옛말’이라는 기사로 신촌 인근 상권 취재를 진행했다.
상권 노후화와 대학생 이탈. 두 기사가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신촌의 문제점이다. KBS는 ‘홍대 등 신흥 상권이 커지는 동안 (신촌은) 경쟁력 있는 즐길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사람들이) 줄줄이 신촌을 떠났’다고 언급하며 ‘(차량통행이 금지되는) 대중교통전용지역에서 해제해 유동인구를 늘리자’는 상인의 주장을 인용했다. 조선일보는 상권 노후화로 인한 대학생 이탈과 연세대 송도캠퍼스 이전 등 ‘대학 없는 대학생 상권’이라는 분석을 제시했다.
이 원고는 신촌 권역 하락세의 이유가 그게 아니라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상권의 즐길거리는 그 동네에 있는 상인이나 창작자 등 플레이어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중요하지만 도시나 동네의 구조와 골격을 바꿀 만큼은 아니다. 대학생 역시 플레이어가 만들어둔 콘텐츠에 잠깐 몰리는 도시 산책자 중 하나일 뿐이다. 신촌은 고려대나 동국대 앞처럼 대학 하나가 좌지우지하는 규모의 유흥가가 아니다. 주변 대학 학생과 관계자를 모두 합쳐도 신촌 같은 대형 시가지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신촌 주변의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홍익대, 명지대, 추계예대 등 전 대학생이 ‘신촌에서 밥 사먹기 운동’을 해도 신촌의 지금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촌 쇠망사라는 걸 적어야 한다면 그 이유와 흐름은 앞선 요소보다 더 크고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그 요소는 정책이다. 한국의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상권, 고객층, 유행을 뛰어넘는 정책 자체이며, 신촌은 정책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선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신촌이 이렇게 쪼그라든 데에는 민간의 개별 주체가 손댈 수 없는 면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 신촌의 역사를 잠깐 살필 필요가 있다.
신촌은 이름부터 새로운 동네다. 수백 년 전부터 대형 번화가는 아니었다. 서울역사아카이브의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신촌편에 따르면 조선시대 신촌은 한양 사대문 밖 성저십리 구역의 조용한 동네였다. 조선왕조의 이궁 연희궁과 궁의 옷감을 만드는 잠실(서쪽에 있어서 서잠실)이 있었다. 1918년 연희궁 자리에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캠퍼스가 조성되고 1920년 경의선 신촌역이 만들어지면서 신촌이라는 동네가 커지기 시작했다. 1935년 이화여전(현 이화여자대학교)이 이전하고, 해방 이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서울 역사가 600년이니 이 정도라도 새로운 셈이다.
신촌은 새롭다는 이름처럼 첨단화했다. 지금 연세대학교 앞길인 성산대로가 1976년 7월에 개통되었고, 1984년 2호선이 개통된 이후 신촌은 서울 최대 번화가 중 하나로 부상했다. 1983년 7월에는 서울 최초의 도시설계구역으로 확정되어 건축가 김수근이 신촌 도시설계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신촌로의 폭이 40m로 확장되었고, 신촌시장이 철거됐으며, 그 자리에 그랜드백화점(현 이마트 신촌점)이 들어섰다. 신촌역에서 이대역까지 이르는 신촌로에는 10층 규모의 대형 건물이 나란히 늘어섰다. 그때 도시설계구역으로 확정된 다른 곳은 테헤란로와 마포지구 등인데, 지금 생각하면 얼추 이미지가 비슷하다. 그 이후 신촌은 IMF 직전인 1996년 한때 전국 지하철역 이용자 수 3위(1위 잠실, 2위 강남)에 오를 정도의 대형 시가지가 되었다.
