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컴 없으면 나도 어렵다" 류현진도 총재에게 어필했다…피치클락 왜 논란인가

김민경 기자 2024. 3. 11.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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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 이글스 류현진은 피치클락 제도를 운영하려면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피치컴을 꼭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허구연 KBO 총재에게 전달했다. ⓒ곽혜미 기자
▲ 메이저리그에서 스피드업을 위해 2023년 시즌부터 도입한 피치클락.

[스포티비뉴스=대전, 김민경 기자] "총재님도 알고 계시더라. 주자가 나갔을 때 피치컴이 없는 상태에서 던지면 나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한화 이글스 류현진(37)은 바로 지난해까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피치클락을 경험한 투수다. 메이저리그는 지난 시즌부터 피치클락을 도입했고,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이었던 류현진은 지난해 8월 부상에서 복귀해 11경기 52이닝을 던졌다. 피치클락을 경험할 시간은 충분했다. 메이저리그는 주자가 있을 때 20초, 주자가 없을 때는 15초로 시간제한을 두는데 류현진은 적응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피치클락 운영이 가능한 이유로 피치컴(pitchcom)을 꼽았다. 피치컴은 피치클락보다 이른 2022년 시즌에 도입됐다. 최초 목적은 사인 훔치기 방지에 있었다.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사인 훔치기 논란을 일으키자 전자기기로 투수와 포수가 사인을 교환할 수 있는 피치컴을 개발하고 도입했다.

피치컴은 포수가 팔목에 차는 밴드, 투수와 야수들이 모자 안에 착용하는 수신기로 구성돼 있다. 팔목 밴드에는 직구와 다양한 변화구의 구종, 그리고 스트라이크존 코스를 선택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 사인 취소 버튼도 있어 사인을 변경할 수도 있다. 지금은 내야수들에게 수비 시프트 사인도 피치컴으로 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포수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투수와 야수들에게 사인이 바로 전송되니 자연히 시간 단축 효과가 나타났다. 사인 교환 시간만 줄여도 피치클락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게 경험자인 류현진의 조언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는 피치클락과 피치컴을 도입해 궁극적인 목표인 시간 단축 효과를 봤다. 메이저리그 평균 경기 시간은 2022년 3시간 4분에서 2023년은 2시간 40분으로 24분가량 줄었다.

KBO는 올해 시범경기부터 전반기까지 '한국식' 피치클락을 시범운영하기로 했다. 10개 구단은 9일과 10일 시범경기 개막 2연전에서 피치클락을 경험했는데, 야구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피치컴과 같은 장비가 해결되지 않았고, 퓨처스리그에서 제대로 제도 점검을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곧장 1군에서 시범운영을 하니 혼란만 초래한다는 게 반대하는 야구인들의 주장이다.

KBO 피치클락 규정에 따르면 주자 없을 때는 18초, 주자가 있을 때는 23초 안에 던져야 한다. 메이저리그보다는 3초씩 더 여유를 줬다. 타자는 피치클락에 8초가 표기된 시점에 타격 준비를 마쳐야 한다. 투수가 위반하면 볼, 타자가 위반하면 스트라이크다. 이외에도 투수 교체(2분20초), 이닝 교대(2분), 타석 간 시간(30초) 등 세부적으로 지켜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다.

▲ 미국 메이저리그 포수들이 팔목에 착용하는 피치컴 밴드.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투수 잭 갤런(왼쪽)과 포수가 심판이 지켜보는 가운데 피치컴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있다. 투수들은 수신기를 모자에 넣어 소리로 사인을 듣는다.

류현진은 주자가 없을 때는 몰라도 주자가 있을 때는 피치컴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류현진은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기간 허구연 KBO 총재와 만난 자리에서 피치컴 없는 피치클락 규정으로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이미 어필했다.

류현진은 지난 7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주자가 없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다. 오키나와에서 총재님이랑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는데, 피치컴이 안 들어온 상황에서는 주자가 있을 때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총재님도 알고 계시더라. 주자가 나갔을 때 피치컴이 없는 상태에서 던지면 나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까지는 없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삼성 라이온즈 포수 강민호는 지난 9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와 시범경기 개막전을 되돌아보며 "첫 경기는 조금 정신없이 돌아간 것 같은데, 큰 거부감은 없었다. 빨리빨리 경기가 돌아간다는 생각은 들었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조금 숨이 차는 모습을 보였다. 포수가 공을 잡으면 투수에게 조금 여유를 주고 던져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수가 공을 받는 순간을 기준으로 하니까 내가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공을 바로 던져서 그때 투수가 숨을 고른다고 땅을 고르고 그러면 벌써 9초다. 사인 내고 바로 던져야 하니까 그게 투수는 힘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피치컴이 도입되면 투수가 조금 더 여유를 갖고 투구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KBO 관계자는 지난 7일 규칙설명회에서 피치컴 도입과 관련해 "피치컴 도입은 피치클락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협상을 시작했다. 미국 장비라 국내에서 사용하려면 전파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 절차가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해당 업체와 협의 후 이른 시일 안에 사용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빠르면 2개월이 소요된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류현진은 피치클락을 제대로 도입하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큰 문제 없이 잘 운영되고 있고, 시간 단축 효과도 크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시간 단축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젊은 팬층을 더 확보하기 위해서다. 30초에서 1분 정도 길이의 '쇼츠' 영상이 유행하는 시대에 한 경기를 다 시청하는데 3~4시간이 걸리는 야구의 매력이 갈수록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올드팬만으로는 야구 산업이 유지될 수 없기에 시대의 흐름을 쫓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창원NC파크에 설치된 피치클락 카운트. 9일 열린 KIA 타이거즈와 NC 다이노스의 시범경기에서는 모두 13번의 피치클락 위반 경고가 나왔다. 정작 투수들의 위반은 단 2번에 불과했다. ⓒ NC 다이노스
▲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 전광판 쪽에 설치된 피치클락. ⓒ곽혜미 기자

피치클락을 찬성하는 야구인의 생각도 궤를 같이한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10일 대전 한화전에 앞서 "경기가 길어지다 보니까 조금 단축시켜야 하는 것은 맞다. 야구가 계속 인기를 끌려면 (경기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보다는 짧은 게 낫다. 어차피 지금은 이제 준비 과정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강인권 NC 다이노스 감독은 10일 창원 KIA 타이거즈전에 앞서 "피치클락은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캠프에서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를 한 번 봤는데 군더더기가 없더라. 다음 타자 대기타석 딱 들어가고, 사인 간단히 내고 하니까 위반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하더라. 정립만 잘 한다면 나쁘지 않을 거고, 시행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야구인들은 피치컴과 같은 문제도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치클락을 시범운영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시범운영 기간에는 페널티가 없다고 하지만, 구두 경고는 계속 주어지니 선수들이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완벽하게 준비가 되지 않은 제도 때문에 선수들의 경기력에 지장이 생겨서 되겠느냐는 의견도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ABS(자동볼판정시스템)가 도입되는 시즌에 피치클락까지 한꺼번에 너무 많은 변화를 시도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KBO는 일단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피치클락을 정식 도입하기 전까지 언급된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허구연 총재가 피치클락과 ABS(자동 볼 판정) 점검에 나섰다. ⓒ 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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