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장 민심 “대통령, 열심히는 하는데 와닿지 않아”
● 전통시장의 봄, 아직 멀었다
● 코로나19 이전보다 뚝 떨어진 매출
● “종업원 뒀다간 밥도 못 먹고 살아요”
● 일본 관광객, 적게 먹고 잘 안 사
● 음식 장사 빼고는 손님 끊겨
● 월세, 인건비, 세금 버거워
● “정쟁은 그만, 국민만 봐주세요”
신 씨만이 아니다. 남대문시장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신동아' 취재에 응한 상인 20명 가운데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매출을 회복한 이는 없었다.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사태 당시보다 조금 나아진 수준"이라고 했다. "그때보다 장사가 더 안되는 것 같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36년차 식기도매상 장길선(66) 씨는 "이런 불경기는 처음"이라면서 "물자가 회전은 안 되고 재고만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통시장에는 수십 년간 온갖 풍파를 이겨낸 '장사의 신'이 모여 있지만 3년 가까이 계속된 감염병 확산 여파로 문을 닫은 점포가 한둘이 아니다. 2년여 전 취재 당시 두 전통시장 상인들은 국내외 방문객이 뚝 끊겨 경제적 타격이 심각했다. 그럼에도 이들을 버티게 한 힘은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었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코로나 사태 종식'을 선언했다.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다시 밀려들고 있고, 방역 마스크 없이도 어디든 활보할 수 있게 됐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전통시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상인들의 고충은 뭘까.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전통시장 상인들이 열망하던 그 '경제대통령'이 맞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안고 늦은 아침 남대문시장으로 달려갔다.
"직원은 보호하면서 상인은…"
남대문시장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전체 방문객의 60%가 외국인일 정도로 큰 사랑을 받는 관광 명소였다. 지금도 외국인의 방문이 이어지지만 예전처럼 대규모는 아니다. 갈치조림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 주인 이상협(66) 씨의 전언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고 대신 일본과 동남아 관광객이 늘었다."저녁에 음식과 술을 즐기는 사람이 확 줄었다. 중국인 관광객이 통 크게 쓰는데 요즘은 보기 힘들어졌다. 일본인 관광객은 어쩌다 찾는데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사람보다 훨씬 적게 먹는다. 순두부·김치찌개 시켜놓고 다 먹지도 않는다. 매출에 영향을 거의 안 주는 수준이다." 그릇도매상 정길선(66) 씨는 "예전에는 외국인이 와서 기념으로 그릇을 사갔는데 요즘은 안 산다"며 나라별로 특징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일본에 가서 돈을 너무 많이 쓰는데 일본 사람은 한국에 와서 돈을 잘 안 쓴다. 중국인은 주방용품에 아예 관심이 없다. 아침 식사를 안 하고 빵, 호떡 같은 걸로 때우는 문화다."
40년차 액세서리 도매상 심보석(66·가명) 씨도 "외국인 방문객이 늘었지만 지갑을 열지 않고 구경만 한다"고 전했다. 상인들은 먹을거리 장사가 그나마 큰 기복 없이 잘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대다수 업종이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매출이 50% 수준으로 뚝 떨어졌지만 먹을거리를 파는 곳은 70~90%의 회복률을 나타냈다. 이상협 씨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매출의 90%까지 따라잡았다. 수입식품 도매상인 70대 이강경(가명) 씨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매출의 70%까지 회복했다.
시장 상인 상당수는 종업원 없이 혼자 직접 점포를 운영한다. 인건비 부담이 커서다. 직원 한 명을 고용하면 월급에 식대, 4대 보험료까지 비용 4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의류와 모자를 파는 신정은 씨는 올 1월 하루 하나 파는 날이 허다했다. 신 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오가는 사람은 많은데 지갑을 안 연다. 장사가 하도 안돼 아르바이트생을 쓸 여유도 없다"고 토로했다.
남대문시장에서 38년째 주방식기를 판매하는 도매상 김규식(59) 씨는 장사가 안돼 종업원을 둘 처지가 아니라며 씁쓸한 일화를 들려줬다.
