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인터뷰] "원점에서 시작"…영화 사업 망했다던 CJ, A24 손잡고 '제2의 기생충' 만들까(종합)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간판 블록버스터들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CJ ENM이 '반성'과 '쇄신'을 다짐하며 새로운 도약을 약속했다.
멜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셀린 송 감독)를 공동으로 투자·배급한 CJ ENM과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 각 그룹을 대표하는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장과 샤샤 로이드 A24 인터내셔널 대표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패스트 라이브즈'를 발굴하고 기획한 과정부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영화 시장의 변화에 대한 견해를 전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에서 만나 어린 시절을 보낸 두 남녀가 20여년이 흐른 후 뉴욕에서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넘버3'(97) 송능한 감독의 딸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패스트 라이브즈'는 직접 겪은 이민자의 삶과 자국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인연에 대한 메시지를 아름다운 영상과 감각적인 연출로 그려냈다.
특히 '패스트 라이브즈'는 2019년 개봉한 '기생충'(봉준호 감독)을 통해 한국 영화의 힘을 전 세계에 알린 CJ ENM과 '더 랍스터'(15,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미드소마'(19, 아리 에스터 감독) '미나리'(21, 정이삭 감독)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2, 다니엘 콴 감독) 등 독창적인 작품으로 할리우드에 막강한 팬덤을 구축한 할리우드 독립 영화 배급사 A24가 협업한 글로벌 프로젝트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관심을 받았다.
이날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장(이하 고경범 영화사업부장)은 "샤샤 로이드 A24 인터내셔널 대표와 홍콩영화제에서 만났는데 '패스트 라이브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고 우리에게 제안했다. 뜻이 맞아 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게 됐다. 투자 비율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대략 3분의 2를 미국에서 촬영한 작품이고 나머지 3분의 1을 한국에서 촬영했다. A24가 북미 지역 유통을 맡았다면 CJ ENM은 국내를 비롯해 아시아 전역의 유통을 맡고 있다"며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적인 요소가 많은 영화라 그런 부분에 있어서 CJ ENM이 지원했다. 아무래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레이스를 펼치는 과정에서 할리우드 내 여러 지지를 얻어내야 하기 위해 CJ ENM과 A24가 공동으로 서포트하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샤샤 로이드 A24 인터내셔널 대표(이하 샤샤 로이드 대표) 또한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면 모두가 알 수 있다 너무 깜짝 놀랄 좋은 시나리오였다. 셀린 송 감독의 재능은 미국 뉴욕에서 이미 극작가의 커리어를 인정받고 있었다. A24 역시 관심을 가진 작가였고 그가 영화 작업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하고 싶었다. 역시 기대처럼 모두를 감동시키는 작품을 만들었다. 로맨틱하면서도 현실적인 스토리가 우리 모두를 사로잡았다. 셀린 송과 같은 천재적인 작가와 감독의 협업 기회를 A24는 놓칠 수 없었다"고 애정을 전했다.
'미나리'에 이어 '패스트 라이브즈'까지 한국계 미국 감독과 연이은 작업을 통해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A24. 샤샤 로이드 대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아주 로컬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적인 것이 글로벌하게 뻗어가 모두에게 감동을 안길 수 있는 지점이 충분했다. '인연'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감성적인데 사실 알고 보면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공감을 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성이다"며 "한국은 현시대 최고의 크리에이터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미나리' '패스트 라이브즈'는 좋은 스토리, 좋은 비전을 가진 아티스였고 우리는 그들과 일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크리에이터들과 작업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통해 재기를 꿈꾸는 CJ ENM의 포부도 남달랐다. 앞서 CJ ENM은 롯데시네마, 쇼박스, NEW와 함께 국내를 대표하는 4대 투자·배급사로 손꼽히며 한국 영화 산업을 진두지휘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꺼내는 신작마다 연거푸 손익분기점조차 넘지 못하는 최악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면서 한국 영화 산업 전반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유령'(이해영 감독) '카운트'(권혁재 감독) '더 문'(김용화 감독) '천박사 퇴마 연구소'(김성식 감독) '소년들'(정지영 감독) 등이 개봉했지만 모두 흥행에 실패하면서 엄청난 영업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영화계에서는 CJ ENM이 영화사업을 철수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최악의 위기를 보내야만 했다.
이와 관련해 고경범 영화사업부장은 "CJ ENM은 원점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크게 두 가지 방향을 가지고 있다.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는 제작비가 높은 콘텐츠는 자체적으로 허들을 높이려고 한다. 과거에는 단편적으로, 즉 40대 중심의 리더들이 콘텐츠를 두고 판단했다면 앞으로는 20대 신입사원부터 실제 관객에 맞는 방식으로 작품의 판단 기준을 바꾸려고 한다. 좀 더 시장에 맞게 변화하려고 노력 중이고 개선하고 있는 부분이다. 물론 변화까지 시간이 걸리고 또 과거에 묵힌 작품을 개봉하면서 당장의 변화를 느끼기 어렵겠지만 확실히 좀 더 높고 엄격한 연령의 분석으로 작업을 이어가려고 한다"고 사업 방향을 전했다.
더불어 "다른 방향은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과정도 바꿀 전망이다. 앞서 엄격한 작품 판단과 달리 실험적인 작품을 발굴하는 것도 동시에 진행하려고 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도 변화의 일환이다. 북미 시장을 겨냥한 작품이지만 톱스타도 없고 유명 감독도 아니다. 신인 감독의 작품으로 도전했다. 지금 시대의 명확한 가치를 가지고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다. 좋은 창작자가 많이 나와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여기에 활성화가 이뤄지는 투자를 동시에 진행하려고 한다. 기존에는 안전한 선택으로 사업을 이어갔다면 이제는 그러한 방식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콘텐츠 자체를 맨눈으로 보려고 한다"고 변화를 예고했다.
한국 영화사 최고의 정점을 찍은 '기생충' 이후에 대한 방향성도 밝혔다. 고경범 영화사업부장은 "'기생충' 이후 뭘 더 할 수 있을지에 고민이 컸다. '기생충'은 한국어로 대사하고 한국 배우가 나오는 작품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성공할 수 없는 모델인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새로운 영토를 만든 것이다. '기생충'은 한국의 창의력과 영화적인 퀄리티를 증명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전 세계 시장에서 유효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문을 연 셈이다. 그래서 '패스트 라이브즈'도 진행할 수 있었다"며 "물론 일각에서는 '패스트 라이브즈'가 아닌 또 다른 '기생충'을 만들어 전 세계에 한국 영화를 알려달라는 반응도 있다. 그런 요구를 충족한 게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2)이었다. 사실 '기생충'은 완전한 블록버스터라고 볼 수 없다. 해외에서는 여전히 아트하우스 포지션으로 보는 시각이 상당하다. 그래서 CJ ENM은 여러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기생충'처럼 완전한 한국 영화를 만들어 해외에 알리는 것과 한국적인 IP를 활용해 A급 할리우드 배우와 감독을 기용해 알리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또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협업하는 방법도 기획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오우삼 감독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미션 임파서블2'(00)를 만든 것처럼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고 계획 중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는 3월 6일 국내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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