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군인들은 죄다 기러기"‥자율형 공립고가 대안?

이덕영 deok@mbc.co.kr 2024. 3. 1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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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니며 전학만 3~4번‥군인 가족의 비애

예전보다 군인 가족 복지가 많이 좋아졌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직업군인 부모의 근무지를 따라 1,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일입니다. 초등학생 4학년 자녀를 둔 한 군인은 저에게 벌써 4번이나 이사를 다녔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실제 조사결과도 비슷합니다. 국방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복무 중 10회 이상 이사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79%에 달했습니다. 초등학생은 재학 중 2번 이상 전학 경험이 50%였습니다. 군인 아빠를 따라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적응을 하지 못해 심리치료를 받는 아이들을 꽤 많이 봤다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주거 불안은 곧 아이들의 교육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2023~2027 군인복지기본계획' 실태조사를 보면 군인 복지가 필요한 분야로 주거환경(40.5%)과 자녀교육(24.6%)이 꼽혔습니다. 주거와 자녀 교육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군인 가족의 선택‥초등학교 때부터 기러기 가족

군인 가족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요? 자녀들을 대도시로 보내고 자신은 격오지에서 근무하길 선택합니다. 해외로 자녀들을 유학 보내며 생기는 '기러기 가족'이 아니라, 국내에서 '비자발적 기러기 가족'이 되는 겁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기러기 가족'을 택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됩니다. 이르면 이때부터 기러기 가족이란 결단을 내리고, 적어도 중학교에 진학할 때는 꽤 많은 군인 가족이 떨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격오지에서 근무하며 고생하지만 가족의 따뜻함은 운 좋으면 주말에, 그도 안되면 한 달에 하루 이틀 겨우 느낄 수 있는 게 현실입니다.

한민고 제공

'군인 자녀 자율형 공립고로 안정된 복무여건 조성'

국방부가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놨습니다. 교육부와 협의해 군인자녀 자율형 공립고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군인자녀들이 입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입니다. 없던 학교를 새로 만드는 건 아니고 기존 고등학교를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해 군인 자녀들을 입학시킨다는 계획입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지난 2014년 설립된 자율형 사립고 한민고가 모델입니다. 한민고는 입학생의 70%를 군인자녀로, 30%를 경기도 거주 일반 학생들로 받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한민고를 성공사례로 꼽으며 자율형 공립고 역시 군인가족의 걱정을 덜어줄 거라 말하고 있습니다.국방부는 올해 한민고 졸업생 350명 중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스카이'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68명이나 된다고 자랑했습니다. 올해 해군사관학교 수석 졸업생이 한민고 졸업생이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군인 가족들은 한민고에 자녀를 보내고 싶어하고, 다른 가족의 자녀가 입학에만 성공해도 부러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디에, 얼마나 만들지 몰라‥"기사 나면 교육청에서 연락 올 것"

국방부의 자율형 공립고 설립 계획은 지난달 교육부가 발표한 자율형 공립고 2.0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교육부는 40곳의 학교를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럼 국방부의 세부 계획을 볼까요? 격오지 근무 군인 가족을 위해 만들어지는 자율형 공립고는 어디에 세워질까요? 군인들이 주로 근무하는 격오지는 아닙니다. 국방부는 군부대가 위치한 지역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박았습니다. 어느 지역의 학교를 지정하겠다고 결정되진 않았지만 시도별 주요 도시에 만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몇 곳의 학교를 군인 자녀를 위한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하고, 몇 명을 뽑게 되는 걸까요? 역시 미정입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자들 질문에 "기사가 나가면 지방교육청에서 연락이 올 거"라며 그 이후 논의할 거라고 했습니다. 군인 자녀와 일반 학생의 선발 비율이 어떻게 될지도 미정입니다. 교육청과 협의도 없이 설익은 정책을 내놓은 것 아닌지 의심이 드는 이유입니다.

물론 정해진 것도 있습니다.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되려면 기숙사가 있어야 합니다. 부대 위치와 상관없는 대도시에 학교가 생기면 직업군인 부모와 떨어져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학교 기숙사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평준화된 지역의 학교는 지정대상에서 빠질 것 같습니다. 평준화 지역은 해당 지역 학생만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란 게 국방부 설명입니다. 이렇게 허점투성이 계획이지만 국방부는 내년 초 자율형 공립고를 지정하고 오는 2026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도심 지역 학생이 반드시 내신 좋지는 않아"‥"군인 가족 위한 계획 맞나"

직업군인들은 어떤 반응일까요? 군인 가족에게 혜택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미 한민고의 성공사례를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걱정스런 의견도 있었습니다. 격오지 근무로 불안을 겪는 군인 가족을 위해 만드는 학교인데 왜 정작 격오지 인근이 아닌 곳에 만드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국방부 같은 대도시에 위치한 부대에 근무하고 있는 잘 나가는 군인들을 위한 특혜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대도시에 거주하고 근무하며 상대적으로 자녀 교육 측면에서도 기회가 많기 때문에 자율형 공립고 입학 역시 유리할 거란 우려였습니다. 국방부 브리핑에서도 도심 거주 학생의 성적이 더 좋아 유리한 거 아니냔 질문이 나왔습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도심 지역 학생이 반드시 내신이 좋지는 않다"고 답했습니다.

자율형 공립고를 만드는 취지와 실제 계획안이 어긋나는 것 아니냔 지적도 있었습니다. 국방부 보도자료에는 자율형 공립고 설립 취지를 설명하며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최전방 경계부대(GOP)에 근무하는 대대장의 경우 한 달에 한 번 1박 2일의 휴가를 갈 때만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책임이 막중한 위치에서 오로지 임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정된 자녀교육과 가정생활은 필수적으로 보장이 필요합니다.

이 대목을 한 군인에게 들려주자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국방부가 나서서 안정적인 기러기 가족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설명입니다.

이 대목을 한 군인에게 들려주자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국방부가 나서서 안정적인 기러기 가족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설명입니다.

"어차피 군인들은 죄다 기러기"

교육부가 지난달 자율형 공립고 2.0 계획을 발표하자 전교조는 입시경쟁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특권교육을 해소하고 교육의 상향 평준화를 추구하는 세계적인 교육정책 방향성과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사교육 카르텔 혁파'와도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습니다. 군인 자녀들 역시 자율형 공립고에 입학하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경쟁이 시작되며 사교육을 과열시키는 건 아닌지 우려가 나오는 지점입니다.

보다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직원 자녀가 대학에 진학할 경우 학자금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군인 자녀들 역시 정부로부터의 대학 학자금 지원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의 자녀를 향한 교육열은 다른 민간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뜨겁습니다. 그만큼 걱정도 큽니다. 주거와 교육 불안이 크기 때문입니다. 한 군인은 '어차피 군인들은 죄다 기러기'라고 제게 자조하기도 했습니다. 국방부는 격오지에서 청춘을 바쳐 복무하고 있는 군인들의 이같은 심정과 현실을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요?

이덕영 기자(deok@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4/politics/article/6578598_364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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