"10년 동안 일한 직원이 나가서 퇴직금 2000만 원을 줘야 하는데 너무나 힘들 때였다. 1000만 원을 대출받아 주고 1000만 원은 6개월 동안 나눠주기로 양해를 구했다. 일주일 뒤 문자가 왔다. 바로 안 주면 신고하겠다고 했다. 그 순간 10년 동안 같이 일한 정은 없어졌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직원은 국가가 보호해 주지만 우리 같은 상인은 왜 보호하지 않나. 자영업자 보호법이 필요하다. 직원만 보호해 줘서 힘든 자영업자가 한둘이 아니다."
먹을거리 상인만 웃는 남대문시장
"코로나19 사태가 끝나 건물주가 임대료를 더는 깎아주지 않는다. 그걸 못 견뎌 문 닫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코로나가 창궐할 때 대출을 받았는데 상환 기한을 연장해 주지도 않고, 이자와 원금을 같이 갚아야 해서 허리가 휠 지경이다. 원금 상환 기한을 유예해 정상 영업이 가능하도록 회복할 시간을 줘야 한다. 남대문시장에 공실이 많다. 소상공인에게는 저리로 대출을 연장해 줘야 한다."
상인들은 경기가 좋지 않은 원인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물가상승, 금리인상,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옮겨간 쇼핑 문화를 꼽았다. 결혼을 부담스러워하고, 배달음식을 즐기는 문화도 전통시장을 움츠러들게 하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시장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적용 범위를 획일적으로 설정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식기도매상의 말이다.
"음식점이 잘돼야 그릇이 잘 팔리는데 김영란법 시행 후 외식 사업 경기가 쪼그라들었다고 식당 주인들이 하소연한다. 김영란법을 정말 비리 척결을 위해 만들었으면 문제가 있는 사람만 영향을 받아야지, 왜 우리 같은 소상공인까지 힘들게 하나. 구정 대목도 없어졌다. 옛날에는 명절이나 연말에 선물 나눠주려고 컵 세트 맞추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명절에 누리던 반짝 특수도 기대할 수 없다. 정말 좋은 법이면 모두가 환영해야 하는데 벼룩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꼴이다. 김영란법이 시장의 흐름을 악화하지 않도록,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다."
남대문시장은 점심때가 돼서야 활기가 생겼다. 주변 오피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과 관광객이 가볍게 한 끼를 해결하려 모여들었다. 비좁은 식당 앞에 길게 늘어선 행렬이 그릇도매상가, 액세서리상가, 꽃상가, 수입상가의 한산한 분위기와 대조를 이뤘다.
"결혼을 안 하니 한복을 안 입어요"
맨 처음 대면한 60대 한복집 주인 사은희(가명) 씨는 40년 넘게 시장을 지킨 터줏대감이다. 손님이 오느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사 씨가 "코로나 때보다 장사가 더 안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좀 나아지는 듯했는데 지난해 가을부터 손님이 부쩍 줄었다. 한복을 사가던 대만, 중국, 일본 사람도 발길이 끊겼다. 결혼을 안 하니 한복 입을 사람이 없다. 예전에는 북적북적했는데 지금은 공실이 상당하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도 안 되게 매출이 떨어졌다." 종업원은 없다. 사 씨 혼자 운영한다. "요즘 종업원을 뒀다간 밥도 못 먹고 산다. 긴축 살림으로 버틴다"는 말이 아프다.
근처 다른 한복집 주인 김금현(50) 씨는 "한복 구매자의 80%가 일본이나 미국, 호주에서 온 교포"라고 전했다. 결혼을 꺼리고 폐백을 생략하는 문화가 한복 시장 침체의 결정타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기모노 착용을 장려하는 일본 정부를 예로 들며 "우리 정부도 한복 입기를 장려했으면 한다. 신년 하례식 때 단체로 입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2대에 걸쳐 57년째 반찬 가게를 운영하는 추귀순 씨 모녀도 "외국인이 많이 오고 내국인은 뜸하다"고 했다. 설을 앞두고 젓갈 선물세트를 사러 오는 사람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30년 넘게 김치 판매를 전문으로 해온 70대 박미순(가명) 씨는 '3월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채소, 양념값이 많이 오른 데다 옛날같이 김치를 즐겨 먹지 않아 판매량이 급감해서다. 그는 "외국인이 전처럼 김치를 사가지 않는다"며 "육회, 매운탕 같은 건 줄 서서 먹는다"고 귀띔했다. 전통과자, 건과일을 파는 80대 어르신은 "경기가 너무 안 좋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도 내국인보다 외국인 손님이 많다. "돈이 있어야 지갑을 열지. 외국인 아니면 나도 먹고 살기 힘들다."
