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화이트데이 앞두고 ‘사상 최고가’ 초콜릿, 5000년 전부터 퍼졌다

이영완 과학에디터 2024. 3. 1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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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전 중남미 고대 도자기 유물 분석
카카오 성분 통해 아마존서 중남미 전파 확인
온난화 따른 곰팡이병으로 멸종위기 내몰려
유전자 가위로 병충해 강한 신품종 개발
초콜릿은 카카오나무 열매의 씨앗인 코코아 콩으로 만든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병충해가 겹쳐 코코아 콩 생산량이 급감해 가격이 크게 올랐다./네덜란드 열대연구원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초콜릿 주원료인 코코아 콩 선물(先物)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지난 8일 미국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코코아 선물 가격(5월 인도분)은 t당 6396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한 달 전보다 10.2%, 연초 대비 49.6% 오른 수치다.

초콜릿 원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앞으로 화이트데이나 밸런타인데이의 선물이 바뀔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최근 인류가 초콜릿을 탐닉한 역사가 지금까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대안을 찾아내면 앞으로도 수요가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에 강한 새로운 품종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고대부터 중남미에서 카카오 품종 교배 활발

초콜릿은 카카오나무의 씨앗인 코코아 콩으로 만든다. 초콜릿(Chocolate)이란 이름 자체는 멕시코 메시카족이 코코아 콩과 고추로 만든 음료인 쇼콜라틀(Xocolatl)에서 유래됐다. 멕시코 원주민은 카카오의 씨앗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 부르면서 음료나 약용으로 썼다고 한다. 카카오 나무의 학명(Theobroma cacao)도 ‘신들의 음식’이란 뜻이다.

카카오 재배는 반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프랑스 국제개발농업연구센터(CIRAD)의 클레어 라노(Claire Lanaud) 박사 연구진은 지난 8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카카오 재배는 적어도 5000년 전에 인간의 이동과 무역 경로를 통해 아마존에서 다른 중남미 지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중남미 각지에서 발굴된 도자기 유물들. 프랑스 국제개발농업연구센터 연구진은 여기서 나온 카카오나무 열매 성분을 분석해 아마존에서 재배하던 카카오나무가 5000년 전 중남미 각지로 퍼졌음을 알아냈다./프랑스 국제개발농업연구센터

오늘날 카카오나무는 가장 많이 재배되는 크리올로(Criollo)와 나시오날(Nacional)을 포함해 11가지 유전자 그룹으로 나뉜다. 카카오 나무는 원래 남미의 아마존강 상류 유역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졌지만, 어떻게 중남미 전역으로 퍼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고고학자들은 멕시코 일대에서 발굴된 유물을 통해 약 3900년 전에 처음으로 중앙아메키라 일대에서 카카오나무를 재배했다고 추정했다. 2018년 미국 워싱턴 주립대는 카카오나무의 유전자를 분석해 약 3600년 전에 카카오 재배가 아마존에서 중앙아메리카로 퍼졌다고 발표했다.

라노 박사 연구진은 에콰도르와 콜롬비아·페루·멕시코·벨리즈·파나마 등 중남미 국가에서 유럽인의 영향이 미치기 전인 약 5900년에서 400년 전에 걸쳐 19개 문화권에서 나온 도자기 353점을 분석했다. 도자기에서는 오늘날 카카오에 있는 약한 각성제 메틸산틴 성분인 테오브로민, 테오필린, 카페인 같은 물질들이 나왔다. 연구진은 이를 오늘날 카카오 시료 76건과 비교했다.

고대 카카오 DNA를 분석한 결과 세 가지 유전자형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카카오나무가 여러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다른 문화권에서 카카오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기 위해 교배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페루 아마존에서 유래한 카카오 유전자형이 에콰도르 발디비아 해안지역에 존재한다는 것은 두 문화가 오랫동안 접촉했음을 시사한다. 콜롬비아 카리브해 연안의 도자기에서도 페루 유전자형이 발견됐다.

열매가 꼬투리썩음병 증상을 보인 카카오나무.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연구진은 크리스퍼 캐스9(CRISPR-Cas9)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를 교정해 곰팡이병에 대한 저항성을 높였다./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유전자 가위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품종 개발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서로 다른 계통의 카카오나무를 교배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켰다는 사실은 오늘날 카카오나무의 위기를 극복할 길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카카오는 최근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가나처럼 카카오를 많이 재배하는 서아프리카에 적도 부근의 바닷물 수온이 오르는 엘니뇨 현상으로 가뭄이 닥친 데다 병충해까지 겹쳐 생산량이 큰 폭으로 줄었다. 서아프리카의 가나, 코트디부아르, 나이지리아, 카메룬은 전 세계 카카오의 70%를 공급한다.

지구온난화는 카카오를 멸종위기로 내몰고 있다. 비영리 연구 기관인 국제열대농업연구센터(CIAT)는 지난 2018년 ‘유용 야생식물의 보존지수’ 보고서에서 “전 세계 22국에서 7000종 가까운 유용 야생식물을 조사한 결과 3%도 안 되는 종(種)만 제대로 보호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보존지수는 75점을 넘어야 충분히 보호받는 상태로 평가된다. 카카오나무는 보존지수가 35.4였다.

앞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2050년까지 기온이 2도 올라가면 서아프리카서 카카오나무가 살 수 없다고 발표했다. 실제 코스타리카에서는 곰팡이병이 창궐해 1983년 코코아 수출이 96% 급감하기도 했다. 중남미에서는 1970년대부터 카카오나무에 서리꼬투리썩음병 같은 곰팡이병이 창궐했다.

과학자들은 카카오나무가 상품성 높은 한 가지 종(種)에 의존하다가 멸종 위기를 맞은 바나나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고 본다. 바나나가 수출품으로 인기를 얻은 것은 껍질이 단단해 장거리 수송에 적합한 그로 미셸 품종이 개발된 19세기 이후다. 상품용 바나나는 모두 씨가 없어 뿌리줄기를 잘라 번식시킨다. 모든 바나나가 유전적으로 한 개체여서 병에 걸리면 전체가 다 위험해진다. 실제로 그로 미셸 바나나는 1950년대 곰팡이병이 창궐해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그로 미셸을 계승한 캐번디시 품종 역시 1989년 대만에 발생한 파나마병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코스타리카에 있는 열대농업연구고등교육센터(CATIE)는 30여 년간 야생 카카오나무들의 교배를 통해 곰팡이병과 가뭄에 강한 신품종들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아프리카에 맞는 품종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야생 카카오의 유전자를 재배 중인 카카오에 바로 주입하는 방식도 이용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은 소비자의 반감을 부를 수 있어 최근에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곰팡이 내성을 부여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자르고 붙일 수 있는 효소 단백질이다. 외부 유전자를 주입하지 않고 자체 유전자로 교정한다는 점에서 GMO와 다르다. 201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TcNPR3′이라는 유전자를 제거해 카카오나무의 질병 저항성을 회복시켰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tific Report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4-53010-6

Communications Biology(2018), DOI: https://doi.org/10.1038/s42003-018-0168-6

Frontiers in Plant Science(2018), DOI: https://doi.org/10.3389/fpls.2018.00268

CIAT(2018), https://alliancebioversityciat.org/indicator-conservation-status-useful-wild-pl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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