이 일련의 역사를 통해 신촌이 자연발생적으로 자라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부터 신촌이 교통 요충지였던 건 맞다. 신촌로터리에서 양화대교로 이어지는 길은 신촌에서 양화진(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강화로 이어지는 교통 요지의 루트와 거의 비슷하다. 반면 지금의 대형 신촌을 만든 건 철도, 지하철, 도시계획, 대학 등의 교통정책과 도시전략이다. 오히려 자연발생적 요소들은 인공적 정책에 의해 점차 삭제되었다. 신촌시장은 도시설계 과정에서 헐리고 백화점이 되었다. 강화도 가는 길의 상징성은 신촌과 강화도를 잇는 강화운수가 오가는 신촌시외버스터미널에 남아 있었다. 그 터미널도 철거되었다.
정책으로 큰 곳은 정책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정책의 축이 바뀌면 신촌을 찾는 사람의 양도 바뀔 수밖에 없다. 그게 신촌에 일어난 일들이다. 신촌이 서울 최대 수준의 시가지가 되는 동안 신촌에서 한강으로 가는 서대문구 남단 마포구에서 신촌의 운명을 바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간 순서대로 보면 2000년, 2010년, 2015년이다. 2000년의 6호선 개통. 2010년 공항철도 개통. 그리고 2015년 경의선숲길 연남구간 개방.
2000년 개통된 6호선과 2010년 개통된 공항철도는 서울 서부 권역의 교통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흐름을 만들어냈다. 서울 서북 권역의 합정역이 서울 동서 권역을 잇는 6호선과 연결되며 범서부 권역의 교통 허브가 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 합정역은 신촌역보다 강변북로와 더 가깝다. 서울 도시교통에서 강변북로는 자유로와 이어지며 경기도와 서울을 이어주는 대동맥 역할을 한다. 일산-파주와 서울을 이어주는 관문이 신촌에서 합정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공항철도 역시 신촌과 홍대의 운명을 갈랐다. 공항철도역은 위치상 신촌역과 홍대입구역 사이에 있지만 연결통로를 통해 홍대입구역이 되었으니까.
이 사례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서울교통공사는 1994년부터 지하철역 일 이용객 수를 공개한다. 이 수치를 그래프에 올려보면 공항철도 개통 이후인 2010년부터 신촌역과 홍대입구역의 일평균 이용객 수가 역전되기 시작한다. 신촌역과 홍대입구역의 일평균 이용객 수는 2010년 역전된 이후 격차가 점점 커지고,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신촌역의 일 이용객 수는 합정역보다 떨어진다. 2000년대까지는 신촌역-이대역으로 이어지던 거대 상권 벨트가 지금은 상수-합정-망원-홍대의 거대 상권 벨트가 된 셈이다.
신촌 영역과 홍대 영역, 크게 보면 서대문구와 마포구의 명운을 가르는 마지막 결정적 변수는 2015년 개장한 경의선숲길 연남구간이다. 이때부터 동교동삼거리 후방 연남동 지역의 미로 같은 다세대주택단지가 테마파크 같은 소규모 유흥가가 되기 시작했고, ‘연트럴파크’라는 별명도 그때 붙었다. 경의선숲길이 개장된 이후 연남동 끝이나 서강대 등 전에는 젊은이 느낌 유흥가의 면모가 전혀 없던 곳들의 도보 접근성도 좋아졌다. 크게 보면 국가의 기간망인 철도운송 기능을 희생시키고 특정 지역의 녹화와 땅값을 올린 거라 볼 수도 있다. 연구자 전현우는 <거대도시 서울 철도>에서 ‘전국망 객차 열차의 운행 거점인 수색역을 용산역과 직접 연계하기는 어렵게 되어, 도심 그리고 수도권의 여러 거점과 이 망 사이의 연계는 유기성이 약화되기도 했다’고 정리했다.