"신용불량자가 안 되려고 버틴다. 인건비가 부담스러워 종업원 없이 운영한다. 세금과 공과금이 가장 큰 부담이다. 남편이 아파서 내가 가장 노릇을 한다.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 어르신이 주된 고객인데 코로나 여파로 발길이 끊겼다."
같은 침구류여도 이불 장사는 한결 낫다. 30년차 포목점 주인 박창식(65) 씨는 "코로나가 확산할 때는 재난지원금이 도움이 됐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진 게 없다"면서 "대만 손님 덕에 먹고 산다. 소비층의 90% 정도가 대만 사람"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방문객 10명 중 8명은 외국인이고, 나머지 2명이 한국인이다. 한국인 둘 중 하나는 구경만 하다 간다.
"대만 사람이 우리나라 이불을 좋아한다. 대만에서 영상 2~3도의 기온에 얼어 죽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 극세사 이불이 가볍고 포근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정전기가 잘 발생해 지금은 생산 자체를 안 한다. 요즘은 다른 이불이 잘 팔린다. 대만 손님은 와서 이불 한 채만 사지 않는다. 친구, 가족, 지인들 것도 미리 주문받아 사간다. 여기 와서 라이브로 인터넷 방송을 한 다음 현장에서 주문을 받아 대량으로 사가는 일도 많다. 대만 손님 아니면 벌써 문을 닫았을 거다. 1월에는 장사가 너무 안돼 임차료, 인건비, 세금 같은 고정비용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물가 안정 열망 가장 커
전통시장 상인들은 경기불황의 책임을 정부에 돌리지 않았다. 20명 가운데 14명은 "대통령이 애는 쓰는데 노력한 만큼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와닿지 않아 안타깝다"는 목소리를 냈다. 2명은 "국정 운영을 너무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80대 어르신은 "엄마, 아버지가 자식을 차별하면 안 되는 것처럼 대통령도 그래야 한다. 지금은 차별이 심하다. 맨 검사, 판사만 요직에 앉아 있으면 정치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쏘아붙였다, 그는 윤 대통령에게 "서민의 고통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현 정부에 "기대할 게 없다"는 냉담한 반응도 있었다.나머지 3명은 "아주 잘하고 있다"고 평하면서 "대통령이 하려는 일을 사사건건 막는 야당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수입 상품을 판매하는 70대 이지훈(가명) 씨는 "대통령이 전 정부의 실정을 물려받아 해결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60대 옷가게 주인은 "전 정부가 벌인 일 때문에 지금 이렇게 어려움이 많은 거다. 전 정권에서 너무 많은 빚을 졌고 세계적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모든 물가가 뛴 거지, 대통령 책임은 아니다. 현 정부는 열심히 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게 보인다. 대통령이 물가안정을 위해 좀 더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잘한 일로 상인 다수는 대북정책을 첫손에 꼽았다. 엄정한 법 집행을 높이 평가한 이도 있다. 민생을 돌보지 않는 여야 정치인을 향한 쓴 소리도 쏟아졌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정쟁만 일삼는 정치인들 때문에 신물이 난다" "1억5000만 원이 넘는 연봉을 국민이 주는데 선거철만 와서 사진 찍고 가는 게 전부다. 제발 밥값 좀 하라" 등이었다. 이들이 윤 대통령에게 바란 것은 전통시장 활성화, 민생 안정, 내수 진작, 물가안정이다. 그중에서도 물가안정을 열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남대문시장에서 30년 넘게 음식점을 운영한 노신사는 "전 분야의 물가가 다 올라 총체적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물가가 안정을 찾아야 소비문화가 살아나고 시장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주방용품 판매를 30년 넘게 한 도매상은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야 돈이 돌아 소비자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며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도 힘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 도매상은 "소상공인이 삶이 더 망가지기 전에 필요한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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