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면 내 덕, 잃으면 은행 탓"…손실때마다 '책임 공방'[ELS, 그 후]②

공준호 기자 2024. 3. 1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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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투자상품 판매 '명과 암'…판매 규제 강화 전망
소비자 선택권 침해·투자자 자기책임 원칙 훼손 우려도

[편집자주] 홍콩증시의 끝 모를 추락으로 촉발된 ELS 사태로 온 나라가 시름하고 있다. 막대한 손실에 소비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막대한 배상 책임을 떠안게 된 은행도 죽을 맛이다. 지난 20년간 재테크 상품이 대중화되면 결국 '불완전판매' 이슈가 불거졌고 그때마다 간접투자상품 시장이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공모펀드 시대가 그렇게 저물었고 이번에는 ELS마저 사라질 위기다. 은행들의 ELS 판매 중단이 능사일까. 은행의 '재테크 도우미' 역할은 어떻게 재정립돼야할까.

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홍콩 ELS 사태' 관련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2.15/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공준호 기자 = 투자(投資)는 "자본(資)을 던진다(投)"는 뜻의 한자어다. 더 큰 이익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을 믿고 돈을 투입하는 행위로, 믿었던 대로 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던진다'는 말이 주는 어감대로 손실을 볼 가능성도 존재한다. 원칙적으로 투자의 결과는 전적으로 투자자 자신의 책임이다. 손실을 보더라도 투자를 중개한 금융기관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를 '투자자 자기책임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폭락 사태로 은행권이 '불완전판매' 논란의 중심에 또다시 섰다. 은행은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개인의 문턱을 낮추며 '전국민 재테크 도우미' 역할을 했지만 이번 홍콩 ELS 사태와 같이 손실발생시에는 '공공의 적'으로 내몰리며 책임소재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은행, 투자상품 대중화 역할…"WM 상품판매→자문 중심 옮겨야" 제언도 국내 은행들이 투자상품 확대 판매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약 20년 전인 지난 2004년 무렵이다. 경제가 저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은행은 이자 장사를 넘어 투자상품 판매를 통한 수수료 확대를 새로운 수익모델로 잡았다. 주가연계증권(ELS)을 비롯한 파생결합증권 규모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접근성이 높은 창구를 통해 투자상품을 판매하는 만큼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수요도 충족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현상이 지속되면서 대체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들이 다시 ELS 시장으로 유입된 것이다.

다만 지난 2008년 키코(녹인 옵션과 녹아웃 옵션을 결합해 만든 구조화파생상품) 사태부터 시작해 최근에는 파생결합증권(DLF), 라임·옵티머스 등 투자상품 판매 과정에서 수차례 문제가 불거졌다. 은행이 판매한 투자상품에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고, 판매과정에서 불완전판매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이 연이어 나오며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은행에 대한 불신이 쌓여왔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홍콩 ELS 사태까지 터졌다. 총선을 앞두고 소비자 피해문제 해결이라는 과제를 마주한 당국도 어깨가 무거워졌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은행에서 ELS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에)상당 부분 공감한다. ELS뿐만 아니라 금융투자 상품은 모두 위험하다.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투자'와 '투기'의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하면서 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잇단 불완전판매 논란으로 은행권이 자산관리 수익 원천을 판매 수수료 중심에서 운용보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은행의 자산관리(WM) 서비스가 핵심사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금융상품 판매수수료 위주에서 포트폴리오 관리 및 운용보수 중심의 사업모델로의 전환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투자상품 판매를 전면금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만큼 전면금지 카드까지는 꺼내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추후 제도개선안에는 KPI 규준안, 비예금 상품위원회 운영 내실화, 투자상품 판매창구의 공간 구분 등 내용을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자기책임 원칙 훼손 우려도…금융당국 "종합적으로 고려"

이번 ELS 사태로 은행권의 투자상품 판매에 대한 제도개선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DLF 사태 직후인 지난 2020년 금융당국은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개념과 판매할 수 있는 ELS 규모를 제한하는 등 규제를 도입하고 2021년 3월에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됐지만 또다시 비슷한 사태가 발발하며 판매 과정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판매사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자 자기책임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5년 이상의 긴 주기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금융시장의 하락이 오는 건 시장의 이치"라며 "특히 ELS의 경우에는 구조가 명확한 투자상품인데 판매사 잘못을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다만 은행 이용자 중 다수는 '은행에서는 원금보장 상품을 판매할 것'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투자상품 판매시 더욱 촘촘하게 상품에 대한 설명이 이뤄져야 하는데, 특정 홍콩 H지수 ELS 상품 판매건의 경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실제로 이번 홍콩 ELS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 원칙을 지키지 못한 사례가 다수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적합성 원칙이란 고객에게 최적의 금융상품을 권유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예를 들어 단 한 번도 고위험 상품에 투자해 본 적 없는 고령의 투자자가 전재산에 가까운 비중을 ELS에 투자했다면 적합성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충분한 정황이 될 수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자기책임 원칙과 관련해 과거에는 경험이 많이 쌓이지 않을 때는 일률적으로 20% 배상하라, 50% 배상하지 말아라 이렇게 했는데 지금은 그것보다는 수십 가지로 연령층, 투자경험 내지는 투자 목적, 창구에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그리고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zer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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