신촌 쪽에서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자꾸 안 좋게 흐르고 있었다. 유동인구가 줄어든다면 점포 면적당 매출도 줄어들 텐데, 이제 신촌은 임대료를 쉽게 내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건물주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신촌을 실제로 걸어보면 알 수 있다. 김수근의 유산인 도시설계 때문에 신촌에는 10층 이상의 대형 건물이 많다. 이면도로의 건물들도 사람이 많이 오던 시절의 산물이라 대부분 단위 면적 자체가 크다. 연남동이나 망원 권역의 다세대주택은 간단한 용도변경을 통해 소규모 근린생활시설이 될 수 있었지만, 신촌 에뛰드하우스가 자리를 비우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건 그만큼 큰 가게뿐이다. 코로나19 기간 명동에 사람이 없다고 소규모 가게가 들어갈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실제로 명동은 코로나19 기간 싼 값에 새로운 입주자를 유치하는 대신 비현실적으로 유동인구가 적은 시간을 견뎠다.
“가수 UV는 ‘이태원 프리덤’에서 ‘신촌은 뭔가 부족해’라고 노래했다. 신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가사에 감정적으로 반발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노랫말은 실로 예술인의 직관이었다. 신촌에는 도시철도가 부족했다.”
서울의 인구 감소 추세도 좋은 일이 아니다. 서울의 인구는 꾸준히 줄어들어서 현재 900만 명대다. 정부는 서울 인구가 800만 명대까지 떨어질 거라고 예상한다. 반면 경기도 인구와 서울에서 일하는 종사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의미라 볼 수 있을 텐데, 신촌에는 기업이 없다. 신촌 상권을 유지하는 한 축이었던 학생 인구의 절대수가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대학교 1~2학년 기간에 신촌을 떠나 있는 연세대학교 송도캠퍼스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다. 서울의 총 학생수가 줄어들고 있다.신촌로터리에서 동교동삼거리로 내려가는 마포구는 20년 동안 상황이 정반대였다. 대규모 재개발로 사무 건물과 고가 아파트가 생겼다. 대기업도 들어오고 임영웅도 사는 합정 메세나폴리스가 대표적인 경우다. YG엔터테인먼트는 상수동 한켠에서 시작해 마포구에 대기업 수준의 사옥을 차렸다. 제주항공을 가진 중견기업 애경도 본사 사옥이 공항철도 홍대입구역 바로 앞에 있다. 구매력을 담보하는 대형 아파트가 생기고 거기에 기업 사무실까지 들어오니 인구 이동이 보장된다. 여기에 특별한 브랜딩이나 마법 같은 전략은 없다. 다니기 좋아지면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기본 명제가 성립할 뿐이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서울시 구별 도시철도 서비스 이용가능 지역 비율’이다. 시가화 면적과 10분 내 도시철도 이용 비율을 나누어서 ‘도시철도를 이용하기 쉬운 정도’를 수치로 표현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신촌이 속한 서대문구는 서울시 25개구 중 도시철도 서비스 소외구역에 속한다. 서대문구의 도시철도 이용률은 34%, 바로 옆 마포구는 72%니까 반도 안 된다. 시내권과 더 멀리 떨어진 서대문구 이웃 은평구의 49%보다도 낮다. 2011년 가수 UV는 ‘이태원 프리덤’에서 ‘신촌은 뭔가 부족해’라고 노래했다. 신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가사에 감정적으로 반발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노랫말은 실로 예술인의 직관이었다. 신촌에는 도시철도가 부족했다.
도시철도는 국가 단위 혹은 서울시 단위의 계획이다. 내가 신촌 권역 축소가 단편적이고 확실한 누군가의 탓이 아니라 생각한 이유다. 신촌이 속한 서대문구가 이 모든 세상의 흐름을 바꾸거나 흐름 속에서 버틸 수 있다고도 볼 수 없다. 건물주 몇 명이 임대료를 내리거나 ‘로컬의 신’이 와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다만 서대문구 단위의 실책도 있다. 내가 꼽는 실책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길을 막은 것, 하나는 동네를 방치한 것이다.
