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美 아카데미요? 받으면 당연히 좋겠죠" [MD인터뷰](종합)
첫 연출작으로 오스카 작품상·각본상 후보
"인연'이라는 단어를 알려주는 영화"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를 하는건 전혀 제약이라고 느끼지 않아요. 저는 약간 저의 비밀무기라고 생각해요."
셀린 송(Celine Song·36)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감독 셀린 송) 개봉을 앞두고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송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한국에서 촬영됐으며, 대부분의 대사가 한국어로 이뤄졌다.
송 감독은 첫 연출작 '패스트 라이브즈'로 전 세계 72관왕, 212개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작품상과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쾌거를 이뤘다. 신인 감독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 같은 성과를 예상했냐는 물음에 송 감독은 "연극을 10년 넘게 했는데 사실 연극을 한다는 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는지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니다. 이번 영화를 만들 때도 그런 생각으로 했다. 약간 '뭐 어때, 그냥 해봐야지' 그런 생각이었다"고 입을 열었다.
"어느 날 뉴욕의 밤에, 어떤 바에서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랑 미국에 살고 있는 남편과 같이 만났고 제가 통역을 했어요. 그 사이를 해석하면서 우리 세명은 보통 사람이지만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두 사람의 다리가 돼서 두 가지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제 자신의 아이덴티티나 역사를 넘나 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감정이 저한테 남아서 그때부터 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야기를 로맨스로 풀게 됐고요."
송 감독은 지금까지 '패스트 라이브즈'가 거둔 그 어떤 성과도 예상하지 못했다. 생각한 것이 있다면 '패스트 라이브즈'가 관객과 하는 대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밤 내 과거, 내 어린 시절의 모습만을 간직하고 있는 누군가와 술을 마시며 이런 느낌이 들었다. 너도 이 느낌을 느껴본 적 있느냐고. 그리고 '패스트 라이브즈'를 본 관객들은 나도 그런 감정을, '인연'을 느껴봤다고 답했다. 뉴요커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또한 그는 "'패스트 라이브즈'를 계속 로맨스로 푼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지는 않았다. 사실 이건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서로의 관계가 꼭 연애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리고 사랑과 연애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하고 어쩌다 말을 섞게 됐을 때 느낄 수도 있다"며 "한 가지의 사랑이 어떤 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지 연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인생에 담겨있는 로맨틱한 부분을 이야기할 뿐이지, 보통 말하는 로맨스 장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극 중 나영과 남편 아서(존 마가로)에 대해서는 "진짜 나와 남편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모국어가 다르고 자란 과정이 다른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서울사람이 부산사람이랑 살아도 '저 사람은 좀 다르다'라고 느끼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며 "관계가 깊어질수록 다른 점을 느끼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게 오랜 관계일수록 중요한 부분이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존의 와이프가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나는 그걸 잘 모르고 캐스팅했는데, 존이 왜 캐릭터를 깊게 이해하고 원하고 사랑하고 하고 싶어 했는지 캐스팅 한 다음 알게 됐다"며 "존은 한국말을 좀 할 줄 아는데 아서는 한국말을 잘 못하고 발음이 엉망이다. 존이 내게 '한국말을 더 잘할 수 있고 연습해서 하게 해 달라'라고 했다. 그때 내가 '이 영화는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못하는 게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존이 한국말을 더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비하인드를 전하기도 했다.
"처음에 아서랑 해성이가 만났을 때 아서는 한국말로 '안녕'이라고 하고 해성이는 잘 못하는 영어로 '안녕'이라고 해요.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너무 중요하고 중심이 되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서로에게 약하고 부족한 부분으로 첫 발을 디디잖아요. 그게 이 캐릭터들에게 굉장히 감독적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아서와 나영이의 관계도 거기에 담겨있다고 생각하고. 배우고 노력하는 거잖아요. 서로의 관계에서 노력하는 게 정말 감동적이라고 생각해요."
'패스트 라이브즈'는 '인연'이라는 한국적 감성을 담아낸 작품이다. '인연'과 같은 뜻을 가진 영단어가 없기 때문에 나영은 '인연'을 한국어 그대로 발음하면서 그 뜻을 설명한다. 이에 대해 송 감독은 "모티브 자체는,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서 12년을 살았기 때문에 항상 인연이라는 단어를 쓰고 알고 있었다. 나는 인연이라는 콘셉트가 매 일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 단어를 알기 때문에 그 단어를 모르는 사람보다 인생에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말했다.
그는 "'인연'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한 이유는, 사실 이 영화는 미스터리 영화다. 세 사람은 누구인지 묻는 것이 영화의 첫 장면이다. 그 대답 자체가 미스터리 하다고 생각했다. 그 대답은 '인연'이라는 단어 밖에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해성이와 나영이는 전 남자 친구와 전여자 친구이라기에는 너무 어렸고 첫사랑이기에는 손 잡은 것 밖에 없고 친구라기엔 그렇게 친하진 않다. 모르는 사람이라기엔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난다. 그런 관계를 어떻게 표현할까 했는데 '인연'이라는 단어밖에 없더라. 아서랑 해성이도 그렇다.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한 사람을 다른 의미로 사랑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미국에서 만든 영화고 한국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인연'이라는 단어를 설명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인연'이라는 단어를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을 해주는 거다. 그러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인연'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인연'이라는 단어를 알려주는 영화이기도 하다"며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살아봤고 나이를 먹어봤고 지나친 게 있다면 무조건 '인연'이라는 감정과 느낌이 뭔지 인간으로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단어가 없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만약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아시아계 최초로 '데뷔작 아카데미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에 대해 묻자 송 감독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우, 받으면 좋겠죠. (아카데미) 상 받으면 당연히 좋겠죠. 사실 데뷔작으로 노미네이트 된 것만으로도 진짜 영광이어서 충분히, 충분히 행복합니다. 그런데, 받으면 좋겠죠. 하하"
'패스트 라이브즈'는 영화 '미나리'의 제작사 미국 A24와 '기생충'의 제작사 CJ ENM의 합작이기도 하다. '미나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 후보에 올랐으며 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기생충' 또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차지했다. 그리고 송 감독은 할리우드와 미국 내 한국 영화의 '터닝 포인트'로 '기생충'을 꼽았다.
송 감독은 "패스트 라이브즈'를 언제나 두 가지 언어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야기 자체가 두 가지 언어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기생충'이 나오기 전에 극본을 썼는데 그 전후로 대화가 너무너무 다르다"며 "봉준호 감독이 자막에 대해 말했던 게 굉장히 임팩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글로벌하게 마음을 열었다. 나는 그걸 직접 느꼈다. '기생충' 전에는 '자막 때문에 괜찮을까' 했는데 그 뒤에는 아무도 그런 걱정을 안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민자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늘어나면서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꼭 나라나 언어까지 바꾸지 않더라도 이사를 다니고 다른 도시로 옮기고 인생을 바꾸는 일이 점점 많아지지 않나.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점점 많아지면서 더 이상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될 것"이라며 "결국 업계는 그냥 잘될 것 같은 걸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업계 자체에 특별한 애티튜드가 있기보다는 '저게 잘 되는 것 같다' 싶으면 그걸 선택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송 감독은 시상식에서 만난 크리스토퍼 놀런, 기예르모 델 토로 등 할리우드 거장 감독과의 만남도 전했다. 송 감독은 "어디선가 앉아서 하는 대화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이벤트에 다니면서 내가 상을 받거나 노미네이트가 되면 그분 들하고 같은 방에 많이 있다. 그러면서 서로 소개를 하고 대화를 한다. 그때 감독님들이 '네 영화를 봤다'고 하면 '보셨다고요?'하고 답했다"며 "언제나 그분들은 다 같은 이야기를 한다. '중요한 건 결국 영화다. 영화 자체가 중요하다'라고 하더라. 특히 기예르모 감독은 항상 '우리가 옷 입고 레드카펫도 밟고 상도 받고 노미네이트도 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이 영화 자체다. 관객을 위해서 어떤 영화를 만들었냐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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