서대문구는 2014년 1월부터 신촌로터리와 연세대 앞 성산대로를 이어주는 연세로의 차량통행을 막아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했다. 연세로의 차량통행을 금지시킨 건 아직 찬반이 엇갈리는 의사결정이지만 이 결정으로 인해 신촌의 대표 도로인 성산대로와 신촌로터리가 사실상 단절됐다. 연세로는 이 둘을 이어주는 길이다. 성산대로는 성산대교로 이어지며 목동을 지나 서해안고속도로로 이어진다. 신촌로터리의 각 길들은 각각 양화대교와 서강대교와 용산으로 이어진다. 신촌 일대가 교통의 요지인 이유다. 그렇지 않아도 같은 2호선의 홍대역과 합정역에 비해 철도 수송능력이 부족해졌는데 도로교통까지 끊었다면 동네로 오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
신촌에 오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건 숫자로 한 번 더 증명된다. 대중교통전용지구가 된 뒤의 2014년부터 코로나19로 유동인구가 확 줄어든 2019년까지 신촌역의 일평균 이용객은 계속 줄어들었다. 연세로가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된 것이 대중교통의 실 이용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연세로의 교통체증이나 걷고 싶은 분위기가 문제였다면 도쿄 긴자처럼 주말만 통제하는 식의 조절도 가능했을 것이다.
신촌에서 도로망 수송이 주가 되고 철도 수송이 줄어들었음을 암시하는 노래가 하나 더 있다. 애절한 가사로 유명한 포스트맨의 2013년작 ‘신촌을 못가’다. ‘신촌을 못가 한번을 못가 혹시 너와 마주칠까 봐’라며 슬퍼하는 주인공은 신촌의 전 연인을 회상할 때 ‘막차 버스 안에서’ 장면을 떠올린다. 노래 속 커플은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탔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신촌을 거치는 버스는 광역버스, 지선버스, 간선버스, 마을버스를 포함해 총 70개나 된다.
서대문구가 야기한 또 하나의 실책은 이대 앞 상권을 사실상 방치한 일이다. 신촌을 오래 다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신촌역 주변과 이대역 주변은 공간 구성이 달랐다. 신촌역에 상대적으로 대형 상업 공간이 많았고 이대역 근처는 작은 가게들 위주였다. 소형 점포가 많았으니 개별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그 덕에 개성적인 가게들이 생길 수 있었다. 이런 가게들 역시 합정-홍대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노후화되어 사라졌다. 지금 이대 앞 역세권의 저층 상가 밀집지는 재개발을 방불케 하는 신규 오피스텔로 가득하다. 개발 논리를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 이곳이 관악구의 신림역 근처처럼 서울 서부 권역의 신규 1인주택촌이 될지도 지켜볼 포인트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대 앞은 구도심 권역의 레트로-모던한 분위기도 놓치고 도시재생에도 실패한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신촌에 봄은 안 올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신촌에 사람이 줄어든 바로 그 이유를 개선하면 된다. 교통과 인구. 다행히 둘 모두에 변수가 있다. 하나는 서울경전철 서부선이다. 서울경전철 서부선은 새절역에서 출발해 신촌을 건너 여의도와 노량진을 거쳐 서울대입구까지 통하는 서서울 종단선이다. 서울경전철 서부선이 개통될 경우 철도 소외지역인 서대문구에만 역이 3개 신설될 예정이라 철도 접근성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 합정역과 홍대입구역에 이어 신촌역까지 환승역이 된다는 것도 신촌에 좋다. 다만 시간이 늘어지고 있다. 서울경전철 서부선은 2020년 민자적격성조사를 실시한 후 2029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2023년 9월까지도 총사업비 산정 문제로 정부 민간투자사업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등 조금씩 지체되고 있다.
잠재적으로 신촌을 바꿀 또 하나의 소식은 범신촌 권역인 아현뉴타운과 북아현뉴타운 재개발이다. 이대역부터 아현역까지의 전 구역을 아우르는 아현뉴타운과 북아현뉴타운의 규모를 모두 합치면 2만 세대가 넘는다. 동네의 예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한 동네가 재개발이 끝나면 무서울 정도로 해당 지역의 인구 구성이 변한다. 남산타운아파트가 대표 사례다. 서울의 대표적 빈촌이었던 신당동 산 중턱에 남산타운아파트가 만들어지고 중산층 거주지역이 되자, 그 지역 산 중턱에 원래 있던 동호공고(현 서울방송고등학교)가 주민 민원으로 쫓겨나듯 이전하고 폐교 직전까지 갔다. 도시의 슬픈 에피소드다.
“‘신촌을 못가 한번을 못가 혹시 너와 마주칠까 봐’라며 슬퍼하는 주인공은 신촌의 전 연인을 회상할 때 ‘막차 버스 안에서’ 장면을 떠올린다. 노래 속 커플은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탔다는 뜻이다.”
뉴타운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아무래도 돈도 더 많고 도회적인 소비 수준도 더 까다롭다. 그들을 만족시킬 만한 예쁘장한 가게들이 다시 범신촌 권역에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이미 그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예쁜 카페다. 요즘 상권이 죽은 곳으로 취급받는 이대 권역에 훌륭한 커피와 인테리어를 갖춘 스페셜티 카페들이 생기고 있다. 다만 그새 없어지는 곳이나 식당과 겸업하는 곳들도 있어서 아직 이들이 자리 잡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신촌에 봄이 더 찾아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그런 회의에 불려간다면 크게 두 가지를 말할 것 같다. 하나는 연세로 개선을 통한 신촌로터리-성산대로 연결성 강화, 다른 하나는 기업 유치다.
앞서 말했듯 동네를 번영시키는 건 동네를 찾는 사람들의 양과 질이다. 그 면에서 내가 서대문구청장이라면 연세로의 연결성 개선을 통한 신촌로-성산대로 연결에 명운을 걸겠다. 연세로를 정비해서 신촌로와 성산대로의 차량, 철도, 도보 접근성을 높인다면 신촌 권역 전체에 긍정적인 활기를 줄 것이다. 지하도를 파든, 도로를 지하화하든, 토지보상금을 대폭 편성해 도로를 넓히든, 이 구간만 해결되면 신촌은 다시 서울 서북 지역과 서울의 중심이 될 용산을 이어주는 요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경전철 서부선은 그런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서부선이 개통되면 신촌로터리와 성산대로가 신촌역-연세대역(가칭)으로 이어진다.
고급 인력이 주중에 상주하는 기업 유치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만하다. 신촌에는 중대형 사무건물이 많고 CBD라 부르는 시청/광화문 권역과 대중교통으로 10분 거리이므로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물리적 자원이 충분하다. 합정역의 세아베스틸과 홍대입구역의 애경 본사 이후로 동네가 변한 걸 참고할 필요가 있다. 반면 신촌과 홍대 사이 동교동삼거리에서 린나이 사옥으로 쓰던 마스타빌딩은 여전히 공실이다.
내가 이런 원고를 만들게 될 줄 몰랐다. 어릴 때는 모든 동네가 변치 않기를 바랐다. 모두가 돈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낮은 집들과 꼬불꼬불한 골목을 걸어다니길 바랐다. 그래서 유럽의 구도심처럼 옛날 동네가 좁고 아늑한 그 모습을 계속 가져주길 원했다.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제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변화 자체에 점수를 매기거나 평가하는 일도 너무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기왕 변해야 하는 거라면 조금 더 괜찮게 변하길 바란다. 건강한 비즈니스가 되는 방향으로, 거기서 생긴 이익이 최대한 많은 시민에게 돌아가는 방향으로, 동시에 최대한 억울한 사람들을 덜 만드는 방향으로, 그 결과 최대한 덜 못생긴 방향으로 나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 원고는 그 고민의 일환이다. 신촌에 봄이 오면 좋겠다.
Editor : 박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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